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투영 Aug 29. 2021

엄마가 아이가 되었다.

모야모야병, 뇌출혈 수술 후 2주차 병상일기

2021.8.14(토) 오후 1:47

얼마 전 찍은 가족사진을 배경화면으로 설정해 둔 휴대폰 화면이 번쩍이며 귀에 진동인 느껴졌다.

사람이 충격을 받으면 그 장면이 사진 찍히듯 뇌에 박히나 보다. 그날의 첫 장면인 핸드폰 배경화면과 그 시각이 생경하다. 나는 동생에게서 온 전화로 눈을 떴다.

엄마가 쓰러졌단다. 그런데 저혈당으로 쓰러진 것이 아니란다(당뇨가 있음).

지금은 엄마가 일 할 시간이다. 엄마의 직장환경을 아는 나는 다른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쓰러진 것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날 어디가 안 좋다는 연락이 있었나? 그것도 아니었다.

엄마는 동치미를 맛있게 만들었다며 가족 톡방에 사진을 올렸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불안을 걸음으로 달래듯 방안을 서성이며 동생한테 이야기했다.

엄마가 저혈당으로 쓰러진 게 아니라면, 뇌졸중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심각한 일인 것 같다고.

아빠가 다시 출국한 지 딱 일주일 되었을 때다.


엄마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삐용삐용 사이렌 울리는 소리와 함께 구급대원이 전화를 받았다.

이송 중인 병원이 어딘지 물었고, 나는 동생에게 다시 전화를 해 혹시 모르니 신분증이랑 지갑 챙겨서 ㅇㅇ병원으로 최대한 빨리 가보라고 이야기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나도 짐을 바리바리 싸서 ㅇㅇ병원으로 출발했다.

출발하기 직전, 동생에게 엄마가 모야모야병이며 지금 바로 머리를 밀고 뇌출혈로 인한 응급수술에 들어간다는 전화가 왔다.


고속도로 위에서 계속 흐르는 눈물을 계속 손으로 닦긴 힘들어, 그저 눈을 꿈뻑꿈뻑 깜빡였다.

밀려난 눈물이 마스크 안 턱으로 고였다.

머릿속엔 "모야모야병이 뭐야?"라는 생각뿐..

얼핏 과학 교과서에서 한 번 본 것 같은데, 공부 좀 열심히 할 걸.

지금 이 상황이 내 학업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으나, 손발은 운전 중이니 머릿속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생각을 해보자는 심정이었던 것 같다.


동생이 이 상황이 혼자 감당이 안된다며 빨리 와달랬는데, 도착하니 수술은 거의 끝나 있었다.

동의서를 몇십 장이나 작성했는지 모르겠단다.

그중 머리를 미는 동의서, 수술 후 머릿 쪽을 절대 건드리면 안 돼(관이 연결되어있음) 결박하는 동의서에 서명을 하는데, 엄마 몸인데 내가 이렇게 동의를 해도 되는 건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며..

당연하지 않은 내용들에 당연하게 동의를 해야 하는 동생이 혼자 얼마나 무서웠을까 생각이 들었다.


수술 후 엄마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중환자실 면회시간은 하루 한 번, 오후 12시에서 12시 반까지 단 30분, 보호자 한 명만 입장 가능.

일요일은 동생이 들어가고, 월요일은 반차를 쓰고 내가 들어갔다.

수술 당일은 의식이 없었고, 천만다행으로 엄마는 다음날 깨어있었으며(뇌출혈 수술 이후 의식이 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이 천차만별이라 한다) 우리의 말에 반응할 수 있었다.

수술 후 삼사일 정도가 지나고 입에서 호스를 제거하고 식사도 시작하셨다.


일이 터진 주말 동안은 자매가 본가에 함께 머물렀다.

홀로 남겨진 고양이를 돌보며, 병원에서 가져오라던 엄마가 평소 복용하던 약들을 뒤적이며, 보험 서류들을 뒤지며 우린 현타가 왔다.

정말 엄마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엄마가 최근 혈압약을 먹고 있었다는 것도 이제서 알았다.

병원에서 엄마가 주기적으로 다니던 병원, 인슐린 주사량은 평소 얼마나 되는지, 당뇨가 언제부터 있었는지, 키와 몸무게 등을 물었는데 동생이 아는 게 없어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단다.

그런 자신이 껍데기만 어른인 애처럼 느껴졌다고. 너무 인생을 trash처럼 살아서 세상이 이런 일도 겪게 하는 것 같다며 농담 삼아 이야기하는데, 말은 웃겼으나 동감인지라 씁쓸했다.


늦은 밤이 되어서도 나는 계속 엄마의 흔적을 뒤졌다.

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 눈물이 터져 나올 것이란 걸 알면서도, 엄마의 핸드폰을 뒤지고, 엄마가 평소 시나 일기를 기록하던 다음 카페를 로그인해서 들어가 보았다.

엄마는 지인들에게 연락을 받는 편이 아닌, 먼저 연락을 하는 편이었다.

이게 내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던지... 그동안 외면해왔던 엄마의 외로움을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죄스런 마음이 들었다. 정말 불효자식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이 참 많았다.

엄마가 집에 혼자 계실 때나 운전 중이실 때 그렇게 갑자기 의식을 잃지 않으신 것, 직장에서 빠르게 응급대처를 잘해주신 것, 아빠가 출국 후 중국에서 자가격리 중이라 오가지도 못하는 정말 갑갑한 상황이지만, 동생이 대학생이고 방학이라 보호자로 있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되는 것, 감사하게도 직장에서 내 사정을 이해해주셔 휴가를 자유롭게 낼 수 있는 것, 엄마의 의식이 빨리 돌아온 것, 수술이 잘 되었고, 회복이 빠르신 편인 것 등


엄마는 중환자실에 9일 있으시고, 지난 월요일 일반병실로 옮기셨다.

엄마가 일반병실로 옮기신 후 재활치료가 시작되었고, 우리 자매의 간병생활도 시작되었다.

아직은 보호자가 24시간 있어야 하는 상태다.

엄마가 침대에서 일어나려 하면, 화장실에 가고 싶은지 묻는다.

응, 이라고 하면 기저귀와 물티슈를 챙겨 화장실에 함께 들어간다.

엄마가 볼일을 보고 혼자 뒤처리를 하면, 나는 변기를 한 번 더 체크하고 엄마의 몸을 더 닦아드린다.

필요하다면 차고 있는 기저귀를 갈아드린다.


엄마의 상태는 가족들 얼굴을 다 알아보고, 이름도 다 이야기할 수 있는 정도이다.

하지만 시간 날짜 개념이 아직 없으신 듯하다.

엄마에게 오늘 날짜를 물으면, 2012년이라고도 했다 2020년이라고도 말씀하시기도 한다.

일자는 나도 헷갈리니 기대도 안 하지만, 월도 5월, 7월로 왔다 갔다 한다.

아직까지 오늘이 2021년 8월이라고 한 번에 답하신 적이 없다.

어느 병원에 입원해있는지는 안다.

가만히 있다가 뜬금없는 말을 하시는데, 유심히 들으니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 단어가 기억이 안 나서 다른 단어로 대체해서 말씀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이거 말하는 거야? 저거 말하는 거야? 스무고개를 시작한다.

가끔 정말 말이 안 되는 말을 하며 고집을 피울 때가 있다.

그럴 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따지며 굳이 맞추려 애쓰지 않고, 그냥 엄마가 했던 말을 똑같이 반복하며, 그렇다는 거지? 알겠어, 내가 내일 다 할게~ 한다. 그럼 응응하며 조용해진다.

이렇게 안 하면 다 같이 있는 병실에서 서로 큰소리를 내며 싸우게 된다.


엄마에게 다시 단어를 알려주고, 배변 처리를 도와주는 일이 꼭 아기 돌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기였을 때 엄마는 몇 년간 발이 묶여 이렇게 나를 성장시켰는데, 나는 엄마를 지금처럼 돌보는 것이 고작 며칠, 길면 몇 달이라는 생각을 하니 그렇게 힘들지 않다.

지금 내가 엄마 옆에 있는 시간이 엄마가 그동안 나에게 준 시간, 사랑, 돌봄과 감히 비교가 될까.


그리고 엄마 의식이 지금만치 깨있지 못해서 부축하는데 더 힘이 들었던 지난 며칠은 동생이 혼자 다 감당했다.

제일 힘든 시기에, 그 옆을 자신밖에 지킬 사람이 없어 지켜야만 했던 동생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

밤마다 힘들다고 울며 전화하면, 나는 묵묵히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이 말 밖엔 할 말이 없었다.

"네가 제일 고생이 많다, 징징거려도 돼, 너 징징거려도 될 만큼 힘들어, 조금만 더 참자, 내가 토요일 아침 일찍 내려갈게"


그렇게 어제 아침 내려왔다.

엄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친척들이 한 분씩 오가신다. 오늘은 이모가 오셨다.

엄마와 이모는 어떠한 이유로 작은 다툼이 있고 몇 년째 연락을 안 하셨던 걸로 알고 있다.

다툼이 무색하게, 이모는 이곳저곳 엄마를 살피시고, 불편한 점은 없는지, 먹고 싶은 거는 없는지 염려스러운 자기 아이를 대하듯 여러 가지를 물으시곤 무겁게 발걸음을 떼셨다.

그리고 엄마가 많이 추워하니 긴 담요로 바꿔드리고, 엄마 손톱관리도 좀 해주고 등 여러 가지 말씀을 하시며 엄마가 예전에 쓴 시들을 다음 주에 또 들를 때 출력해달라 하셨다.

엄마가 그런 거 잘 쓰잖아~ 이모가 말씀하시니, 엄마는 무기력하게 그런 거 잘 써서 뭐해,라고 답했다.

이모는 너 책 한 권 내라며 한 번 더 말씀하셨다.


안 그래도 작년 엄마 생신 때 엄마가 쓴 시들을 책으로 묶어 선물로 드릴까 했는데, 번거롭게 느껴지는 마음에 내년에 해드리지 뭐, 하고 넘겼다.

그 생각이 엄마 쓰러지시고 많이 들었다. 진작 해드릴 걸... 하면서. 이번 연도엔 꼭 해드려야지 했는데 이모까지 말씀하시니 정말 정말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엄마가 혼자 비공개 카페에 기록해둔 시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곳에 하나하나 기록해두려 한다.


카페명 나의건강 나의행복

오늘 다시 접속한 엄마의 그 비밀 공간에, 최신 글을 뒤적였다.

첫 번째로 클릭한 것은 건망증이라는 제목이다.

이건 시라기보다 메모에 가까운 것 같지만..


커피포트의 코드를 꽂고

일회용 커피를 사러 갔다

돌아오니 전자레인지의 눈이 영롱하다

이상하다

아이들이 벌써 일어났나?


-2018.11.26



엄마의 메모연습. 가족구성원엔 현재 돼냥이가 되어버린 반려묘 아롱이도 있다. (돼지) 부분에서 빵터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