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급식실 에피소드
본격적인 보건실 근무를 이야기하기 전에,
가벼운 에피소드 하나를 꺼내본다.
나는 우리 학교 과학 조교선생님과 친하다.
이 에피소드는 그녀와 처음 만났던 작년 학기 초의 이야기다.
그녀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싱그러운 해바라기 같다.
뽀얀 얼굴은 늘 맑게 웃고 있다.
머리스타일은 빠글거리는 히피펌으로 인어공주만큼 사랑스럽다.
옷차림은 대게 후드티나 체크 남방처럼 자유롭다가, 어느 날 A라인 샤스커트를 입으면 귀여운 공주님같다.
성격도 유쾌해서 장난기 많은 내 농담에 티키타카도 잘 통한다.
오렌지색 통통볼 같은 그녀.
학기 초 어느 날, 급식실에서 그녀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서로 어릴 때 했던 아르바이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저는 20대 초반에 제주도에 있는 포르노 테마파크에서 일했어요."
.....what?.... 포르노? 서로 인사한 첫날 나누기엔 너무나 은밀한 단어였다.
심지어 여기는 학교 급식실.
앞 뒤 좌 우로 학생과 교사들이 빽빽이 앉아있었다.
급식판에 머물던 나의 시선이 곧장 맑게 웃는 그녀의 얼굴로 향했다.
해맑게 웃으며 함박스테이크를 입 안 가득 씹고 있었다.
'그래... 성(性)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야... 침착하자..'
나는 학생과 교사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급식실에서 더 이상 무슨 말을 이어나가야 할지 난감했다.
친한 친구였다면, "대박! 헐! 거기 뭐 있는데? 뭐 하는데야? 어디 있는 건데?"라고 질문을 쏟아냈겠지.
하지만 학교에서 처음보는 젊은이에게 그렇게 묻기란 쉽지 않았다.
"아... 20대 초반에 그런 곳에서 일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네요.."
" ^^ 아니요! 어릴수록 더 좋죠!!"
... 점입가경이었다. ㅋㅋㅋ 뭐라고 말을 이어나간단 말인가 ㅋㅋㅋㅋ
"-_- 아... 어릴수록 좋...."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함박스테이크만 우물거렸다.
침묵이 어색한지 그녀가 말을 이었다.
"아직도 거기 근무하시는 분 들하고 친해요.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고 싶으시면 저에게 말씀하세요! 할인권 받을 수 있는지 도와드릴 수 있어요!"
어쩌면 그녀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개방적이고 호탕한 스타일인지도 모른다.
그래... 나와 나이차이가 10살 넘게 차이 나니까...
하지만 포르노 테마파크에 우리 아이들을 초대하다니...
"아... ^^;; 저희 애들은 초등학생이라..."
"아... 그럼 아이들이 싫어할 수도 있겠네요."
"네.. ^^;; 저도.. 데려가기가 좀 그렇네요... ^^ 하하..."
"그러실 수도 있겠어요. 그래도 마음 바뀌시면 꼭 말씀하세요!"
"네... ^^;; 감사합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급식실에서 식판에 밥을 뜨고 있는데 과학 조교선생님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선생님!! 이쪽으로 오세요~ ^^"
그녀 옆에 앉았다.
"포르노 테마파크 할인권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제주도 가실 때 말씀하세요!"
"아... 고마워요.. ^^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거기 입장이 가능한지 모르겠어요."
"입장 가능하죠! 유치해하려나요?"
"유치해한다기보다.. 아직 너무 어리니까요. ^^;; 그냥 친구들이랑 여행 갈 때나 한 번 들러볼게요."
"친구들이랑 가신다고요?"
"애들이랑 가는 것보다 친구들이랑 갈만한 곳 아니에요? 주로 어떤 게 전시되어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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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뽀로로 친구들 다 있죠. 뽀로로랑 포비, 에디, 루피, 크롱 다 있어요. 뽀로로랑 에디 집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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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포르노 테마파크에 뽀로로가 있다고요? 걔들이 도대체 거기 왜.."
...?
"포르노요?!"
"선생님 근무했다는 곳이 포르노 테마파크 아닌가요...???"
"헐!!! 뽀르노 아니고 뽀로로 테마파크거든요!!"
싱그러운 해바라기 같은 과학 조교쌤의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씨익...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 ㅋㅋㅋ
이 여자가.. 음란마귀가 씌었나... 하던 그 눈빛 ㅋ
그제야 우리는 서로의 대화를 맞춰보며 급식실에서 폭소를 터뜨렸다.
정말 음란마귀가 잠시 다녀갔나.
나는 왜 뽀로로를 뽀르노로 들었나.
어린 아르바이트생을 더 선호한다던 그 말에 왜 음흉한 생각을 했는가. ㅋ
해맑은 그녀의 의외의 아르바이트 경력에 깜짝 놀랐던 나는,
그제야 제법 어울리는 아르바이트를 했다며 함께 웃었다.
포르노 테마파크에 뭐가 있을까 혼자 상상했던 건 비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