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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강 Jun 23. 2020

일상에서의 젠더 교육

피아노 학원에서 왠 젠더 교육? 이라는 의문이 들 수 있겠지만, 피아노 학원에서 새로운 아이들과 인연을 맺고 선생과 제자 간의 관계를 쌓아가게 되면서 우리는 피아노 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하게 된다. 


내가 아이들을 본격적으로 가르치게 되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유치부에서 초등 저학년 아이들이 오히려 가장 성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만난 7~9세 여아와 남아 대부분이 그러했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전에는 로봇을 좋아하고 푸른색을 좋아하는 여아,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섬세한 감정선을 가진 남아 등에 대한 환상(?)이 있었는데, 막상 여러 아이들을 만나다보니 실제로 성별에 따른 성향과 특징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았다. 일반화 시켜서 모든 여아는 분홍색을 좋아한다거나 모든 남아는 활동적이라고 판단해버리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어느 정도 많은 확률로 실제로 만나본 아이들은 정말 아이들은 그런 성향이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많은 일화가 있었다. 


7살 남아가 일반적인 남아들과 다르게 머리카락이 좀 길었다. 약간 둥근 단발머리 모양이였는데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나오는 윌리엄보다 조금 더 긴 단발머리인데, 게다가 아이는 체격도 가냘프고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한 아이여서 충분히 여아로 오해할만 하다고 생각했다. 이름까지 중성적인 아이라 나도 첫 만남에서 정확히 여아인지 남아인지 판별하지 못해 혹시 실수할까봐 성별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하여튼 이 아이는 남아였는데, 이 아이를 처음 보는 아이들은 대개 여아로 생각했다. 같이 지내보고도 남아로 생각하지 못한 또래 아이들이 있어 내가 설명해주곤 했다. 그럼 아이들은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당연히 여자애 아니었어요?' 라는 반응이다. '남자도 머리카락을 기르고 싶으면 기를 수 있고, 여자도 머리를 남자보다 짧게 자를 수 있지!' 라고 이야기해줬다. 


왜 모차르트나 베토벤 등 유명한 작곡가는 다 남자인지에 대한 질문도 가끔 여자아이들로부터 나온다. 또한 지휘자들도 왜 다 남자인지 말이다. 그럼 지금과 다르게 옛날에는 여자가 적극적으로 공부하거나 사회에 진출하기 어려웠던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 


언젠가는 왜 '척척박사'라는 단어가 대화 중에 나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화하던 남자아이가 문득 '여자는 척척박사님이 아니라 척척여박사라고 해야해요'라고 말했다. 여교수, 여류작가 등 직업의 앞글자에 '여'자가 수식어처럼 붙었던 시대가 저문지 오래라고 생각했는데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가 초등학교 1학년 남자아이 입에서 나왔다. '남자는 척척남박사라고 안하는데 왜 여자는 척척여박사라고 해야돼?'라고 질문했더니 특별히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았다. 근데 얼마 전에 또 수업 중에 대화하다가 나에게 신기한 일이 있다며 말을 꺼냈다. 


아이 : 신기한 이야기 해드릴까요? 친구 엄마가 외교관이시래요!

나 : (특별한 표정 변화 없이) 그렇구나.

아이 : 안놀라세요? 외교관은 되게 좋은 직업인데 친구 엄마가 외교관이시래요.

나 : 직업은 수없이 많은데 엄마가 외교관이실 수도 있지.

아이 : 엄마가 외교관인게 신기한데... 엄마가.. 


그러니까 아이에게는 아빠가 아니라 엄마가 외교관이신게 신기한 일이었고, 대화의 끝무렵엔 우리엄마가 외교관인건 싫다는 말을 웅얼거리며 대화가 끝이 났다.


또 한 번은 카카오프렌즈 캐릭터 노트가 몇 권 생겨서 오는 아이들 몇에게 좋아하는 캐릭터의 노트를 가져가라고 펼쳐놨는데, 6학년 남자아이가 튜브 노트를 골랐다. 튜브 캐릭터를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좋아하는 캐릭터는 어피치라고 했다. 그럼 어피치 노트를 가져가지, 왜 튜브를 가져가냐고 물었더니 어피치 노트는 분홍색이고 튜브는 하늘색이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분홍색이 무슨 상관이냐, 좋아하는 캐릭터로 소신껏 고르라고 했더니 아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어피치를 골라갔다.


아이들과 대화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하게 되는데, 나는 그 때마다 피아노 선생이 피아노만 알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주일에 겨우 두 세번 만나는 어른이지만 나로 인해 새롭게 깨닫는 것들, 부서지는 것들이 있을 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나는 마치 지식과 교양, 건전한 가치관으로 무장해야할 것 만 같이 느껴진다. 


계속해서 음악 공부 뿐만 아니라 세상에 대한 공부를 해나가야 한다. 동네에 흔하지만 괜찮은 어른이 되려면 부단히 공부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아이들과 피아노를 배우는 평범한 일상에서 젠더에 관한, 세상에 관한 심도있는 대화를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나와 아이는 고작 일주일에 두 세번 만날 뿐이고, 피아노 수업만으로도 빠듯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화 도중 무심코 이런 주제가 나왔을 때 곧바로 나의 의견을 말하며 반박하거나 반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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