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차 새댁의 성장일기
결혼 전 나의 핸드폰 일정은 주말마다 꽉 차 있었다. 약속이 없으면 왠지 모르게 불안했고 외로웠다. 누구든 만나야 했고 집 밖을 나가야 했다. 그 공허함을 나는 '연애'로서 채웠다.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을 때, 결혼은 그때 하는 거야.
주위의 인생 선배님들이 종종 말씀해주시곤 했다. 서른으로 향해 가는 나에게 연애 공백기란 '도전'이었으며 '숙명 과제'였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전 8개월 동안, '혼자서도 잘해요'를 찍으며 노력파 솔로로 살았다.
주말마다 지하철을 타고 40~50분 거리에 있는 영어학원에 회화를 배우러 다니기도 했고, 일러스트 동호회에 가입하여 그림을 그리러 가기도 했다. 심심하면 동네 친구를 불러내 맛집이나 카페에 가서 수다도 떨고 쇼핑을 하러 쏘다녔다.
그렇게 주말을 온전히 밖에서 소모했던 내가 결혼 후 집에만 있는 주말이 좋아진 것이다.
퇴근 후 금요일 저녁, 남편과 시원한 호가든 한 캔을 들이키며 ‘주말에 뭐 해 먹을지’, ‘장을 뭘 봐야 할지’, ‘어디를 가 볼지’ 등 소소한 대화거리가 생긴다. 새삼 약속 없는 내일이 그렇게 감사하다.
다음 날 아침, 침대에서 느지막이 일어나 부은 눈을 비비며 토요일이 시작된다. 남편의 팔베개를 베고 품에 안겨있다가 '배고프다' 노래를 시전 하면 끝내 못 이긴 남편이 밥을 차려준다.
어제 먹고 남은 음식들로 든든하게 아침을 먹으며 ‘삼시 세 끼’ 의 차승원이 뚝딱뚝딱 차린 음식들을 보곤 침을 흘린다. 그리곤 "오늘 저녁은 저거다!" 하며 저녁 메뉴를 정한다.
남편이 설거지를 할 동안 나는 청소기를 돌리거나 바닥을 닦거나 마른빨래를 개킨다. 거실과 방마다 창문을 활짝 열어 상쾌한 바람을 한껏 들이마시곤 본격적으로 집안일을 시작한다.
청소를 시작할 때 듣기만 해도 몸이 들썩이는 BGM을 곁들인다. 요즘의 우리는 '탑골공원 메들리'를 틀어 놓고 청소를 하는데 그중 나의 애창곡은 서연의 '여름 안에서', 쿨의 '애상'이다. 옛 조상들이 괜히 노동요를 부른게 아님을 몸으로 체득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걸레질의 무아지경에 빠진다.
구석구석 먼지가 닦이고 말끔히 정돈이 되어가는 집을 보면서 작지만 큰 행복을 느낀다. 그렇게 호로록 밀린 과업을 끝내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소파에 나란히 앉아 거실 구석에 쌓아둔 책을 꺼내 읽는다.
자세를 이렇게, 저렇게 바꾸어가며 책을 읽다가 어느새 정신 차려보면 누워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여보, 잘 잤어?"
깜빡 잠든 나를 놀리려는 남편의 조소마저 사랑스러워보이는 오후다.
안온(安穩) 하고 충만하기 짝이 없는
약속 없는 주말.
나는 비로소 집순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