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야기 아니고 '친구 이야기'입니다.
중학생 때부터 꾸준히 연애를 해온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난 남자 친구와 9년을 연애하고 몇 년 전 결혼을 했다.
남자 친구는 어마 무시한 훈남에 자상함까지 갖춘 그야말로 '사기캐' 남자 친구였다. 9년을 연애 후 결혼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출근을 할 때 남편이 손수 도시락을 싸줄 정도의 '사랑꾼'이었다. 그 덕에 주위에서 많은 부러움을 샀다.
오랜만에 그 친구를 만나 연애에 관한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 당시 나는 남자 친구에게 서운한 점을 하소연 했는데 남자 친구가 나의 말을 못 받아들여 답답했었다.
“나 너무 섭섭하더라. 남자 친구에게 다음부터는 ~~게 해달라고 말을 했어. 근데 되려 받아치더라. 너는 매번 잘하냐고. 말을 해도 남자 친구가 못 받아들이더라니까.”
“그랬구나. 나는 이제 연애한 지 5,6년 돼서 그런가 이제 노하우가 생긴 것 같아. 뭔가 섭섭한 게 있을 때는 바로 얘기하기보다는 조금 기다렸다가 말해. 그리곤 남자 친구 기분 좋을 때 꺼내거든. 그러니까 받아주더라."
"기분 좋을 때? 언제?"
"잠자리하고 나서 서로 안고 있을 때. 그 때가 남자들이 가장 기분 좋을 때 아닌가 싶어. 나는 그 타이밍을 잘 노려.”
그때 우리는 고작 20대 초반이었다. 친구는 그동안 허투루 연애를 한 게 아니었다. 삶의 지혜를 '연애'로 터득했던 것이다.
그 말을 주고받은 지 10년이 지났지만 지금 돌이켜봐도 그 날의 짧은 대화 몇 마디가 많은 것을 시사해주었다.
먼저, 친구는 남자친구에 대해 ‘원하는 바’가 명확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잘 안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탐색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답정너(답이 늘 정해져 있는 너)가 될 수 있지만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알아야 상대와의 오해 없는 소통이 가능하다
둘째, 모든 것은 '때'가 있는 것이었다. 조급하거나 서두르면 일을 그르친다. 치타가 사냥을 할 때는 몸을 최대한 낮추고 먹잇감에 '가다 말다'를 반복한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범위에 들어왔을 때 목표물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화가 나더라도, 속상하더라도, 불안하더라도 잠깐 멈춰라. 그리고 지금 그 사람이 나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만한 여유가 있는지 살펴라.
하나의 사례로 일반화시키는 것은 성급하겠지만, 이 이야기만 들어보아도 친구가 얼마나 '현명하게' 남편과의 관계를 유지시키는지 느껴졌다. 나 자신을 탐색하는 것, 그리고 '때'를 기다렸다가 표현하는 것.
그것이 아이를 낳고서도 여전히 남편 눈에 꿀이 떨어지는 금슬의 비결 중 하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