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the 2000's
"언니, 저 얼마전에 친구들이랑 같이 고등학교 생기부 떼서 봤거든요. 옛날에 선생님이 나를 이렇게 보셨다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그랬어요. "
친한 동생이 친구들을 만나서 놀았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언젠가 나도 해봐야지 하며 생각만 했다가, 막상 해보려니 공인인증서가 없어 미뤄왔던 일.
교사가 된 후 8, 9년차쯤 되니 아이들과 1년을 살아보고 학기말 평가를 두줄정도 적는 건 이제 일도 아니게 된다. 하지만 고작 그 두 줄이 아이들, 어쩌면 아이들보단 아이를 맡겨둔 학부모들에겐 자부심이 되기도, 좌절감을 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연차가 쌓일수록 몇번이고 다시 읽어본 후 퇴고를 거듭하여 통지표를 작성한다.
그 마음을 잘 알기에, 궁금했다. 사실 나에겐 근자감이 한켠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꽤 공부를 열심히 했었기 때문이다. 공부도 공부거니와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건 안하는 나였기에 어떤 말들이 써 있을 지 기대감에 부풀었다. 게다가 오늘은 남편과 결혼한 지 600일이 된 날이다. 여지껏 결혼기념일외엔 챙기진 않았지만 왠지 의미 부여를 하고 싶다.
"그래, 오늘이야. 오빠 서로 한번 까보자!"
성적은 생각했던 것보다 높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넘어가다 마지막에 가장 궁금했던 '행동특성발달사항'이 나왔다.
1학년 : 매사에 적극적이며 학업에 대한 열의가 높고 성적도 우수함
2학년 : 학업에 대한 열성이 커서 적극적인 자세로 수업에 참여함. 철저한 자기관리, 자신감있는 태도, 긍정 정적인 자세로 당당한 모습을 보임.
3학년 : 학업의 열의가 높고,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고 분명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하며 학급 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함. 목표의식이 분명하며, 목표 달성을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는 모습이 돋보이며, 자신의 생활을 스스로 관리할 줄 아는 학생임.
역시, 나야 나. 보란듯이 남편에게 자랑질을 했다. 처음엔 뿌듯함이 밀려오더니 컴퓨터를 끄고 소파에 앉았는데 그 때부터 가슴이 꽉 막힌듯 답답하다.
"뭐지? 왜 이렇게 답답한거야."
꽃같기만 해도 예쁠 시절을 나는 남들에게는 꽃으로 보이려고 부단히도 애를 쓴 모양이다. 선생님들 눈엔 적어도 밝고, 씩씩한 공부 잘하는 아이로 보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서글플까.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플까.
그 때의 내가 왜 이렇게 불쌍할까....눈물이 앞을 가려 글이 써지지 않을 만큼 실컷 울어버렸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우리 가족이 가장 큰 시련을 겪고 있었을 때였다. 아빠가 교도소를 가고, 엄마는 혼자 생계 전선에 뛰어드시고, 가족이 해체되고 나 혼자 할머니와 할아버니랑 살 때였다. 고독하고 괴롭고 불안했을 시절 나는 기를 쓰고 죽기 살기로 가족의 이야기로부터 도망쳤다. 불안할수록 공부에 매진했다. 엄마랑 아빠처럼 살지 않을 거라 다짐하며 이를 악물었다.
17살의 내가 내 옆에 있다면 말 없이 가만히 꽉 안아주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줄거다.
"그래, 너 지금 혼자 버티느라 많이 힘들지?...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해서 많이 답답했겠다. 네 걱정, 네 불안, 내가 다 안아줄게..즐기면서 공부해도 돼. 교대갈 거고, 임용도 합격해서 교사가 될거야. 엄마도, 아빠도 다시 함께 살게 될거고, 아빠는 그 일 이후 자신의 생업을 놓치지 않고 가족을 위해 끝까지 책임지실거야. 날이 갈수록 너는 엄마와 아빠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 지 알게 될거야. 무엇보다도 너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서 새로운 가족도 꾸리게 된단다. 그러니까, 지금. 네가 할머니집에 있다고, 아빠가 죄를 지었다고 해서 기 죽을 거 전혀 없어. 어른도 살다보면 실수할 수도 실패할 수 도 있는거야. 그러니 성적 조금 내렸다고 너를 탓하지 마. 공부도 즐기고, 친구랑 노는 거도 열심히 해. 모든 건 다 잘될거니까."
힘든 일이 생기면 모른 척, 눈을 질끈 감아버리곤 했던 자기보호전문인 내가 이제부터 좀 맞서보려고 한다. 그리고 꺼내보려고 한다. 고통스럽지만 내 기억의 파편 속 무의식을 마주해보려한다. 고개를 쳐들고 맞닥들여보는 거다. 그 어떤 두려움이든, 공포든, 걱정이든, 불안이든 허상이니까, 허상임을 증명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