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일부터 8월 4일까지 열린 2024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은 나의 세번째 펜타포트였다. 멋모르고 친구들과 갔던 재작년, 혼자 갔던 작년에 이어 올해는 호기롭게 3일 솔플에 도전했다! 그만큼 내가 락을 좋아해서라기보다는 그냥 나의 홈그라운드 송도에서 열리는 축제니까 상황이 허락하는 한 다 가자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집 앞 마실 나가는 마음가짐으로 별생각 없이 간 펜타포트는 아주… 벅차게 즐거운 시간이었다. 금토일 3일 내내 피로에 찌든 상태와 도파민 터진 상태 사이를 오가며 반쯤 정신이 나가있었던 것 같다.
펜타포트 같은 큰 락페는 무대가 여러 개다. 각 무대에서 정해진 시간에 맞춰 순서대로 공연이 진행되고, 관객들은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곳에 가서 공연을 보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같은 날 티켓을 가지고도 각자가 즐긴 락페의 후기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내가 스탠딩으로 본 팀은 다음과 같다.
1일 차 금요일 - QWER, 브로콜리 너마저, 새소년, TURNSTILE
2일 차 토요일 - 브로큰 발렌타인, 이승윤, 실리카겔, JACK WHITE
3일 차 일요일 - 터치드, 글렌체크, DAY 6, 잔나비
함께 밴드도 하고 글쓰기 모임도 해오고 있는 친한 친구는,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삶을 산다면 Rockstar가 되고 싶다는 글을 썼었다. 그 친구와 공유하는 게 많은 나도 그 글에 담긴 마음에 깊게 공감했었다. 언젠가 메모어에서 들은 공연을 보러 가서 무대에서 발산하는 에너지에 벅찬 행복을 느낀다는 이야기도 떠올랐다. 무대 위 뮤지션들이 쏟아내는 열정을 정면으로 받았기 때문일까. 3일 내내 땡볕에서 더위에 허덕이고 이만 오천 보를 방방 뛰면서 온몸이 땀에 절었지만, 페스티벌이 끝나고도 지금까지도 생기가 도는 기분이다.
그리고 또 내가 이토록 음악에 진심인 것도 새삼 신기했다. 사실 진심이라고 표현하기가 좀 머쓱하긴 하다. 나는 음악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냥 얄팍하게 즐기는 사람에 가깝고, 잘 알지도, 잘하지도,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가장 사랑하는 시간을 꼽으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시간 중 하나는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밤운전을 하는 순간이다. 캄캄한 어둠에 휩싸여서 세상과 단절된 상태로 오직 음악만 가득 찬 작은 공간에 나 홀러 오롯이 남겨지는 순간. 그 순간 나는 아주 완전한 충족감과 벅차오르는 기분을 느끼곤 한다.
이번 페스티벌 중에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나라는 자아가 희미해지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발을 구르며 심장이 온몸을 두드리는 드럼 킥 소리에 맞춰서 뛰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 그 순간, 내가 지금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구나 싶은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을 잊지 못해서 곧바로 2025 펜타포트 일정을 캘린더에 적어 넣으면서, 하, 제대로 빠져버렸다 싶었다. 한때 극심한 효율충이었던 나는 예술이라는 게 사는 데 하등 쓸모없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예술이 사람의 정서와 행복감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지난 3일간의 페스티벌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들을 기록해 본다.
[TURNSTILE]
타임테이블이 공개되고, 사실 첫날 가장 기대했던 팀은 새소년이었다. 새소년을 처음 본 것은 재작년 펜타포트였는데, 그때까지는 주변에서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음에도 노래가 좋은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펜타포트에서 무대를 한 번 보고는 청중을 압도하는 퍼포먼스와 라이브에 그대로 반해버렸다. 작년 펜타포트도 새소년이 나오는 날을 갔는데 그때 느낀 충격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세 번째 보는 이번 펜타포트 무대는… 많이 아쉬웠다. 아마 최근 지향하는 음악 스타일이 내 취향이 아닌 것 같았다.
그날 본 무대 중에는 딱히 인상 깊은 무대가 없었다. 이번 펜타포트는 소소하려나, 생각하면서 새소년 무대가 끝난 뒤 아쉬움을 안고 바로 집으로 가려던 참이었다. 나는 솔플러들이 모이는 곳에 짐을 뒀었는데, 집에 갈 채비를 하는 나를 보고 누군가 말을 걸었다. “왜 벌써 가세요, 헤드라이너 보고 가셔야죠.”
첫날의 헤드라이너는 TURNSTILE이라는 해외밴드였다. 나는 찐 락덕후라기엔 견문이 좁은 관계로 해외밴드에는 관심이 없었다. 대충 내가 송도 살고 자전거 타고 집에 돌아갈 거라는 걸 들은 그분이 다시 말하셨다. “에이, 자전거 타고 오셨다면서요. 얘네는 비행기 타고 왔는데, 봐줘야 예의죠.”
그 말에 납득한 나는 턴스타일의 무대까지 기다렸고… 그렇게 보게 된 그 무대가 나의 펜타포트에 대한 열정을 폭발시켜서 3일 내내 달리게 만들었다. 해외에서 비행기 타고 온 월드클라쓰 밴드의 공연은 수준이 달랐다. 아는 곡인지 모르는 곡인지, 내 취향인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연주하는 것만 봐도 입이 떡 벌어졌다. 모든 세션이 각자 위플래쉬를 찍고 있는데 합이 정확하게 맞았다. 그 모든 게 신기했다. 와, 실력이 고도로 뛰어나면 나 같은 알못도 압도당할 수 있구나 싶었다. 가히 충격적인 무대였다.
더 충격적인 상황은 마지막 곡에서 벌어졌는데, 갑자기 턴스타일 멤버들이 관객들 보고 무대 위로 올라오라고 손짓했다. 그리고는 정말 관객들이 하나 둘 펜스를 넘어 무대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걸 본 다른 사람들도 무대를 향해 달려갔다. 그렇게 무대 위에 사람이 빽빽이 차서 턴스타일 멤버들이 안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내가 어리둥절하고 있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무대 위로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 팀은 원래 자주 이런다고 했다. 다만, 이렇게까지 사람이 잔뜩 올라온 적은 없었다고, 아마 이들도 놀랐을 거라고…
이번 무대를 통해 크게 두 가지를 느꼈다. 첫째, 속단하지 말자. 내 취향인지 아닌지는 경험하지 않으면 모른다. 해외밴드 관심 없다고 집에 갔으면 이 대단한 무대를 놓칠 뻔했다.
둘째, 망설이지 말자. 사실 사람들이 무대 위로 올라갈 때, 나도 따라서 올라가고 싶었다. 그런데 이미 늦은 거 아닐까 하고 내가 망설이는 사이 다른 사람들이 먼저 뛰어올라갔고 결국 정말 무대가 가득 차고 말았다. 그다음 날 보니 무대와 펜스를 연결하는 계단이 사라졌고, 무대와 적정 거리를 유지하라는 경고문이 지속적으로 강조되었다. 이제는 정말 올라가기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그 무대가 내가 펜타포트 무대에 올라가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망설이다가 그 기회를 놓쳐버렸다. 턴스타일 멤버와 포옹도 했다며 자랑하는 사람을 보고, 지금의 아쉬움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기회가 온다면 놓치지 말자!
[브로큰 발렌타인]
이번 펜타포트 라인업이 떴을 때 가장 반가웠던 밴드는 브로큰 발렌타인이었다. 브로큰 발렌타인은 나에게 매우 애틋한 팀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생 때 밴드동아리를 하면서 가장 좋아했던 팀을 꼽으라면 쏜애플, 국카스텐, 브로큰 발렌타인이었다. 셋 다 일렉기타 사운드가 두드러지는 팀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현란한 기타 이펙터가 특징인 쏜애플/국카스텐에 비해 브로큰 발렌타인은 이펙터 활용이 간결하고 기타 톤이 묵직했다. 기타 이펙터를 잘 다룰 줄 모르고, 디스토션을 좋아해서 험버커 픽업만 달린 메탈기타를 샀던 나로서는 브로큰 발렌타인의 곡들이 가장 치고 싶은, 그리고 그나마 칠 수 있는 곡들이었다. 심지어 과선배들과 브로큰 발렌타인 커버 팀을 하기도 했다. 동아리를 졸업하는 마지막 공연 때 각자 가장 하고 싶은 곡을 고르자는 말에도, 내가 고른 곡은 브로큰 발렌타인의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였다. 그리고 무대에서 그 곡을 연주했던 순간이 내 3년 간의 밴드 생활에서 가장 벅찬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나의 브로큰 발렌타인은 2015년에서 멈춰있었다. 2015년 보컬 반이 예기치 못한 사고로 사망했다. 또다른 멤버가 탈퇴했다는 것까지 듣고, 그 이후의 행적은 알지 못했다. 그 뒤로도 나는 브로큰 발렌타인의 노래를 들었지만, 내가 듣는 노래는 다 멈춰있는 과거의 노래들일뿐이었다. 현재 어떤 상황일지 굳이 찾아보고 싶진 않았다. 비록 내가 모를 뿐, 계속 음악을 하면서 잘 지내고 있었으면 했다. 그러다가, 이번 펜타포트 라인업에서 오랜만에 이름을 발견한 것이다.
점심약속을 급히 마무리하고 부지런히 페스티벌 현장으로 향하면서, 조금은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오후 2시 무대라 땡볕에 관객들이 없으면 어쩌지, 내가 아는 그 목소리가 아니라서 위화감이 들면 어쩌지. 그런데 땀 흘리며 부리나케 도착한 무대 앞에는 관객이 가득했고 뜨거운 함성과 함께 물대포가 쏟아지고 있었다. 역시, 아무렴 브로큰 발렌타인이 인기가 없을 리가 없지! 가장 유명한 곡이자 지금껏 정말 지겹도록 들은 곡, <알루미늄>의 기타 솔로까지 다 같이 떼창 하는 그 순간 벅차오르는 기분에 머리가 뎅- 하고 울린 것 같았다.
노래가 가지는 힘은 대단했다. 순식간에 나를 기타를 둘러메고 합주하러 다니던 그때 그 시절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보컬이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펜타포트는 12년 만에 왔는데, 반겨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러면서 덧붙였다. “여러분, 저희는 그동안 계속 열심히 해오고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데 마음이 찡했다. 그동안 계속 응원하고 지켜보지 않은 게 미안했고, 나의 대학생활을 채워주어서, 역경을 딛고도 지금까지 계속 음악을 해주어서,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벅찬 감동을 주어서 감사했다. 부디 앞으로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음악활동 하시길. 그래서 계속 볼 수 있길! 이번 무대를 마치면서 행복해 보이는 그들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빌었다.
[실리카겔 / 터치드]
계속해서 이런 락페스티벌에 오게 되는 이유는 내가 원래 좋아하던 밴드를 보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사랑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껏 갔던 페스티벌마다 최소 한 팀씩, 혹은 한 곡씩 보석 같은 순간들이 있었다. 올해 펜타포트에서도 그런 팀들이 있었다. 바로 둘째 날 실리카겔, 셋째 날 터치드가 그랬다.
실리카겔이 인기가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뭔가 진정한 락덕후들이 좋아할 것 같은 팀인 것 같아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토요일 라인업 중에는 가장 유명한 팀이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무대를 꼭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예습했다. <NO PAIN>이나 <Tic Tac Tok> 같은 곡들은 대중적이고 좋았지만, 딱히 보컬의 가창력이 두드러지는 것 같지도 않았고 난해한 곡들도 많았다. 과연 무대는 어떨까? 궁금했다.
공연장 앞을 가득 채운 인파를 보면서 이렇게나 인기가 많다는 것에 감탄한 것도 잠시, 곧이어 등장한 교복 치마를 입은 곱상한 청년을 보고 당황했다가, 이윽고 이어지는 무대에 제대로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는 왜 이렇게 천재들이 많을까? 미친 사람처럼 연주하는 그들을 보며 나는 “진짜 미쳤다” 말만 반복했다. 표현력이 부족해서 그 이상의 표현을 하지 못하는 게 통탄스러웠다. 음원만 듣고는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눈으로 보이는 것, 또 몸으로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다. 각 악기가 저마다 실력을 뽐내는데 그게 기가 막히게 어우러져서 소리가 빈틈없이 꽉 차는 느낌이었다. 밴드 음악의 묘미가 이런 거구나 싶었다. 애초에 쏜애플을 좋아했던 나로서는 사이키델릭한 사운드가 취향이 아닐 수 없었다. 덕통사고니, 치였다느니 하는 표현의 의미를 깨달았다. 뭔가를 새롭게 사랑하게 되는 순간은 정말 교통사고처럼 덜컥 찾아오기도 한다.
셋째 날 오후 3시 무대였던 터치드는 실리카겔과 달리 원래 좋아하던 팀이었다. 강하고 거친 기타 사운드, 특히 파워코드와 팜뮤트에 환장하는 나로서는 취향저격인 곡들이 많았다. 이번 펜타포트 무대를 보는 것은 좋아하는 곡들의 라이브를 본다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잘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미친 듯이 잘할 줄은 몰랐다. 언니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보컬의 카리스마 넘치는 단단한 목소리와 무대 장악력에도 입이 떡 벌어졌지만, 베이스와 키보드, 기타, 드럼까지 모든 세션의 실력이 수준급이었다. 이 팀은 대낮 이른 시간에 나올 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사람들도 “왜 이렇게 잘해?”하며 웅성거렸다.
보컬이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저희가 펜타포트 처음인데요, 잘하죠? 몇 년 뒤에 이 순간에 함께 했다는 걸 자랑스러워하시게 저희 열심히 할게요. 역사적인 순간을 채워보겠습니다.”
내 주관적인 체감으로는 3일 동안의 무대 중에서 가장 잘한 팀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마 몇 년 뒤에 헤드라이너로 등장할 거라 확신한다. 헤드라이너로 서는 팀들이 다 자신의 처음 땡볕에서의 시작을 회상하며 감상에 젖는데, 그 순간 내가 있었다는 게 자랑스러워질 것 같다.
[잔나비]
처음 라인업이 발표되면서, 3일의 펜타포트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헤드라이너가 잔나비라는 것에 사람들의 반응은 딱히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코로나 이전 거물급 해외밴드들이 헤드라이너로 섰던 때와 비교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잔나비는 재작년 펜타포트에서 서브헤드로 섰을 당시 망언을 하기도 했다. 작은 무대에서의 첫 시작을 떠올리면서, 지금까지 많이 올라왔다고, 마지막 순서인 헤드라이너로 서기까지 “한놈만 제끼면 돼.”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무대에서 다 불태우고 집에 가자고 말하기도 했다. 그 말이 그날 헤드라이너였던 뱀파이어 위켄드를 무시한 발언이라며 한동안 몰매를 맞았다. 그런 잔나비를 2년 뒤 헤드라이너로 세운 것에 대해 언짢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 그 재작년 펜타포트가 내 첫 펜타포트였다. 나는 잔나비 무대를 보러 갔었다. 그리고 그 발언을 직접 들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맹세코 잔나비를 좋아해서는 아니었다. 그냥 그럴 수도 있지 싶었다. 좀 경솔하긴 했지만 얼마나 감격이었으면 그럴까. 다들 경솔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나는 항상 실수 하나로 누군가를 보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마침내 헤드라이너까지 된 잔나비의 무대를 그저 기쁘게 즐기고 싶었다.
물론 나도 잔나비가 헤드라이너로서는 좀 약하지 않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시선을 부수듯, 1시간 20여분 동안 모든 무대가 에너지가 폭발했다. 이렇게 잘하는 팀이었나 싶을 정도였다. <사랑하긴 했었나요~>,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투게더>, <꿈나라 별나라>, <정글> 등 다같이 떼창할 수 있는 곡들이 이어지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인 <See your eyes>가 마지막 곡으로 흘러나와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수십 번, 어쩌면 수백 번 들은 곡을 수많은 사람들과 온몸으로 함께 부르면서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후에 알게 되었는데, <See your eyes>가 잔나비 데뷔앨범 타이틀곡이라고 한다. 마침내 헤드라이너로 오른 무대의 마지막 곡으로 데뷔곡을 고르면서 얼마나 벅찼을까. 이어지는 앵콜 요청에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가 흘러나왔고, 전광판에는 흔들리는 핸드폰 불빛들을 바라보는 보컬의 눈빛이 한참동안이나 잡혔다.
펜타포트에서는 다음 순서 팀을 위해서 앵콜을 하더라도 시간을 넘기지 않는 게 예의이다. 헤드라이너의 경우는 그 제한에서는 좀 자유롭다고는 한다. 그렇지만 잔나비는 시간 맞춰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밴드 세션들과 부둥켜안으며 무대를 마무리했다. 공연시간 80분 내내 그랬다. 지난번에 보았을 때보다 유독 말수가 적었고, 유독 공손했고, 유독 벅차오른 모습을 보였다. 나는 괜히 그 모습이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것처럼 보여서 또 짠했다. 페스티벌이 끝나고 지하철역으로 향하는데 누군가들이 잔나비에 대해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걔네 그때 그렇게 떠들더니 이번에는 조용하더라. 그때의 그 말이 앞으로 얼마나 더 꼬리표처럼 따라붙을까?
다만 나는 세상 사람들이 더 서로에게 관대해졌으면 한다. 굳이 흠을 찾아서 욕하고 싫어하기엔 놓치게 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세상 그 어느 것 하나 흑백으로 가르기 쉽지 않은데, 하물며 사람을 어떻게 한 순간만으로 판단할 수 있을지.
그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오는 길에 찍었던 영상들을 다시 보았다. 공연을 보면서 촬영을 하면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지양해 왔는데, 이번에 찍은 영상들을 보면서는 다시 그 순간을 되새길 수 있어서 좋았다. 처음 펜타포트를 왔을 때는 돈 주고 개고생 하는 이런 짓 따윈 다시 안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빠져버렸을까. 매 순간 변하는 나 자신도 신기하다.
유난히 길었던 이번 여름의 하이라이트를 제대로 찍은 것 같다. 뜨거운 여름 동안 내가 얻은 것은 확실하다. 열린 마음으로 풍부하게 모든 것들을 받아들여야지.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는 그게 내 일상의 방향성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