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월터 Nov 22. 2023

30만 원짜리 제주도 한 달 살기 숙소

멍멍이와 함께하는 산책은 덤입니다.

매주 한 번씩 촬영 일정이 있던 2022년의 어느 날, 클라이언트의 사정으로 한 달 동안 촬영이 취소되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제일 먼저 알아본 건 역시나 여행을 떠날만한 곳이었다. 코로나의 여파가 아직 남아있던 시기이기에 해외여행은 부담스러웠다. 그렇다면 비행기를 타고 여행 기분은 내지만 해외여행이란 위험 부담은 없는 제주도가 이번 여행에 제격이었다.


제주도에는 독채, 호텔 등 여러 형태의 한 달 살기 숙소가 있었지만, 가격이 천차만별이고 갑작스러운 여행치고는 부담스러운 금액인 경우가 많았다. 백만 원 단위를 우습게 넘나드는 숙소 가격을 보면서 제주도 여행을 포기하고 짧게 국내 여행을 가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한 유튜버의 영상을 봤다. 원지의 하루라는 유튜버는 ‘물미역’ 콘셉트의 여행으로 한적한 곳에서 하루 종일 누워있는 콘텐츠를 올리곤 했다. 원지는 사람이 없어서 종종 온전한 휴식을 하기 위해 제주도에 오면 꼭 들르는 숙소라며 제주도 표선에 있는 “와하하 게스트하우스”를 소개했다. 거기에서 나의 시선을 끌었던 건 숙소에서 보이는 바다도 아니고, 그물침대도 아니었다. 영상의 아래에 가끔 나타나는 흰색 멍멍이 한 마리였다. 


라봉이와 그의 발


영상 속 편의점에 가던 원지를 숙소에서 키우는 흰색 멍멍이 ‘라봉이’가 쫄래쫄래 따라갔다. 그렇게 라봉이는 지나가던 멍멍이와 냅다 싸우기도 하고, 잠깐 사라져서 바다에 혼자 들어갔다 나오기도 하고, 편의점에서 산 생수도 얻어 마시며 원지와 함께 산책했다. 나의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인 “멍멍이와 산책하기”를 이룰 수 있는 숙소라는 생각에 바로 숙소 가격을 알아봤다.


도미토리 룸은 한 달에 30만 원, 일인실은 한 달에 50만 원으로 가격도 엄청나게 저렴한 편이었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번호로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 연락을 해봤지만, 일인실 예약이 이미 다 찼다는 말이 돌아왔다. 도미토리 룸은 어떠냐는 사장님의 질문에 선뜻 답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던 찰나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어차피 도미토리 손님이 없어서 거의 혼자 쓰실 거예요.”


숙소 옥상에서 찍은 사진


그 이야기를 믿고 며칠 후 제주도로 떠났다. 제주도 바다와 그 앞에 길게 이어진 해안도로 잔디밭 마당이 크게 있는 와하하 게스트하우스 모습이 보였다. 건물 바로 앞에 있는 강아지 집 앞에 라봉이가 누워있었다. 영상 속에서는 분명히 목줄 없이 자유로웠던 라봉이가 목줄에 묶여 있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지나가던 사람을 반갑다며 앞발로 치는 바람에 자유를 잃고 목줄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순간 이곳에 온 목적인 멍멍이와 산책하기가 이룰 수 없는 목표가 되어 버린 것 같아 슬픈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라봉이와 산책해도 좋다며 다른 게스트들도 종종 라봉이와 함께 나갔다 온다는 말을 들었다. 그 길로 라봉이의 목줄을 쥐고 산책하러 나갔다.


웃고 있는 라봉이


오른쪽으로 보이는 제주도의 바다와 앞서 걸어가는 라봉이의 뒷모습, 신이 나서 크게 말린 라봉이의 꼬리, 발걸음에 맞춰 상하로 흔들리는 라봉이의 귀를 보니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멍멍이와 산책하기란 버킷리스트를 원 없이 이루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사장님의 말씀대로 도미토리 실에 손님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혼자서 8인실을 독차지하곤 했다. 또 나와 같이 한 달 살기를 하러 온 사람들, 장박을 하는 사람들, 짧게 여행을 온 사람들과 다양한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그렇게 2022년 나의 두 번째 제주도 한 달 살기는 30만 원이란 돈이랑 비비교도 안 될 값진 경험을 남긴 시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취업 대신 제주도 한 달 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