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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영 Jul 31. 2021

결국에 정신과

처음 먹어본 정신과 약, 효과와 부작용

갈까, 말까


정신과를 가볼까? 생각하던 것은 올해 1월부터였다.

가장 큰 증상은 감정 통제가 안 되는 것. 하루도 빼놓지 않고 몇 주간을 내리 울었던 적도 있다.

혼자 있을 때만 그러면 그나마 괜찮은데, 사회생활을 할 때도 점차 통제가 안되니 더 심각하게 고민했다.

지금 당장 눈물이 목구멍에서부터 눈물샘까지 차올라오는 것이 느껴지는데, 퇴근할 때까지 참아야 하는 것이  고역이었다. 진짜 못 참겠다 싶은 때는 화장실 가는 척 몰래 빠져나와 눈물 훔친 적도 여러 번.

사회생활하면서 이런 경험 누가 없겠는가.

하지만 6개월 내내 이런 감정선에 있다 보니 일이 점점 손에 잡히지 않게 되었다.

정말 모순스럽게도 사회생활 탓에 생긴 병인데, 사회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병원 문을 두드렸다.


나: (전화) 초진인데 예약 잡고 가야 하나요?

정신과: 7월 초까지 예약이 다 차 있으니 6월에 한 번 더 전화 주세요.

나: 아 그래요? 네 알겠습니다. (요즘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참 많구나 …)


망설이던 참이었는데, 정신과 직원의 답변을 듣고 맘을 다시 접었다.

"그래,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지금 내가 유독 일이 많아서 그래, 다 지나갈 거야."

하지만 단순히 감정이 좋지 않은 선에서 그치면 참아 보겠지만, 계속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울어재끼느냐 멈추지 않는 심장 두근거림, 그로 인해 생긴 두통과 불면증은 삶의 의욕을 점차 갉아먹었다.  


살려고, 힘들어 죽겠다고, 지인과 가족들에게 연락하며 더 이상 징징거리기도 싫었다. 미안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 아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힘들면 주변 사람도 힘들다는 결론에 그곳으로 발을 떼게 되었다.



의사 선생님 첫인상, "저 아세요? 근데 왜 반말?"


결국 처음 전화했던 정신과 말고, 나와 시간이 맞는 곳에 방문했다.

사실 병원 리뷰를 보고 걱정이 되었다.


"의사 선생님이 투박하지만, 정이 있다."

"시원시원하시다."


좋게 말하면 이런 거고, 나쁘게 말하면 너무 격이 없단 건데, 괜히 갔다가 상처 받는 말만 듣고 오면 어쩌지...?

"넌 아무 이상도 없는데 왜 왔냐?" 이러시면 어쩌지...

요즘 시대에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을 텐데, 괜히 가서 시간 뺏는 것 아닌가..


하지만 실제로 만나 뵈니, 환자들의 무거운 생각들을 가볍게 전환해주시려고 애쓰시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첫인사 빼곤 반말로 대하셨는데, 무례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조심스럽게 나에 관해 물어보시고, 공감해주시는 것이 느껴졌으니. 나의 이야기를 상처 받지 않게 유머로 승화시켜주셔 울다 웃다 했다.

"요즘 일이 이러이러해서 힘이 든데, 일이 문제인 건지, 제 자신이 문제인 건진 모르겠지만 너무 힘이 든다, 울음이 통제가 안되어 일을 못 할 정도다" 말씀을 드리니(말씀드리면서 또 울음), "그러면 답은 뻔하네, 퇴사하면 되잖아?!" 하셨지만, 퇴사할 수 없는 이유를 말씀드리니 곧바로 "아 그렇겠네..." 인정하셨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만...


MMPI 지옥(질문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음)을 마치고,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검사 결과 병리적인 이상은 없어 약효가 별로일 수도 있다 하셨다.

하지만 많이 힘들다고 하니, 약 한 번 먹어볼래? 느낌으로 약 처방을 권유받았다.

어떤 부분이 좋고, 안 좋은지 자세히 알아보고 싶었으나 그에 대한 자세한 말씀은 없으셨고, 약도 어떤 성분으로 구성되어있는지 설명이 없으셨다. 은연중 항우울제(아니면 진정제?)와 수면유도 성분이 들어있는 약이구나 알 수 있는 정도. 아마도 내가 함부로 진단하고 판단할까 봐 그러신 게 아닐까 생각한다.

약을 먹는 시간, 잠에 드는 시간, 일어나는 시간을 약속하고 일주일 후 다시 오기로 했다.

아, 정신과 비용에 대해 많이들 궁금해하실 것 같아 남기자면, 나는 약 처방 포함해서 2만 5백 원 들었다.



진정을 얻고, 졸음도 얻었다.


일주일 뒤 의사 선생님이 "어때? 살 것 같지?" 물으시자,

나는 "약 먹기 전엔 매일을 울었는데, 약 먹은 뒤로 하루도 안 울었어요." 답할 정도로,

약효는 매우 좋았다.


정말 마법처럼, 약을 복용하는 동안 내 안에 우울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우울했던 시기를 지나치고 뒤돌아보니, 사고가 기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기분이 사고에도 이렇게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은 몰랐다.

그러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긍정적인 감정이 올라온 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긍정적인 감정일 때 마주하는 일들은 모두 내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던 모든 말들이 알고 보니 그렇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던 말들이었다.

썩은 과일에 많은 벌레들이 꼬이는 것처럼, 지친 내 몸은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몸이 회복되니 저 사람은 원래 저런 사람이었고, 원래 저런 식으로 말한다는 것을 더 쉽게 인정하게 되었다.


하지만 효과 외 부작용을 열거하면 이러했다.

1. 속이 메스꺼웠다.

-> 첫날은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였다. 이 부분은 내가 약을 밤에 먹어서 그런 것이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니 점차 나아졌다. 속이 메스꺼워 며칠간은 식욕도 감소했다.

2. 졸음이 쏟아졌다.

-> 의사 선생님께 부작용에 대해 여쭈었을 때 일어나기가 힘들어질 것이라 하셨는데, 실제로 그러했다. 특히 운전할 때도 졸음이 쏟아져 힘들었다.

3. 성욕이... 감소했다..

-> 구체적으로 말하긴 민망하고 솔직히 쓰자면 그러하다..

4. 술을 마시면 없던 두통이 느껴졌다.

-> 사실 이 부분 때문에 5일 차까지만 복용하고, 걱정이 되어 멈추었다. 약 복용을 멈춘 이유는 또 있는데, 일이 주 뒤로 코로나 백신 1차가 예약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생님께 솔직하게 이러저러한 이유로 복용을 멈추었다 말씀을 드리니, 필요시약을 처방해주셨다.


동생이 위 부작용을 듣고, 그 정도면 안 먹는 게 더 나은 거 아니냐 물었는데, 그럼에도 나는 약을 먹고 이제 살 것 같다고 느꼈다. 저 위에 열거된 부작용들보다 내 우울감이 더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필요시약은 내가 정말 필요할 때만 먹는 건데(하루 3회까지 복용 가능) 복용량이 점차 늘어난다는 위험성이 있어 잘 권유하진 않는다 한다. 전에 복용했던 약보다는 약한 성분이어서, 연주자들이 공연 전 긴장을 덜 하기 위해 많이들 복용하는 약이라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 필요시약을 아직 한 번도 약을 복용하지 않았다.

괜찮아지기도 했고, 또 며칠 뒤면 2차 접종이 있기 때문에 혹시 몰라 복용을 하지 않고 있다.

2차 접종을 마치고 또 우울감에 잠식되면, 약을 복용하고 정신과에 한 번 더 방문하지 않을까.





힘들 땐 나 자신을 어린아이로 놓고 마주보며, "네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 할 거다."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린다. 나를 가장 잘 돌봐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니까.

그래서 난 나에게 좋은 것들을 가져다주려 근 1~2년 사이로 이것저것 했다.

그 결과 이번 연도 내 그릇에 넘쳐나는 일들을 마주했고, 탈진했다. 욕심의 결과였나 보다.

결국에 나는 나를 정신과로 데려갔다.

자신이 우울의 늪에서 허덕이며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지금 돌아보면 나를 회복시키고 달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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