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이라는 것은 괜찮은 것이 아니라, 괴로운 것
세상의 질서와 어긋난 발정이 몸속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하면, 나는 그에 휘둘려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아무리 잔혹한 진실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나의 진실이 알고 싶었다. 엄마가 심어놓은 것도, 세상에 맞춰 발생시킨 것도 아닌, 내 몸속 진짜 본능을 터뜨리고 싶었다. 내 발정의 형태를 확인하고 싶었다.
"인간은 점점 진화를 거듭해서 영혼의 형태며 본능도 바뀌어가잖아. 완성된 동물 같은 건 이 세상에 없으니 완성된 본능도 존재하지 않지. 누구나 진화의 과정에 있는 동물일 뿐이야. 그러니까 세상의 상식과 부합하든 하지 않든 그건 우연에 불과하고, 다음 순간에는 무엇이 옳은지 판단할 수 없어지는 거지."
나는 왜 '가족'을 원하게 된 걸까. 그 이유를 헤아릴 수 없어서 골똘히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가장 큰 동기는 '고독'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모두가 홀로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그 감각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정상이라는 것만큼 소름 끼치는 광기는 없다. 이미 미쳐있는데도 이렇게 올바르다니.
그 강제적인 '정상'성 앞에서 우리는 저항하지 못하고 그 '멋진 광경'에 감동하며 앞으로도 그에 복종할 것이다.
"엄마는 세뇌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어? 세뇌되지 않는 뇌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는 해? 그럴 바에야 이 세상에 가장 적합한 광기로 미치는 게 훨씬 낫지."
주인공인 아마네는 섹스가 사라져 가는 세상에서도 섹스를 하는 몇 안 되는 인간 중 하나이다.
작가는 그가 성숙하며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 인지하고, 성욕을 발견하며 그것을 풀어내는 과정을 아주 섬세하게 그려낸다. 나는 사랑을 여러 갈래로 묘사하는 작가의 문장들을 아주 흥미롭게 읽어나갔다.
사람마다 '연애'에 대한 가치관은 다르나, 아마네가 스스로 정의한 '사랑'은 등장인물 중 그나마 우리 사회의 '사랑'과 많이 닮아있다. 그렇게 아마네는 자신의 사전을 쓰고, 그것을 친구나 연인과 공유한다. 그러면서도 엄마가 섹스를 통해 자연임신을 해서 자길 낳을 만큼 고전적인 사람은 아니라고 부인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엄마의 세계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계의 중간에서 아마네는 '정상'인가 아닌가를 구분하기 위해 진짜 자신의 '본능'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확인하려 한다. 그래서 연인과의 관계에서 더 섹스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아마네에게 섹스란 무형인 사랑에 오감으로 접촉할 수 있는 상징적인 행위이자, 자기 자신을 정의 내리고자 하는 수단이다. 모든 감각을 열고 섹스에 집중하는 그의 모습은 나에겐 섹스가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나는 솔직히 이 책을 통해 작가가 결론 내린 인간의 진짜 본능은 무엇인가를 궁금해하며, 그것이 결말로 그려질 줄 알고 미친듯한 흡입력으로 뒷장을 넘겨나갔는데, 모든 게 무너져버린 듯한 결말을 보고 실망을 느꼈다. 그것은 이 책이 잘 쓰였고 못 쓰였고 가 아니라, 내 기대에 맞는 결말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해피엔딩을 바랐던 아이가 처음 새드엔딩 동화를 접했을 때의 느낌이었다.
하지만 옮긴이의 말을 읽고 결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으며, 처음 기분은 찝찝했으나 결국에 가장 완벽한 결말이 아닐까 생각이 바뀌었다. 세상에 먹히고, 세상을 먹었던 아마네가 다시 끝에 섹스를 함으로써 세상의 벽에 균열을 냈다. 이것은 절대적인 정상성이란 결국 존재하지 않는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아닐까.
우리는 여전히 '모성애', '가족', '이성애'의 개념을 진화시키고 있다. 소멸세계는 누군가에게 극단적으로 느껴지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충분히 가능한 미래사회라 생각되었다. 우리는 고전적인 그 개념들을 마주할 때 뭔지 모를 아름다움과 따듯함을 느끼지만,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세상에 너무 잘 물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