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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an 25. 2024

글쓰기를 꿈꾸는 사람들

매주 토요일엔 신촌을 갑니다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글쓰기 수업을 들은 지 10주가 지났다. 극도로 효율을 추구하는 내가 두 시간 수업을 듣기 위해 편도 두 시간 걸리는 신촌까지 오가는 것은 나답지 않은 선택들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한 번은 이렇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수업을 질렀다.


총 12주 과정을 드랍하지 않고 끝까지 들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독감에 걸렸던 한 주 빼고는 성실히 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매주 서울 갈 일이 생기니 그 김에 서울에서 각종 약속도 잡게 되어서 일상이 더 풍부해졌다. 무엇보다 일주일에 단 하루, 글쓰기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게 좋았다. 두 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고 신촌으로 향하는 길에 일상을 벗어나 작가지망생으로서의 부캐를 꺼낸다. 그렇게 두 시간 수업을 들으면서 같이 수업 듣는 문우들과 서로의 글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나면 쓰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든다. 이제 그 시간도 끝나간다고 생각하니 못내 아쉽다.


지금까지 10주 차의 수업을 들으면서, 나에게는 하나의 퀘스트가 있었다. 바로 문우들한테 말을 걸어보는 거였다. 글 쓰는 사람들은 다 내향인인 건지 우리는 두 시간 동안 한 교실에서 화기애애하게 수업에 필요한 대화를 나누고도 수업이 끝나면 바로 각자 짐을 챙겨서 일어났다. 그리고 8층 강의실에서 1층까지 내려오는 동안 엘리베이터에서 말 한마디 안 하고, 인사 한 마디 안 나눈 채 뿔뿔이 흩어졌다. 진성 I인 나도 매주 엘리베이터 안에서 1층에 도착하기 전까지 말을 건넬까 말까를 수십 번 고민하다가 아무 말도 못 한 채 다음을 기약하곤 했다. 그런데 이제 그 기회도 3번밖에 안 남았다!


이렇게 매주 토요일에 수업을 들으러 나올 정도로 글에 진심인 사람들을 또 언제 만날지 모른다. 그리고 이들이 쓰는 글과 이들과 수업에서 작품에 대해 나누는 대화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왜 글을 쓰는지 궁금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지 않을까, 언젠가 더 적극적인 사람이 먼저 말을 걸어주지 않을까 기다렸지만 지난 10주 간 그런 일은 없었다.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 그래서 지난주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던 중 나는 같이 엘리베이터를 탄 같은 수업 문우 두 명에게 대뜸 말을 걸었다. “저희 이제 수업 거의 끝인데, 한 번 커피라도 마실까요?”


내가 건넨 그 한 마디를 시작으로 이미 두 달 반 동안 서로 내적친밀감이 쌓인 우리는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면서 화기애애하게 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다들 이렇게 문우들과 말을 해본 게 처음이라고, 말 한마디 안 하고 끝날 줄 알았다는 얘기를 했다. 그렇지만 내심 속으로는 대화를 한 번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 말에 용기를 얻은 나는 또 한 번 용기를 내서 수업용 Band에 “이제 종강도 얼마 안 남았는데 혹시 다음 주 수업 끝나고 시간 되시는 분들 커피 한 잔 해요!”라는 글을 올렸다. 혹시라도 선생님이 Band를 사적인 용도로 사용한다고 언짢아하실까 봐 걱정했는데, 선생님은 호탕하게 “ㅎㅎ누군가 이런 말을 꺼낼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소연님일 줄 몰랐네요^^다들 커피타임 가지세요!”라며 반기셨다. 왜 바로 내가 그 역할을 할 줄 몰랐다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정작 문우들은 반응이 없었다. 과연 몇 명이나 나와 커피를 마셔줄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이번 주 수업에 향했다.


하필 이번 주에는 유독 결석자가 많았다. 원래 12명 정도 되는 수업인데 8명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후반부로 갈수록 앙금이 가라앉듯 빠질 사람들 빠지고 더 진지한 대화가 된다며 좋아하셨다. 확실히 사람이 줄어드니 더 충분한 소통이 가능했고, 이제는 서로 누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고 시선을 나누었다. 덕분에 그날 수업은 유독 화기애애하고 알찼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갈수록 나는 긴장되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그럼 다들 커피 잘 마셔요~”하며 강의실을 나가시자 이제 내가 주도해야 할 차례였다. “저… 그러면 카페 가실 분들 계실까요?” 놀랍게도 그날 수업에 오신 모두가 가겠다고 하셨다.


가볍게 1시간 정도 인사나 나눌까 했던 모임은 훌쩍 3시간이 지나도록 이어졌다. 예상했던 대로 각자 나이와 하는 일, 환경은 다양했다. 나처럼 회사를 다니면서 취미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본격적으로 온갖 수업을 듣고 공모전을 준비하는 분도 계셨고, 소설이 아니라 시나리오를 쓰려는 분, 이미 책을 계약하신 분, 문예창작과를 나오신 분 등등 다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 수업을 대하는지를 들을 수 있었다. 이런 대화의 기회가 좀 더 빨리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뒤늦게 알게 된 배경으로 그동안 각자가 썼던 글과 나눴던 대화들을 반추해 보았다.


한분이, 소설을 왜 읽는지조차 이해를 못 하는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이렇게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너무 소중하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서로 다른 듯 비슷한 목표를 가지고 있기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글로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사실 다들 없었다. 점점 더 순수문학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요즘엔 글이 생업을 대체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쓰는 게 좋아서 쓰고 싶어서 계속 글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뭘 이룰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뭐라도 남기고 싶은. 아니, 다 떠나서 그냥 쓰는 것 자체로도 재미를 느끼는. 그러다 누군가의 마음에 내가 쓴 글이 와닿으면 그걸로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울 거라 말하는 사람들이었다.


얘기를 나누면서 아마추어란 참 애달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재능이 있는지, 프로가 될 수 있는지 확신은 없고, 그럼에도 가끔씩 듣는 칭찬 때문에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꿈을 좇는 애매한 상태. 언젠가 희망은 나쁜 것이기 때문에 판도라의 상자에 함께 들어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차라리 희망이 없으면 깔끔하게 포기할 수 있을 텐데, 희망은 포기하지 못하고 매달리게 만든다. 우리는 불안하고 애매한 상태에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래서 지금은 과정일 뿐 결실을 맺어가는 과정이 앞으로 남아 있다. 나의 글쓰기가 어떤 결말을 맞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내게 가장 애틋한 것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단 한 번이라도 최선을 다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내가 가진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자리를 파하면서, 다들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고 자리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주셨다. 모두가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낸 것 같아서 뿌듯했다. 얼굴을 한 번 트고 나니까 다음번 수업에서 읽을 글들이 더욱 기대되는 효과가 있었다. 또 욕심을 내보자면, 이분들과 더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그러기 위해서도 내가 뭔가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을 때 다들 반갑게 맞아주셨던 것처럼, 내가 앞으로도 서로의 글쓰기를 지켜보고 싶다고 하면 반겨주시려나? 다음 시간에 또 말을 꺼내봐야겠다. 이렇게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길 위에 서 있는 동지들을 주변에 많이 만들고 싶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아, 그리고 얘기 나누면서 알게 된 건데 사실 선생님은 내가 드랍할까봐 걱정을 하셨다고 한다. 가장 어리고, 매일 조금씩 지각하고, 수업시간에 졸더니 급기야 아프다고 빠지기까지 해서……ㅎㅎ 선생님이 내가 사람들을 모을 줄 몰랐다고 하신 것에는 그런 속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누구보다 이 수업과 글쓰기에 진심이라는 것을 남은 시간 동안 보여줘야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공교롭게도, 내 글에 대한 합평은 바로 수업 종강일이다. 앞으로 2주 동안은 글쓰기를 최우선으로 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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