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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리 Jul 27. 2020

남편이 저보고 '북한'같대요.

  새댁 2년 차의 반성문


그 날은 결혼 후 남편과 처음 싸운 날이었다.



 갈등의 시발점이 된 것은 다름 아닌 ‘제사'. 시댁에서는 일 년에 한 번 제사를 지낸다. 정확히 말하면 시아버님의 어머님, 아버님을 모시는 제사다. 제기에 올라가는 모든 음식을 손수 만드는 할머니 댁과는 달리 생선, 나물 등은 잘 만들어놓은 것을 ‘사면’ 되기에 시댁의 제사는 훨씬 간소하다.



그마저도 시어머님께서 오래전 큰 병을 앓은 적이 있었기에 손이 많이 가는 부침개나 동그랑땡은 작은 어머님 댁에서 만들어오시고 나물 3가지 외 생선이나 과일,  떡과 같이 구입이 가능한 음식은 어머님 댁에서 준비하는 것이 자리 잡혀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사는 제사다. 결혼한 선배들에게 제사와 관련한 숱한 에피소드들을 귀에 딱지 앉을 만큼 많이 들어온 탓인지 제삿날이 다가올수록 심장이 조여 오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제사는 무엇인가?


나에게 제사는 '공동 노역을 통해 조상신에게 복을 빌며 정신 승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시댁에서 처음 제사를 맞이한 나의 당면과제는 ‘어떻게 하면 시어머니와 형님을 도와서 일을 잘할 수 있을까?’ 였다.



 모든 일은 의상이 준비되어야 하는 것이 내 순리였다. 요가를 등록하기 전 요가옷을 준비했고 배구를 배우기 전 아울렛에서 배구화부터 샀다.



 그 날 나는 ‘제사 맞춤형’ 의상, 즉, 편하게 일하기 위한 옷을 찾아야 했다. 동시에 너무 캐주얼해서는 안 되는 옷이 필요했다. ‘편안함’과 적당한 ‘예의’를 함께 갖춘 옷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30여분을 옷장에서 이 옷, 저 옷을 뺐다 넣었다 하면서 고르고 고른 옷은 ‘10부 면바지'와 '반팔 티셔츠'였다.



옷을 다 입고 갈 채비를 끝낸 나를 보며 남편이 말을

걸어왔다.




 "그렇게 입고 갈 거야?"

 

 "왜? 뭐가?"

 "너무 편하지 않아?”

 "가서 일해야 되는데 그럼 불편한 옷 입으라고?"

 "아니, 나도 장모님 장인어른 보러 갈 때는 불편해도 슬랙스 입잖아. "

 "오빠는 우리 집에 제사 지내러 가는 게 아니었잖아."

 "부모님께 잘 보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말한 건데.."

 "아니 그럼 뭐 입으라고?"

 "혹시 효리 옷장에 편하면서도 조금 더 단정한 옷 없나? "

 "하... 내가 알아서 갈아입을게."



 결국 나는 출근할 때 입는 뻣뻣한 검정색 슬랙스로 옷을 갈아입었고 시댁으로 가는 차에서 남편과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 번도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던 양반이 내 나름 제사를 위해 고민하면서 고른 옷을 보곤 훈수를 둔 것이 당황스러웠다. 나름의 고민과 성의가 들어간 선택을 두고 마음을 헤아려주기는 커녕 입을 대는 남편이 괘씸했다. 무엇보다도 이런 대접 받아가며 시댁에 일하러 가는 내 모습이 퍽 서러웠다.



나는 단지 남편이 알아주기를 바랬다.

내가 일하러 가는 걸 그만큼 염두에 두었다는 것을,

오랜 고민과 숙고로 고른 선택임을,

‘제사' 자체만으로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내 마음을, 먼저 알아주길 바랬다.



 문제는 내가 바랬던 걸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대신 뾰족하고 날 선 말투로 남편에게 쏘아붙였다는 것이다.



문제는 제사도 아니었고 남편도 아니었고 옷도 아니었다.



‘말투’ 가 화근이었다.



쏘아붙이기 전 한 템포만 쉬었더라면

한 템포 쉬면서 내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의식했더라면

어떤 말투로 말하는 게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릴지 생각했더라면



시댁으로 향하는 차 안이 그렇게 적막하진 않았으리라.






남편은 나를 '북한'에 비유한다.

방심하면 쳐들어온다고.

언제 도발할지 모르니 늘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조선 후기 민화 속 양반들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하여 시대상을 해학적으로 비판했던 예술가들처럼 



냉탕과 온탕을 (자주) 왔다 갔다 하는 나의 기복을 북한에 빗대어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남편에게 무한한 감사함을 전하며



이 글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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