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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터 Dec 20. 2023

1박에 2만 원, 제주도 숙소

대한민국 1호 게스트하우스에서 보낸 시간

작년 여름 제주도 한 달 살기를 끝내고 한동안 제주 앓이를 했다. 아침에 다른 게스트와 바다를 보며 마시던 맥주, 끝없이 펼쳐진 바다, 할 일 없이 벤치에 앉아있어도 눈치 주는 이 하나 없는 편안함 때문이 아니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사는 흰색 멍멍이 라봉이 때문이었다. 골든리트리버와 풍산개의 특성을 반쯤 섞어놓은 한라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멍멍이. 사람과 물을 좋아하는 순한 참견쟁이 개 한 마리 때문에 날이 풀리자마자 제주도로 떠났다.


와하하게스트하우스



1년 전 한 달 살기를 할 때와 ‘와하하 게스트하우스’는 달라진 점은 없었다. 그때 함께 머무르던 다른 게스트들은 없었지만, 몇몇 장박하는 게스트들의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그리고 언제나 한결같이 해가 떠 있을 때는 누워서 잠을 자는 라봉이의 모습도 보였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라봉이가 전보다 예뻐졌다는 것이었다. 의아해하는 나에게 사장님은 말하셨다.


“다들 라봉이 목욕시켰냐고 물어보시는데, 자기가 직접 했어요.”


내가 오기 전 제주도에는 며칠간 비가 왔다고 했다. 그 사이 라봉이는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마당 중앙에 앉아서 비를 하염없이 맞았다고 했다. 그렇게 꼬질꼬질하고 어디서 묻히는지 모를 것들로 엉켜있던 털이 뽀얀 하얀색으로 변해있었다. 비가 오면 제주 여행객에게는 슬픈 날이지만, 라봉이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좋은 날이었다. 좋아하는 물로 흠뻑 젖을 수 있는 날이니까.


웃고 있는 한라봉씨


오랜만에 라봉이와의 산책은 어느 때보다 신이 났다. 비가 완전히 그치지 않아서 축축한 바닥과 구름 낀 하늘이 산책하기에 좋은 날은 아니었지만, 바다를 보며 강아지와 산책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로 충분했다. 표선의 읍내까지 다녀오는 게 라봉이 산책 루틴이었지만, 중간에 방해물을 만났다. 라봉이는 인간에게는 한없이 착한 멍멍이지만 다른 개들한테는 얄짤없는 맹수였다. 산책 중에 저 멀리 대형견과 함께 걸어오는 사람을 만나면 길을 건너거나 왔던 길을 돌아가야 했다. 한 번은 그들을 피해 다른 길로 가다가 또 마주친 적이 있었다. 심지어 그 여성분은 라봉이보다 더 큰 대형견 두 마리를 산책 중이었다. 금방이라도 달려올 것 같이 으르렁거리는 개들의 목줄을 잡은 그분은 나에게 물었다.


“어느 쪽으로 가실 거예요?”


셀프 샤워 후 뽀송해진 한라봉씨



가능한 한 마주치지 않는 것이 개와 함께 산책하는 제주도민의 법칙이었다. 거기에 라봉이 만의 특별 루틴이 하나 더 있었다. 산책 끝에는 바다에 들어가서 반신욕을 하는 것이었다. 산책이 끝나고 게스트하우스와 점점 가까워지면 라봉이는 자연스럽게 바다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이끼가 끼어 미끄러운 바위 사이를 쏙쏙 지나가 바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돌멩이 때문에 불편한 느낌이 들면 수영을 하듯 몸을 움직여 다시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3분에서 5분 정도 반신욕을 즐기고 다시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바다에서 반신욕하는 제주 멍멍이


그의 취미 생활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나는 가능한 줄을 놓치지 않으려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쭈그려 있어야 했다. 그리고 바다에 나와서 라봉이의 몸에서 털어져 나오는 바닷물을 맞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든 제주에 찾아도 그 모습 그대로 게스트하우스와 라봉이가 남아주기를 바랐다. 한 달에 30만 원, 하루에 2만 원의 말도 안 되게 저렴한 숙소도 그 앞에서 산책할 사람을 기다리는 라봉이도 오래오래 같은 모습으로 남아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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