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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ul 28. 2023

그래도 글은 잘 쓰고 싶어서

열등감을 이기려면, 당장 할 수 있는 노력을 하자

4년째 해오고 있던 글쓰기 모임의 다섯 번째 기수가 끝이 났다. 내가 하고 있는 활동들 중 가장 만족감이 높은 활동을 고르라면 단연 이 글쓰기 모임이다.

처음 이 모임을 시작할 때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었다. 입사한 지 1년 정도가 되었을 무렵이었는데, 문득 회사 업무 메일을 쓰다가 내가 문장 하나도 매끄럽게 못 쓴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교 다닐 때 글 쓰는 걸 좋아하던 나였는데,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늘 쓰는 말만 쓰다 보니 단어도 문장도 아득해졌다. 덜컥 겁이 났다. 이대로 내가 점점 더 바보가 되어가면 어떡하지? 그래서 학교 커뮤니티에 글쓰기 모임을 같이 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글을 올렸다. 단순히 문장 만드는 능력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첫 모임의 첫 글을 완성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A4 한 페이지 이상의 글이면 된다고 규칙을 정했었는데, 그 한 페이지를 채우는 게 무척 힘들었다. 어떤 내용으로 채울까 고민하다가 평소의 생각들을 붙잡아두는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떤 얘기는 내가 직접 말하지 않고 또 다른 인물의 입을 빌리는 편이 낫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처음으로 소설을 써보았다. 새로운 언어를, 도구를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후로도 을 쓰는 과정은 밀린 과제를 해내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그렇지만 그렇게 힘들어하며 써내니까, 글들이 남았다. 첫 기수에는 한 달에 한 편, 총 4편의 글을 써냈다. 계속 모임을 지속하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점점 참여를 하지 않았다. 학교 커뮤니티에서 모은 모르는 사람들이라 강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다음 기수에는 내 지인들 중에서 모집해 보기로 했다. 인스타에서라도 모집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얘기를 꺼냈더니, 의외로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렇게 과동기 둘, 밴드동아리 친구, 행사 동아리 친구 이렇게 나를 중심으로 연결된 기이한 집단이 생겼다.

그렇게 시작된 모임이 벌써 5기 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의 사정으로 함께 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생기고, 남은 사람들이 또 각자의 지인을 데려와서 새 기수를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 모임에는 나랑 모르는 사이였던 내 친구의 친구들도 2명 있다. 그 친구들과는 실제로 몇 번 보진 못했지만, 그간 글로 소통한 덕에 오히려 깊은 친밀감이 생다. 참 신기하 감사할 따름이다.

처음 이 모임을 시작할 때에는 내가 글에 이렇게 진심이 될 줄 몰랐다. 글을 써가면서 점점 더 내가 글쓰기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욕심이 났다. 더 잘 쓰고 싶고, 더 좋은 글을 남기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며 다른 글들이 부러워졌다. 그러다가 새롭게 인원을 충원하며 한 기수를 시작하던 어느 날, 각자에게 이 모임에 참여하는 동기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글 쓰는 게 재밌다는 둥,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자서전을 내려면 글을 잘 써야 한다는 둥, 학술 논문을 쓸 때도 글 쓰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둥, 각자의 이유를 듣다가 그 질문을 나한테도 던져보았다. 나는 고민하다가, 언젠가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게 또 하나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 말을 내뱉은 것을 기점으로 글이 너무너무 소중해졌다.

나는 대체로 모든 것을 열심히 하는 게 싫어서 대충 즐기는 수준에서만 만족하려 한다. 그런데 단 하나 예외가 있다면 글쓰기인 것 같다. 잘 쓴다는 칭찬을 들어서는 만족할 수 없고, 잘 쓰는 사람을 보면 부러움과 열등감과 좌절감에 고통스럽다. 내가 다른 것들에 욕심을 내지 않고 단지 하기만 하려는 것은, 사실 나는 누구보다 잘하고자 하는 욕심과 열등감을 심하게 느끼는 사람이어서가 아닐까.

글쓰기 모임을 마무리하는 이번 주는 글에 대한 양가감정에 깊게 빠져있던 한 주였다. 두 달에 걸쳐 쓴 마지막 글들은 다들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쓴 글들이었고, 그중 대부분이 소설이었다. 나는 모임을 하면서 구성원 중에서 글쓰기에 가장 진심인 사람은 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 모임에서의 결과물들을 보자, 다른 사람들이 쓴 글 한 편 한 편이 못 견디게 부러워졌다. 이런 글을 쓰는 압도적인 재능 앞에서 내 글은 너무 초라했고, 내 단점은 더욱 크게 보였다. 한편으로는 이런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하고 있다는 게 영광스러웠다. 그래서 사실 나는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들의 편집자를 해야 하는 사람이 아닐까…? 그런 고민진지하게 빠져버렸다. 글쓰기가 싫어졌다. 더 이상 글을 못 쓸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도둑놈 심보라는 걸. 말로만 글쓰겠다고 하면서 별로 시간과 노력은 들이지 않고 있으면서, 그들이 들인 노력은 생각도 안 하고 결과물만 탐내고 있다는 걸. 그들의 글을 본 감상이 처음에는 열등감과 좌절감으로 다가왔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그 마음이 나도 열심히, 잘하고 싶다는 의지로 변하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내 일상에서 덜어낼 수 있는 것들은 덜어내고 한동안 글 쓰는데 더 노력을 들여야겠다고 다짐했다.


당장 가 할 수 있는 노력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글쓰기 수업을 결제했다. 전에 누군가가 추천해 줬었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할 생각은 없다고 한 발 물러섰던 수업이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잘하는지, 못 하는지, 진정 좋아하는지를 알아보려면 최선을 다해봐야 한다. 나 혼자의 의지가 부족하다면 돈으로 사면 된다. 그런 마음으로 개강을 기다리고 있는 요즘, 모처럼 설렌다.


나를 글 쓰고 싶게 만들고, 그만 쓰고 싶게 만들고, 다시 글 쓰고 싶게 만드는 이 모임… 너무 감사하고 애틋하다는 생각을 하다 보면, 이 모임을 만든 게 뿌듯해서 행복하다. 글쓰기 모임 하길 잘했다.​​ 이 모임에서 받는 자극들이 긍정적인 거름이 될 수 있기를. 이 열등감이 좌절에서 그치지 않고 노력으로 승화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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