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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Feb 07. 2024

내 안의 작가는 비록 이영도가 아니지만

소설 쓰기 수업 종강 & 개강 후기

“왜 소설을 쓰고 싶어요?”


그동안 소설을 쓰고 싶다는 얘기를 하면서 많이 나눈 질문이다. 이번 주는 기존에 듣던 수업의 종강과 새로운 수업의 개강이 겹친 주라서 또 이 질문을 주고받았다. 그냥 대충 대답할 때도 있고 구체적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까지 대화가 이어질 때도 있다.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저는 사실 <드래곤라자> 같은 대작을 쓰고 싶었는데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떠오르는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드래곤라자>이다. 학창 시절 친구들이 귀여니 소설에 울고 웃을 때, 나는 대신 판타지 소설들을 읽으며 울고 웃었다.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의 목숨을 건 비장미가 좋았다. 내가 소설을 씀으로써 하고 싶은 것은 아마 새로운 세상의 창조였을 것이다. 언젠가 내가 만든 인물들도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다면 무척이나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막상 소설을 배우고 써볼수록 깨닫는 건, 나는 내가 경험한 것 이외에는 쓸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조금이라도 현실과 다른 요소를 넣을라치면 설정을 촘촘히 구성하는 것부터 난항을 겪었다. 인물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쓰는 글의 모든 인물은 전부 나였다. 결국 에세이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글들만 쓰면서 한계를 느꼈다. 과연 나는 소설을 쓸 수 있는 사람인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에는 내 상상력은 너무 빈곤하지 않은가?


여러 가지 요인들로 시간과 에너지의 한계를 느끼고 있는 요즘이기에, 나는 습관처럼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차라리 누군가 나한테 속 시원하게 내가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만약 재능이 없다면 깔끔하게 포기하고, 재능이 있다면 절실하게 매달려볼 수 있을 거라고.


그런 내게 이번 주까지 마감이었던 글쓰기 과제는 큰 의미로 다가왔다. 이 글은 소설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12주간 은 수업을 마무리하는 글이었다. 그동안 매주 토요일 먼 길을 오간 결실을 최선을 다해 맺어서 평가받아보고 싶었다. 또한 선생님께도 내가 겉보기와 달리 한량이 아니라 글에 진심인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만약 칭찬을 받는다면 그게 나한테 계속 써보라는 확신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주 내내 내 정신은 글쓰기 수업 과제에 가있었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짬이 날 때마다 글을 생각했고, 심지어는 글을 쓰려고 조기퇴근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토요일이 되어서 선생님과 문우들을 마주하였다. 그들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강의실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떨렸다. 사실, 그날의 합평에서 잘 썼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듣진 못한 것 같다. 오히려 비판을 훨씬 많이 받았다. 그렇지만 그 비판들을 들으면서 좌절하기보다는 막힌 곳이 뚫리는 듯한 시원함을 느꼈다. 나는 더 나은 작품이 될 내 글을 기대하며 얼른 다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자, 재능이 있든 없든 좀 더 써봐도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은 수업의 종강일이었기 때문에 수업이 끝나고 문우들과 간단하게 쫑파티를 했다. 다들 내 글이 겉으로 보이는 나와 너무 달라서 반전이었다고 했다. 나는 가볍고 통통 튀는 판타지를 쓸 것 같은 이미지인데, 실제로 내놓은 글은 내면을 파고드는 찐 순수문학이었다고 했다. 그 말에, 나도 원래 판타지를 쓰고 싶었지만 재능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새로 개강하는 수업의 오리엔테이션에서 새로 뵙는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들 써보기 전까지는 자기 안에 들어있는 작가가 카프카일지, 조앤 롤링일지 모르는 법이에요. 일단 써봐야 자기가 어떤 성향의 글을 쓰는지 알 수 있어요."


자기소개를 하 “저는 <드래곤라자>를 쓰고 싶었지만, 제 안에는 이영도가 없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선생님이 그래도 괜찮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괜찮다고, 그러면 그냥 내 안의 작가가 쓰고 싶은 글을 계속 써보겠다고 대답했다.


확실히 나는 판타지에는 재능이 없다. 어쩌면 소설 자체를 쓰는 데에 재능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쓰고 싶다는 마음은 충만한 요즘이다. 그거면 되었다. 소설이 되지 못할 에세이라도, 혹은 에세이가 되지 못할 일기라도, 하다 못해 그냥 짧은 기록이라도, 계속 쓰자. 언젠가 이 쓰고 싶다는 마음이 고갈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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