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는 안주의 신세계

by Jonx

20대 때 친구들과 주로 다니던 술집은 강남역, 잠원동 한신포차, 압구정동, 종로 피맛골 등지였다. 가끔 대학로나 신촌 쪽으로 가는 경우도 있었는데, 우리들의 주무대는 강남이었다.

강남을 선호했던 이유는 그곳에서 초중고를 다녔고 집 근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곳에는 소줏집 맥줏집 나이트클럽 심야포장마차까지 있었기에 따로 술집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도어 투 도어. 술집을 나오면 또 다른 술집이 있었기에 술 마시기 더할 나위 없는 천혜의 조건이었던 것이다.

나이가 들고 서울 지방 이곳저곳을 다니며 여러 가지 안주를 접하게 되면서 세상은 넓고 안주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기이기에 현지에 가면 원주민이나 택시 기사들에게 맛집을 묻곤 했는데 사람마다 기호가 다르기 때문에 결과는 천차만별이었다.

그러던 중, 한 친구와 자주 만나게 됐는데, 그 친구는 종사하는 일 때문에 여러 맛집을 잘 알기도 했지만 안주 성향이 나와 비슷하여 그 친구가 소개하는 집은 내 입맛에 꼭 맞는 집이 유독 많았다.

그 친구와 만나 서울 곳곳에 있는 여러 맛집을 기행 하기도 했다. 낮이건 밤이건 우리가 만나면 반주 혹은 밤주(긴 밤이 새도록 마시는 술)가 곁들여졌고, 신당동 떡볶이 마포 떡볶이 약수동 뒷고기 마포 주먹고기 영동시장 숙성회와 육사시미 등이 우리의 주 공략층이었다. 우리에게 음식은 곧 안주였고 중국집의 단무지와 양파 춘장마저도 좋은 안주가 되었다.

그러던 중 얼마 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충무로에서 보는 건 어떠냐는 거였다. 그 친구의 안주 안목은 이미 인정한 터라 나는 그러마 했고 충무로 대한극장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대한극장 앞에 도착하니 예전에 고삐리 때 봤던 마이클 제이 폭스의 백투 더퓨처가 생각났고 극장 정문에서 봤던 영화배우 김지미와 김무스가 떠올랐다.

옛 생각에 젖어있는데 친구가 나타났고 가볍게 인사를 나눈 우리는 두말없이 그가 인도하는 곳으로 걸었다. 인쇄골목을 지나 중구청 뒷담에 이르니 웬 허름한 간판의 가게가 있었다. 낮 3시가 안 된 시각이라 손님이 있겠나 싶었는데 웬걸 두 테이블에 손님이 족히 여덟 명은 돼보였고 다들 얼큰한 상태였다.

메뉴판을 보니 안주는 딱 세 개, 막회 과메기 문어숙회였다. 친구는 주저 없이 막회를 골랐고 찬 콩나물국과 막회만 달랑 나왔다. 초장을 버무려 입에 넣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집은 유명해지면 안 돼. 적어도 오랫동안 이 맛을 보려면 말이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빈 소주병은 늘어갔고 막회는 아직도 절반이 남아있었다.

나의 극찬에 친구는 고무되었는지 일주일 후쯤 다시 연락이 왔다. 이번에도 충무로였다. 주말 점심 무렵이었는데 줄을 선 우리 앞으로 세 팀 정도가 있었다. 내 뒤에 줄을 선 아주머니가 내게 물었다.

"여기 맛있어요? 원래 옆집 가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줄 서있길래 얼떨결에 따라 줄 서봤어요".

나는 므흣한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식당에 들어선 친구는 앉자마자 주문을 했고 5분도 되지 않아 음식이 나왔다. 다소 허기졌던 친구와 나는 이미 소주 반 병을 비운 터였다. 나온 음식은 반계탕 정식. 영계 반마리가 삼계탕 스타일로 나왔고 목을 넘기자 허~소리가 절로 나오는, 뜨끈하지만 시원한 닭육수가 주전자 채로 나왔다. 거기에 신선한 겉절이까지. 눈빛으로 친구에게 극찬해마지 않으며 소주잔을 비우기 시작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친구가 아니었으면 몰랐을 맛집들. 그 맛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조만간 친구에게 다시 연락해서 새로운 맛집을 가볼 생각이다. 그 친구가 알고 있는 맛집들을 골라 맛집 기행투어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서울엔 정말 가볼 곳도 먹을 곳도 많은 도시다. 그래서 사람들이 서울로 모이는지,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랑해요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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