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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un 25. 2023

지금 당장 써야 한다

브런치를 시작하며

이번에 작가 신청을 하면서, 거의 2년 만에 브런치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동안 잊고 있던 브런치를 오랜만에 찾게 된 까닭은 문득 소식이 궁금한 사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재작년이던가. 일상 속에서 글을 쓰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회고를 써서 공유하는 회고모임을 잠깐 했었다. 그 회고모임을 하면서 누군가와 단둘이 직접 만났던 적이 딱 한 번 있다. 나보다 나이가 대여섯 살 많으셨던 그분은 책을 출판한 적도 있는 작가지망생이라고 본인을 소개하셨다. 신기하게도 그분이 쓰는 회고 하나하나가 전부 내가 쓴 것처럼 공감되었다. 내가 좀 더 어른이 되면 그분이 될 거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하지만 조모임에서는 한 번도 뵐 수 없었고, 너무 아쉬운 마음에 용기를 내서 개인적으로 꼭 한 번 뵙고 싶다고 연락을 드렸다. 그분은 아주 달갑게 맞아주셨다.


그분은 매주 주말마다 작가 수업과 작사 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다고 하셨다. 단순히 "언젠가 글을 쓰고 싶어요"만 되뇌고 있는 나와 달리, 꿈을 이루기 위한 현실적인 노력을 하고 계셨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안일하게, 나도 몇 년 더 지나면 저렇게 좀 더 꿈에 닿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을까, 내 나이를 듣더니 그분이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지금 당장 쓰세요.
장편 쓰다가 완결 못 내고 죽을 수도 있으니까, 하루라도 빨리 써야 해요.




나는 대학을 칼졸업하고 바로 취업한 탓에 과동기들 가운데에서 가장 취직을 빨리 한 편이었다. 때문에 회사 동기들 중에서도 막내였다. 사회에서 만난 모두가 나에게 아직 어리다며 미래에 대한 걱정을 말렸다. 그 달콤한 말에 나는 재테크도, 운동도, 자기계발도, 그 외 나이 들면 어차피 하게 된다는 모든 미래를 위한 노력들을 미루고 있었다. "조금 늦게 취업했다 치지 뭐." 그게 내 게으름에 대한 면죄부였다. 그런 나에게 지금 당장 시작하라고, 지금 시작해도 늦는다고 말해준 사람은 그분이 처음이었다.


그날의 만남 이후로 그분을 다시 뵌 적은 없다. 나랑 친구가 되기에는 그분이 너무 바쁜 어른인 것 같아서 연락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분이 쓰신 책을 사서 읽어 보았고, 너무 좋아서 친구에게 선물까지 했다. 그리고는 한동안 잊고 지냈지만, 그분이 남긴 말은 주문처럼 계속 내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었다. “지금 당장 써야 한다.”


이번에 회고모임을 다시 하면서, 문득 그분의 소식이 궁금해졌고 브런치가 떠올랐다. 그렇게 2년 만에 들어온 브런치에는 그간 그분이 쓰신 글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분이 최근 작사가로 데뷔하셨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그 노래를 들어보았다. 노래와 무척 잘 어울리는 예쁜 가사였다. 그분의 지난 2년의 노력의 성과에 괜히 내가 감격스러웠고,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나도 2년 간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다. 조금씩이나마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고, 점점 더 글을 열심히 써야 한다는 압박감도 느꼈다. 하지만 발전이 없는 것 같아 정체되어 있었다. 이제는 작법에 대한 공부를 하려고 알아보다가, 같은 목표를 가지고 그런 수업을 들은 적 있는 친구들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꾸준히 글을 써오긴 했지만 한 번도 냉정하게 평가받은 적이 없었다. 그들과 서로 글을 공유하면서 내 글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보완해야 할 점인지 비판을 받았다. 좀 더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 내 글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몇 년 전에 신청했다가 떨어진 브런치 작가를 다시 한번 신청했고, 붙었다. 신청서에는 작가가 되는 과정을 적어보겠다고 썼다. 그 신청서가 합격했다는 것이 마치 앞으로의 내 노력을 응원받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정말 열심히 여기에 기록할만한 노력을 해나가고 싶다는 의욕이 든다. 지금부터 당장!


별것도 아닌 일이지만, 덕분에 이번 한 주 내내 기분이 좋았다. 무엇보다 글 만을 위한 공간을 가지게 되었다는 게 설렌다. 현실에서의 나와 분리된 글 쓰는 부캐가 생긴 기분이다. 오직 글 만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에게는 내 글이 어떻게 느껴질까? 브런치에는 정보전달용 글이 많은 터라 내가 쓰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글들은 별로 관심을 못 받을 것 같다. 그래도 나는 내가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 뭔가를 해나가고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살면서 만나게 되는 모든 인연들이 나에게 무엇인가를 남긴다고 생각한다. 어떤 씨는 몇 년이 지나서야 싹이 튼다. 그분은 본인의 말을 내가 이렇게 새기고 있는 걸 알면 부담스러워 하시려나. 아직은 용기가 안 나지만, 언젠가 축하한다고, 그리고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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