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월터 Feb 07. 2024

잘 알려지지 않은 서울 일출 명소

2024년 소원: 포기하지 않는 한 해가 되게 해 주세요.

1월 1일은 일 년 중 어느 날보다 더 설렌다. 달력이 11월로 넘어가자마자 다음 해의 계획을 세워서 그런 걸까. 두 달이나 고민해서 세운 계획들을 드디어 실행에 옮길 때가 되었으니 매해 첫날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의미 있는 날을 잘 보내기 위해 친구와 일출을 보러 가기로 했다. 친구는 매해 영동대교에서 일출을 봤다고 했다. 차가 없으니 걸어서 갈 수 있고, 일출을 보고서 카페나 음식점에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기에 자주 찾았다고. 영동대교와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와 달리 나는 거의 첫 차를 타고 지하철로 한 번 갈아탄 뒤에 또 다리까지 20분 정도 걸어야 갈 수 있었다. 지도에 떠 있는 경로를 보자 약간 버거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날보다 희망찬 날인 만큼 기꺼이 가보겠다고 친구에게 말했다.



늦을까 봐 서두른 탓에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밖은 추우니 지하철역에서 잠시 시간을 보낼지 고민했지만, 마땅히 앉아있을 곳이 없어 계단을 올랐다. 편의점에 들러 따뜻한 음료 두 병을 사서 패딩 주머니에 넣었다. 그 온기가 배까지 전해지니 아무리 추워도 해가 떠오를 때까지는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대교와 가까워질수록 불길한 기운이 돌았다. 약간의 살얼음이 낀 바닥은 미끄러웠고, 안개가 자욱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빠르게 달리는 차 소리가 두렵게 느껴질 즈음 대교 위에 도착했다.


잠시 후 친구가 도착했고, 서서히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하늘에 깔린 안개가 걷히지 않아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항상 이곳에서 일출을 봤다는 친구가 말했다.


“원래 롯데월드타워가 보이거든. 근데 아무것도 안 보이네.”


종이가 찢어진 모양으로 걷힌 구름 사이의 아주 작은 틈으로 빨갛게 변한 하늘색이 보였다. 이미 해가 뜨는 시간이 지났기에 해 뜨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아쉬웠지만 애써 마음을 달랬다. 날씨는 내가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괜찮다고. 아쉬운 마음을 애써 다독이고 친구에게 이제 그만 내려가자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 항상 두려움이 있었다. 내가 세운 계획을 실행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지만, 외부의 이유로 계획이 실패하면 마음이 유난히 아렸다. 가끔은 그런 것들을 견디기 힘들어 계획을 세우는 것조차 포기할 때도 있었다.



매해 계획을 세울 때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을 기준으로 세우곤 했다. 책 쓰기, 글 몇 권 읽기, 자고 일어나서 침대 정리하기와 같은 일들. 하지만 2023년은 나에게 너무나 혹독한 한 해였기에 내가 세운 기준 이상의 결과를 얻지 못해 아쉬웠다. 영화제에 출품한 결과들은 모두 낙방이었고, 단편 시나리오를 2편 완성하기 위해 계획했던 “영화 관련 수업 수강하기”는 원래의 목적은 이루지 못한 채 수업만 열심히 듣고 끝나버렸다. 그래서 2024년의 계획은 조금 터무니없을지 몰라도 합격하기, 완성하기, 계약하기 등의 단어로 채웠다. 하지만 역시 마음속엔 결과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 손에 결정된다는 게 괜찮을까. 지원하기, 도전하기 따위의 단어로 계획을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되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영동대교를 건너던 중 친구가 말했다.

“구름이 조금 걷힌 건가?”



구름 사이로 롯데타워의 모습이 살짝 보였다. 그 뒤로는 옅은 붉은색의 하늘도 보였다. 일출 시각이 지났으니 이미 해가 떠오른 것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의 붉은색이었다. 청룡의 해라서 그런지 구름이 용이 지나간 것처럼 생겼다고 말하며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혹시 저 조그만 틈 사이로 해의 모습이 보일지도 모르니. 얼마나 기다렸을까 따뜻했던 음료수가 이미 차가워져 버리고, 밖으로 드러난 귀가 차가워 감각이 무뎌질 때쯤 해의 모습이 조금 보였다. 둥그런 해의 윗부분이 구멍 난 양말 틈으로 보이는 엄지발가락만큼 아주 작게 보였다. 그런 해가 본모습을 다 드러낼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해를 보려고 새벽 6시 40분에 다리에 도착했으니, 해를 보기 위해 기다린 시간에 비하면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친구에게 말했다.


“다행이다. 만약에 완전히 포기하고 내려갔으면 못 봤을 텐데.”



가장 좋아하는 소설, 힘이 들 때 혹은 계속되는 실패로 마음이 아릴 때 찾게 되는 소설이 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고전 명작이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너무나 뻔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의 소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역시나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힘이 다 쇠하고 운도 없어진 노인. 80일 넘게 고기를 잡지 못한 노인이 엄청나게 큰 물고기를 잡았지만, 상어에게 그 고기를 다 잡아먹혔다는 이야기. 너무나 처절한 노인의 사투, 그에게 위로가 되었던 바다의 유일한 친구 갈매기까지. 슬픈 이야기지만, 마지막 장면이 그 앞의 노력과 외로움을 모두 상쇄시켜 준다. 새벽이 되고 해가 떠오르자, 그 노인이 잡은 물고기의 엄청나게 커다란 뼈가 보인다. 물고기가 상어에게 모조리 잡아먹혀 노인의 노력이 모두 쓸데없는 것이 되어버린 듯싶지만, 남겨진 뼈로 그 노력했던 순간의 흔적이 남았음을 보여준다. 그 마지막 장면을 처음 읽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르바이트 점심시간, 입맛도 없어서 대충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던 때였다. 그 장면을 읽고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허물하나 남기지 않고 흩어지던 내 노력이 언젠가 소설 속의 뼈처럼 흔적으로 남아 떠오르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당시에 읽던 책 <노인과 바다> 위에 뽀얗게 먼지가 쌓이고, 겉표지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낡아버렸지만, 아직 결과라고 부를 만한 노력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다. 역시 책은 어디까지나 누군가 지어낸 환상일 뿐 현실과 다르다고 희망마저 사라질 만큼 아득히 시간이 지나버렸다. 하지만 고기가 잡히지 않아도 묵묵히 바다에 나가던 노인처럼 1월 1일에 실패할지도 모를 계획을 품에 안고 새해 첫날 해를 보러 왔다. 안개가 가득해 오늘은 절대 해를 볼 수 없겠다고 포기하고 뒤돌아서 돌아가려던 순간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왔을 때 포기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올해 어떤 일이 있든 기어코 해내고 마리라고, 결국 해낼 테니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와 힘을 달라고 손을 모아 떠오르는 해에 기도했다.


2024년도 잘 부탁한다며.

매거진의 이전글 KTX타고 저렴하게 여행하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