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 나의 남편.
나는 노력형 사랑꾼이다. 타고나길 시니컬 한 스푼과 불안 두 스푼, 긴장 한 스푼을 휘휘 저어 만들어진 성격이라 그런지 어떨 땐 내가 생각해도 내 말이 너무 차갑다 싶을 때가 종종 있다. 하고 많은 공부 중 '상담'을 배우는 이유는 대단한 상담가가 되기 위해서도 아니고 은퇴 후 삶을 계획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쪼그라듦과 거침이 함께 공존하는 나의 내면에 유하고 크리미한 '부드러움'을 한 스푼이라도 넣어보려는 나의 발악이다.
옆반 후배가 우리 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이렇게 자주 말해주곤 한다. "언니는 애들한테 늘 친절하고 상냥해요.'라고. 다행히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나는 친절하고 상냥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를 그대로 엄마에게 전하니 깔깔깔 웃으신다.
"우리 딸이? 우리 딸은 정이 좀 없는데~~ (깔깔깔)"
나도 사실 어느 정도 인정을 한다. 다만, 정이 없는 것에 인정한다기보다 정나미 없이 말할 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특히 가족에게 말이다. 어렸을 때는 가장 소중한 부모님이에게 그렇게 했고 이제는 부모님보다 편안한 상대가 되어버린 나의 남편이 희생양이 되었다.
최근 남편과 마트에 갔을 때였다. 그 날 따라 유독 마트에 사람이 많았다. 그럴 때면 서로 각자 사야 할 것을 골라서 한 곳에서 만난다. 남편은 고기와 생필품을 사러 갔고 나는 과일과 야채를 사러 가기로 했다. 카트 틈을 비집고 싱싱한 대파를 한 단 골라서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갔다.
남편 : (차분한 어조로) 대파 이거밖에 없었어? 이것보다 조금 더 굵은 거 있었던 것 같은데?
나 : 그거랑 이거랑 200원 차인데 둘 다 비슷하고 얇아, 그럼 가서 오빠가 골라 오던가.
남편은 여느 때처럼 말했고 나는 여느 때와 다르게 뾰족하게 받아쳤다. 심지어 나는 이 날 내가 이렇게 말한 게 뭔가 잘못됐다는 걸 의식조차 하지 못했다. 마트를 다녀와 남편이 밥을 차리고 있는데 어쩐지 안색이 어둡고 어딘가 힘이 없어 보였다.
나 : 오빠, 혹시 오늘 좀 글루미 해? 뭔가 다운되어보여. (세상천지 모름)
남편 : 음... 그런가? 나 오늘 왜 그렇지?
평소보다 무기력해 보이는 남편이 어디 아픈가 싶어 걱정도 되고 신경도 쓰였다. 밥 한 숟갈 먹는데 남편이 운을 뗐다.
남편 : 아까 효리가 오늘 나한테 글루미 해 보인다고 했잖아.
나 : 응...!
남편 : 그거랑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아까 마트에서 대파 고를 때 생각나? 효리가 한 말을 떠올리면서 오늘따라 네가 왜 그러나 싶었어..
나 : (두둥...) 아... 그때 내가 너무 심하게 말했지? 말이 너무 거칠었다. 생각해보니 그러네 미안해 여보...내가 그렇게 말해서 섭섭했겠다.
남편 : 섭섭하거나 속상하진 않았어. 근데 그런 생각은 했지. 이런 게 나는 너를 아니까 받아주지만 효리 최측근이나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 말들이 모질게 들릴 수 있겠다는 생각.
나 : 그렇지.. 이쁘게 말하려고 진짜 노력해야겠다. (ㅠㅠ)
남편 : 오늘따라 왜 그랬을까? 효리가 '오빠~(애교 섞인 말투)' 할 때랑 오늘의 그 말은 간극이 있었단 말이지
나 : 흠... 그러고 보니 오늘 마트에 사람이 많아서 뭔가 예민해진 거 같기도 하고.. 빨리 살 것만 사고 집에 가고 싶더라고. 뭔가 코로나 터진 이후로는 사람 몰리는 게 싫어서 그런가 봐. 여하튼.. 노력할게 여보.
남편 : (웃으며 동시에 한숨을 쉬며) 그래, 노력해요 휴~~(^^)
나 : 그래야겠어. 근데 이런 말 해주니까 좋다. 여보는 참 쓴소리도 담백하게 잘해주네. 그렇게 말해주니까 기분이 안 나빠.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말해주는 거 참 좋다. 다음에도 내가 혹시 말이 뾰족하게 나가면 꼭 말해줘!
남편의 말을 듣고 나니 한 대 맞은 것처럼 그때, 그 순간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는 왜 그렇게 남편에게 모질었을까. 그 놈의 대파가 뭐 그렇게 중요하다고 어깃장을 놓으며 남편에게 쏘아 붙였을까. 미안하면서도 부끄럽기도 했다. 밖에서 '툭 내뱉는 말로 남에게 상처 주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어떻게든 피하는게 상책이라 생각하는데 그런 행동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했다는 것이다. 상담을 배우는 이유다.
고르고 고른 대파를 남편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걸고 넘어지는 것 같은 남편의 말이 서운했던 것 같기도 하다.
담백하고 유하게 표현하면 될 일이었다. 말로 표현하니 쉬워보이지만 나에게는 '노력'과 '수고'가 필요한 작업이다. 머리와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를 체에 한번 더 걸러 출력해야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노력이라는 것을 안다. 내가 꿈꾸는 결혼 생활은 '남편과 백발이 될 때까지 사랑을 주고 받는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럼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아 노력형! 너 자신을 알라는 그 말을 잊지 않겠소!
누군가에게 나의 개선할 점에 대해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다. 그건 진짜 친한 사이에만 할 수 있다. 결혼을 하고부터는 이런 말들을 부모님이 아닌 남편이 가장 많이 해준다. 사회생활을 할 때면 어찌 됐든 쓴소리를 들을 기회보다는 '잘했다', '좋았다', '고마웠다' 등 서로 좋은 게 좋은 소리를 듣는 기회가 많다. 게다가 사회생활을 하며 듣는 쓴소리는 좋게 들리기가 어렵다. '누구'에게 듣느냐, 어떤 '말본새'로 말해주느냐에 따라 강 같은 조언이 되기도 하고 꼰대의 가르침이 되기도 한다.
쓴소리를 달갑게 받아들일 수 있게 나직한 목소리로, 그 어떤 과장도 넣지 않고 담백하게 말해주는 남편을 생각하며 오늘도 노력형 사랑꾼은 가슴속에 깊이 새긴다.
사랑받고 싶은가?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받을 만한 말을 하자! 사랑받고 싶은 상대 앞일 수록 예쁘고 신중하게 말하자.
- '노력형 사랑꾼'의 오늘의 한 줄 반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