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자식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받아들이는 법

by 청안

내 아버지는 스님이었다.
어렸을 때는 이 사실을 친구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거짓말을 좀 했다. 나조차 잘 이해가 안 됐고, 타인을 이해시키기도 귀찮았으며, 튀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를 회사원이나 개인 사업을 하시는 분으로 설정해 두곤 했다. 그게 내 눈에 제일 평범해 보였고, 부러운 환경이었다.


아니다.
아버지는 동자승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스님들에게 가르침을 받아 절에서 성장해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짧은 주지 스님 세월을 보내고 환속했다. 환속 후에는 음악 감독 및 제작자로 일하시다가, 요즘에는 여러 가지 일을 하신다. 아버지는 음악 천재라는 평을 들으며 일하셨다. 그게 어느 정도 유전됐는지 나도 절대음감이다. 어떤 곡이든 들으면서 피아노로 그 음을 칠 수 있다. 멜로디뿐 아니라 뒤에 깔린 악기들의 음도 동시에 들린다. 작곡가가 될 게 아니라면 음악 듣는 데 방해만 된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음을 분석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음악을 듣는다.


내가 제일 싫어했던 건, 거짓말을 하는 나 자신이 아니었다. 거짓말을 지속하는 게 상당히 어렵기도 했지만, 학교에서 교육받은 가치와 아버지의 가치관이 부딪힐 때가 가장 힘들었다. 아버지는 스님들에게 교육받은 존재다.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과 상충하는 부분이 늘 존재했다. 아버지도 이제는 가장이자 세속화된 사회인이지만, 가끔 보면 정말 이해가 안 된다. 내가 아는 상식이 당연하지 않을 때가 많고, 아버지를 이해하는 건 아주 오래 전에 포기했음에도 여전히 놀라운 부분들이 등장한다.


고등학생 때는 식탁 앞에 걸린 석가모니 부처님 사진을 보며 밥을 먹었다. 아버지의 차에는 여전히 불교 용품 장식이 가득하다. 매일 절에서 108배를 하시고, 가족을 위해 공양물을 올리신다. 동자승 때부터 세뇌된 게 있으신지, 환속한 지 35년이 넘었음에도 아직까지 절과 함께 사신다. 새벽부터 생활하는 게 습관이 되어 늘 일찍 일어나신다. 불교 네트워크도 여전히 살아 있어서, 어딜 가든 갑자기 인사드릴 일이 생긴다. 아버지 차를 타고 외출한다는 건, 아버지의 인맥을 만날 일이 생긴다는 뜻이다. 그래서 대충 입고 갔다가는 낭패를 본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아침마다 아버지 차로 등교했는데, 그 시간에는 늘 불경을 틀어두셨다. 꺼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땐 아버지가 너무 셌다. 게다가 등교의 편안함을 제공받는 이상, 내 귀의 자유 정도는 지불해야 했다. 부처님 이야기나 불교 얘기를 너무 많이 하셔서 늘 참다가, 성인이 되어서는 심하게 반항했다.
“아빠, 부처님 눈으로 본 거 아니면 제발 조용히 좀 해주세요.” (를 심하게, 강하게 말했다 — 그리고 효과는 없었다. 기대도 안 했다.) 나는 불교라면 질색했고 아버지 입에서 '부처님'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이런 내가 요즘은 불자가 되어 절에 다닌다. 관광 목적으로 간 적은 많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진짜 웃긴다. 내가 불자가 되다니요?


최근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마음이 길을 잃었다. 벤치에 두 시간씩 누워 있다가 귀가했다. 이렇게 살다가는 내가 사라질 것 같아 불안했는데, 그때 떠오른 게 절이었다. 그래서 절에 갔고, 마음이 편해졌다. 특히 절을 해서 그런지, 어딜 가나 고개를 참 잘 숙인다. 콧대 높게 행동하다 다치는 것보다, 숙이면서 무시당하는 게 기분은 나쁘더라도 안전하다.


법회에서 스님들을 보면 아빠가 떠오른다. 아버지도 머리를 파르라니 깎고, 신도분들 앞에서 부처님 말씀을 전했을 것이다. 목탁 소리에 맞춰 불경을 외웠겠지. 정확히 저 모습으로. 와… 진짜 신기하고 이상하다. 가끔은 아버지가 스님이었다는 걸 믿고 싶지 않지만, 사찰에서 아는 스님들과 옛날이야기를 나누시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전직 스님’ 그 자체라 괴리감이 느껴진다. 우리 가족에서 아버지가 제일 기가 셌는데, 이젠 내가 모든 주장에 논리적으로 반박해서, 이제는 아버지가 나를 포기했다.


내 부모님은 내가 뭐가 되든, 안 되든 상관없다고 하신다. 그러나 ‘되면 좋겠다’고 하시는 건 있다.

바로 스님이다.

사실 절에서도 스님이 나에게 “출가하는 거(스님 되는 거) 어떤가?” 하고 농담처럼 제안하신 적이 있다. 어차피 결혼 생각도 딱히 없어서 나쁘진 않지만, 내가 신심이 있는가…는 모르겠다. 나는 그저 머리가 복잡할 때, “어차피 죽으면 끝이지.”라는 생각 속에서 스님 말씀을 들으면 개운해져서 다니는 게 크다.


내가 스님이 되면 어떨까?
이판승, 사판승 세계에서 나는 사판승에 가까울 테니, 지금보다 삶이 더 복잡해질 것이다. 절대 단순한 삶은 아닐 것이다. 스님이 되면 친구들에게 “절에 나 보러 놀러 와.”라고 초대해야 할 텐데, 오려나?

친구들에게 “우리 부모님은 내가 스님이 되길 원하신다.”라고 했더니, 다들 나를 비웃으며 “거짓말하지 마.”라고 했다.
진짠데.


예전에 아는 동생이 “누나는 상식이라는 게 적용이 안 되는 사람이야.”라고 했다. 그런 평가는 하루이틀이 아니다. 무엇보다, 나는 아버지라는 평범의 기준을 높이는 존재가 있기에 저런 평은 가볍게 넘긴다. 평범과 상식의 범주를 넘어가는 건 내가 아니라, 내 아버지다.


사연이 어찌 됐든, 아버지는 나와 부녀의 연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는 나를 만든 남성이며 가장이다.

건강하게, 행복하게 사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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