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오면서 고과 면담을 진행했다. 개인적으로 방황도 많이 하고 3개월 휴직도 했던 한 해였지만 개인실적은 크게 나쁘지 않았다. 휴직 전후로 열심히 하긴 했나 싶었다. 파트장님이 그런 내게 다른 부서 가지 말고 계속 같이 일하면 안 되냐고, 욕심이 난다고 하셨다. 어차피 회사에서 안 보내주는데요, 뭐. 그렇게 시큰둥하게 대답하고 말았지만 그 말을 듣는데 아주 잠깐, 파트장님과 함께 하는 미래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갑작스러운 조직개편으로 부서가 여러 파트로 쪼개지고, 보직장들이 전부 바뀐 지 두어 달 정도가 지났다. 바로 전 글에 바뀐 보직장들이 강압적이고 멍청하다고 적었지만 사실 조직 구조가 설명하기 어려워서 대충 뭉뚱 거린 거였고, 업무 상 가장 밀접하게 소통하는 파트장님만은 오히려 더 괜찮은 분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천만다행이었다.
조직개편이 이루어지고 부서이동을 실패한 직후, 나는 회사에 대한 분노와 좌절감으로 잔뜩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는데 설상가상으로 한창 바쁜 시기라 일이 쏟아졌다. 예전이면 군말 없이 해내려 했지만 최근의 나는 오히려 일 안 하는 빌런이 되어서 부서에서 쫓겨나고 싶었다. 내가 일을 못해내는 건 더 이상 못하겠다고 오래전부터 말해왔음에도 그 말을 안 들어준 회사 책임인거지 뭐. 그런 마음으로 업무를 할당하는 파트장님께 통보했다. 저는 이 이상 못합니다. 만약 제가 이걸 안 해서 파트장님이 곤란해지시면, 그냥 윗선에 보고해 주세요. 사실 파트장님은 이제 막 나를 맡게 되신 거라, 나의 이런 태도에 당황하실 게 뻔했다. 그런데 파트장님은 그저 그런 나를 이해한다고 하셨다. 그러고는 업무의 편의를 봐주시면서,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부서이동이든 뭐든 바라는 대로 되길 응원하고 돕겠다고. 고작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더 이상 뻗댈 수 없었다.
우리 부서의 고질적인 문제는 우리 부서가 너무 핵심 부서라는 것이다. 대개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조직이 그렇듯이 우리 부서에서 하는 일은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평소에는 눈에 띄지도 않고 성과를 인정받지도 못한다. 마치 불수의근으로 이루어진 몸속 장기가 하는 일과 비슷하다. 의식하지 않아도 24시간 알아서 잘 굴러가지만, 제대로 굴러가지 않으면 존재감이 크게 두드러진다. 즉,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난리가 난다. 그래서 지금껏 열심히 하는 것은 그냥 기본 베이스였고 칭찬받을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단지 내가 배워온 대로 기본만 지키면서 일했을 뿐인데,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 얼떨떨했다. 단순히 인사치레인 걸 안다. 그렇지만 단지 말을 예쁘게 하는 것 이면에는 듣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 우리는 그 마음이 고픈 상태였다.
이번 주에 나는 실수를 하나 했다. 이번 주에 급하게 해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 필요한 자재가 없는 것을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사용해야 할 당일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결국 그 일을 못할 상황이 되어 파트장님께 보고 드렸다. 미처 못 챙긴 내 잘못이므로 잔뜩 주눅이 든 상태였다. 그런데 파트장님은 전혀 나무라는 기색이 없으셨다. 그냥 회사 온갖 부서와 외부 제조사에도 연락을 돌리는 등 자재를 구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 주셨다. 덕분에 타 부서로부터 얻어온 자재로 그 일을 간신히 완료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파트장님은 너무 고생 많았다는 말을 건네셨다. 챙겼어야 할 것을 놓친 것은 내 잘못이다. 그걸 구하기 위해 뛰어다녔어야 하는 것도 내 책임이다. 그렇지만 그게 오롯이 나만의 짐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 일은 정말 나뿐 아니라 내 상급자인 파트장님의 일이기도 했고, 파트장님이 발 벗고 나선 건 나를 일 시키기 위함이기도 했다. 다 알지만, 그날 퇴근하는 길에 몽글몽글한 마음과 함께 또다시 여기서의 미래를 잠깐 그려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부서장에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일까. 조직개편으로 부서가 여러 개로 나누어지면서 보직장의 수가 늘어났고, 그 덕에 여러 리더십을 비교해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명확한 지시와 동기부여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에 맞는 명확한 판단과 지시는 팀원을 헷갈리거나 불안하지 않게 만들고, 업무효율이 높아지며 신뢰를 느끼게 만든다. 특히 나같이 명료한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중요한 요소이다. 동기부여의 경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이번 파트장님의 동기부여 방법은 격려와 칭찬이었다. 나는 내가 그렇게 칭찬과 인정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번 파트장님을 만나면서 정말 오랜만에 열심히 일하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회사 생활을 해오는 동안 내가 보직장들에게 느낀 감정은 좀 웃기지만 연민의 마음이 컸다. 당연히 그들은 항상 나보다 더 바쁘게 밤낮없이 일했다. 그들이 우리에게 과도한 업무를 지시하더라도, 그들을 탓할 순 없었다. 그들이라고 해서 별 수 있겠는가, 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나는 오히려 중간 관리자의 고충을 이해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믿음직한 부하직원이 되어서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다. 이번에도, 더 윗선 보직장들이 내가 보기에 무능력한 사람들이었기에 상대적으로 파트장님에 대한 연대감이 강해졌다. 파트장님은 그래도 본인이 이렇게 지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분이셨다. 그럼 나는 또 그 이유를 납득해 버리고 그 지시를 따랐다. 정말 나를 효과적으로 다루고 있는 셈이다.
부서이동을 위해서 이런저런 면담을 했지만 번번이 다 실패로 끝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다들 각자의 사정이 있었다. 회사의 사정, 인사팀의 사정, 우리 부서의 사정… 나는 그 사정들을 다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그들이 내게 던지는 뜬구름 같은 말들을 믿었다. 조만간, 정말 조금만 더 버티면, 다음번에는 꼭, 조직개편이 되거나 직무가 바뀌거나 부서를 바꿔주거나 할 거라고. 그런 나를 보면서 내 주변 사람들은 물러터져서 답답하다고 했다. 그거 그냥 나를 일 시키기 위한 입발린 소리일 뿐이라고. 사실 지난 6년 동안도 항상 그런 식이었다. 지금은 힘들지만 곧 나아질 거라고, 너무 잘하고 있다고, 안 맞는 직무도 시간이 지나면 능숙해질 거라고. 결과적으로 그 말들이 거짓이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이번엔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 정말 다들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을까, 희미한 기대를 하게 된다.
비단 회사에서 뿐 아니라 대체로 나는 늘 과하게 상대 입장을 생각하는 편이었다. 보다 어렸을 때에는 내가 마음 쓰는 만큼 상대도 나를 생각해주지는 않는다는 걸 잘 몰랐다. 그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상처받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넘겼다. 그러던 어느 날 소소하게 받은 상처들이 쌓여서 터졌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던 친구를 한동안 신경 쓰며 챙겨주고 있었다. 그러다 그 친구한테 작은 부탁을 했는데, 차갑게 거절당했다. 정말 대수롭지 않은 작은 사건이었는데, 그 순간 그동안의 서러웠던 일들이 폭발하듯 스쳐 지나갔다. 그날 학교에서 자취방까지 밤길을 걸어가는 20여 분 동안 펑펑 울었다. 사람들은 왜 내가 생각해 주는 만큼 나를 생각해주지 않는지, 앞으로 살아가면서 또 얼마나 많은 상처받게 될지 무서웠다. 그때, 친한 친구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그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자기는 내가 언제 어떻게 행동한 게 본인을 배려한 것임을 알아서 고마웠다고. 이렇게 알아차리고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테니, 그 사람들에게 더 잘하면 되는 거라고. 그 말을 들으며 그냥 별 수 없이 나는 이렇게 살아야겠구나 싶었다.
내가 사람을 잘 믿는 이유는 내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선의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입장을 고려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하는 나는 아마 세상을 좀 더 이상적으로 보는 것 같다. 남들은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머리로는 하면서도 막상 매 상황을 마주하면 혹시,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나를 아껴주는 보석 같은 사람들이 분명 있었으니까. 내가 파트장님에게 인간적인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파트장님이 힘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을 하듯이, 파트장님도 나한테 그럴 거라고 믿고 싶다. 나중에 결국 그냥 회사 사람을 다룰 뿐이었다는 걸 알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지 뭐. 그게 바보 같은 착각이든 아니든, 돌고 돌아서 결국 일은 별 의미가 없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기 위한 생계유지의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열심히 일할 동기가 하나 생겼다면, 그걸로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