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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영 Sep 08. 2020

<굿 플레이스> 후기-사랑은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는지

천국은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곳

*이 글은 시즌4까지 모든 회차를 시청한 사람이 쓴 글로, 줄거리에 대한 스포가 담겨있습니다.






   1인 가구 직장인인 나는 퇴근 후 야식을 먹을 때, 보진 않더라도 일단 어떤 콘텐츠든 틀어 놓는 편이다. 사람 목소리가 그리운 건지, 멀티가 안 되는 편이라 집중해서 보지도 못하는데도 음악이든, 영상이든 항상 틀어 놓는다. 사실 굿 플레이스 드라마 포스터를 처음 봤을 때, 너무 재미없어 보였다. 그저 '평범한 인간이 죽어 천국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선해지는 뻔한 스토리가 아닐까?'생각했고, 그렇다고 다른 콘텐츠도 그다지 끌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 역시 '틀어만 놓자.'라는 생각으로 1화를 시청했다.


 그런데 웬걸, 등장인물들의 드립력이 완전 저세상 텐션이다. 황당무계한 일들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천국에 남고 싶어 머리를 굴리고 다른 사람들까지 난처하게 만드는 엘리너의 모습이 밉지 않고 사랑스럽다. 그리고 시즌2로 넘어가는 부분에서부터 엄청난 반속의 연속이 펼쳐진다. 이 정도면 일부로 포스터와 소개를 노잼으로 만들어 시청자들의 기대치를 끌어내려놓은 게 아닌가 생각 들 정도다.


 시즌 막바지로 갈수록 별 볼일 없어 보이던 치디는 핫가이가 되어가고(나름 청불임), 답답해 미치겠던 바보 제이슨은 현자가 되어 굿 플레이스의 다음 세계로 가장 빨리 여정을 떠난다. 가끔 어떠한 해결책도 없을 것 같은 노답인 상황 속에, 맥락과 맞지 않게 주절거리던 제이슨의 이야기가 뒤에 와서 머리를 띵하게 만들어주던 순간들도 좋았다. 이 드라마의 엄청난 흡입력은 이러한 배역들의 '성장'과 '변화'로부터 기인할 것이다.





 여태까지 봤던 콘텐츠들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결말..

마지막 화에는 엘리너와 치디가 노을 속에서 서로의 몸에 기대어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장면. 아름다운 노을이 사람을 압도하는 이유는, 그 시간이 영원할 것만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의 결말은 등장인물들이 죽일 듯 미워했던 자신의 가족과 재회해 화해를 하고, 그 다음 충분히 행복한 시간을 갖고(한국적으로 말하자면 남은 한을 다 풀고) 일종의 현자가 되어 다음의 세계로 넘어간다. 


 안타깝게도 엘리너의 연인 치디는 엘리너보다 더 이르게 준비를 마치고, 자신의 연인을 굿 플레이스에 둔 채 먼저 다음 세계로 넘어간다. 자신이 수십 번의 생을 거쳐 사랑했던 연인이지만, 또 사랑하기의 그의 성장을 발목 잡을 수 없는 엘리너는 노을 앞에서 치디와 마지막의 시간을 보낸다. 그때 치디는 홀로 남겨짐을 불안해하는 엘리너를 위해 이런 말을 남긴다.


파도는 사라져. 하지만 물은 여전히 그곳에 있지. 파도는 물이 다르게 존재하는 방식이었을 뿐인 거야, 잠시 동안. 파도가 바다로 돌아간다. 자기가 왔던 곳으로, 있어야 할 곳으로.


 만약 내가 이 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애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 남겨주고픈 말이다. 또한 나 자신을 위해. 


 드라마의 끝은 6명의 주연 중 자신의 운명을 가장 나중에 깨달은 엘리너가 제레미 베레미 시간을 넘어 우주의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 숲길로 걷어들어가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이때 나오는 백그라운드 뮤직이 'Spiegel im Spiegel(거울 속의 거울)'인데, 듣자마자 어떤 곡인지 알았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중요 장면에서 재생되었던 OST인데 너무 좋아서 옛날에 찾아들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음악으로 인해 나는 이 드라마의 결말이 더욱 완벽하게 느껴졌다.





 나에겐 한여름밤의 꿈, 데자뷔 같았던 굿 플레이스.

사랑은 결국 그 사람을 성장으로 이끄는 힘임을, 천국이 있다면 그곳은 사랑하는 사람과 무한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임을 꿈꾸게 해 준 백일몽 같은 드라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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