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보건실 운영 마인드
나는 대한민국 보건교사다. 간호학과를 나와 3차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보건교사가 되었다. 대학생 때 교직이수과정에서 교육학을 배웠고, 교생실습 기간 4주 동안 아이들과 수업도 하고, 보건실에서 간단한 처치도 하며 학생들을 만났던 경험도 있지만, 첫 발령을 받은 나는 교사보다 간호사의 정체성이 짙었다.
첫 발령지는 당혹스럽게도 남자공업고등학교였다.
남학생들은 30도 넘는 뜨거운 여름에도 티셔츠가 젖을 만큼 땀을 흘리며 축구를 했고, 계단도 무려 3칸씩 뛰어올라 다녔다. 매점 앞에서는 세렝게티 국립공원의 맹수들이 따로 없었다. 쟁취한 햄버거는 10초 만에 자취를 감췄다. 10대 남자아이들의 식도 반경은 도대체 몇 센티미터길래 저렇게 음식을 씹지 않고 삼킬 수 있는 것일까.
여고를 거쳐 여대에 가까운 성비를 가진 간호학과를 졸업한 나에게 남자고등학교는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찬 곳이었다.
"선생님, 저 머리가 너무 아파서 한 시간 쉬고 싶어요." 하루에도 100번씩 듣는 말이다. 운동장을 거침없이 뛰어다니던 아이들은 보건실만 오면 이두근이 아팠다가 삼두근이 아팠다가 손톱 거스러미까지 떼어달라고 모여든다. 하지만 나는 그저 3차 병원 간호사의 정체성을 가진 냉혹한 팩트 감별사일 뿐이었다. 현재 불편함을 느끼는 증상, 기저질환, 바이탈 등을 확인하고 몸에 큰 이상이 없다고 생각되면. Chat GPT도 울고 갈 만큼 정형화된 목소리 톤으로 학생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말했다. "꾀병이야, 올라가" 남자 공고에서 4~5개의 보건실 침대는 늘 만석이기에 나름 냉혹한 판단력이 필요했다.
학교폭력 사건을 대할 때도 나의 팩트 감별은 계속되었다. "A가 B를 복부 타격 1회, 두부 타격 1회 했습니다. 보건실에 처음 들어왔을 때 B의 얼굴에 깊은 상처가 있었습니다. 오른손에 반지를 끼고 얼굴을 때렸더라고요. 눈이라도 맞았다면 더 큰 일이 있었을 겁니다. 명확히 A가 일방적인 가해자입니다." 마치 판사봉이라도 든 것처럼 내 눈으로 본 것만 믿고 그에 의거해 의견을 냈다.
어느 날 학교폭력사건의 피신고자인 A가 머리가 아프다고 찾아왔다. 신체사정결과 몸이 아프지 않은 것은 확실했으나, 촉촉한 눈가를 보고 나도 모르게 ‘오늘은 그냥 속아주겠다’며 침대 하나를 내주었다. 얼마 후 커튼 뒤에서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사정은 이랬다.
A의 어머니는 외국인이었다. 학교폭력사건의 신고자인 B가 ‘너네 엄마 외노자’ 등 입에 담기 힘든 비하 발언을 몇 달 동안 반복적으로 해왔다는 것이다. 학교폭력으로 신고하고 싶었지만, 이 일을 어머니가 알게 되면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서 참았다고 한다. 그러나 사건이 있던 그날은 결국 참지 못해 주먹을 날렸다. 주먹을 맞은 B가 "이거 학교폭력이야! 너네 엄마 데려와!"라고 소리 질렀을 때 A는 아차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학생안전부에서 사건 경위서를 기록하다가 눈물이 터져버렸다고 했다. 이 사건 경위서를 어머니가 읽으실 생각을 하니 가슴이 너무 아프고, 그 순간을 참지 못한 자신이 너무 원망스럽다고 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 역시 얼굴이 화끈거렸다. 사건의 막전 막후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결과만 놓고 판사봉을 휘두르듯 A를 일방적인 가해자로 몰아넣었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는 교과서를 막 읽고 나온, 세상사는 전혀 모르는 어린 청년일 뿐이었다. 물론 앞뒤 막론하고 폭력은 좋지 않다. 그러나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세상은 칼로 두부를 자르듯 흑과 백으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사실 기반 팩트 뒤에 더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이제 나는 보건실을 '몸이 아픈 곳을 치료하는 곳'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나의 보건실은 금쪽이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물론 여전히 응급처치가 필요한 학생들이 보건실을 찾아온다. 커터 칼로 자비 없이 그어버린 손목이나 허벅지의 자해 상처를 드러내거나 갑작스레 공황장애 증상이 오면 문이 부서질 정도로 우당탕탕 다급하게 보건실로 뛰쳐들어와 내 얼굴을 바라보고 그제야 바닥에 엎드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아이도 있다.
하지만 더 일상적으로는 180cm가 넘는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잘생기고 당당하던 남학생이 여자친구와 헤어졌다고 울면서 오기도 하고, 중간고사 수학시험 1개 틀렸다고 와서 흐느끼는 여자아이도 있으며, 전학와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가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사소한 고민을 가진 아이들이 더 많이 찾아온다. 아니, 아예 대놓고 수업 시간에 졸려서 잠깐 내려왔다고 말하는 녀석들도 있다.
예전 같으면 전부 공부하기 싫어 교실 밖을 뛰쳐나온 '꾀병'카테고리에 분류되던 아이들이다. 아직도 '신체적 질환이나 외상 처치'를 우선으로 두긴 하지만, 아픈 아이들 처치에 지장을 받지 않을 정도로는 금쪽이들이 원 없이 보건실에 머무를 수 있게 하는 편이다. 금쪽이들이 학교 밖으로 뛰쳐나가지 않고, 차라리 보건실 문을 열고 들어와주어서 고맙다고 생각하며 지낸다.
종종 "아이들은 배려해 줘도 고마운 줄을 몰라" 또는 "배려해 주면 권리인 줄 알아"라는 푸념의 말들도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는 아이들이 오직 좋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랑을 베풀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는 만큼 되돌려 받지는 못할지라도, 아이들이 거친 세상으로 나가기 전에 단단한 내면을 가질 수 있도록 응원하고 격려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상처받지 않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 상처받지 않아야 행복한 것도 아니다. 누구나 비바람을 맞고 성장한다. 중요한 것은 세상에서 어떤 상처를 받더라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도록 내면의 힘이 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 사는 방법을 스스로 찾을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아이들에게 사랑과 격려를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나는 보건실에 앉아 금쪽이들이 찾아오면 웃어주고 들어준다. 아이들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쏟아놓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선생님, 들어주셔서 감사해요!'라고 한다. 몸이 아플 때도 찾아오지만, 마음이 아플 때도 언제든 가볍게 들러 가벼운 위로를 받아 가는 곳. 내가 앉아있는 보건실이 바로 우리 동네 금쪽이들의 아지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