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기세로 밀어붙여
임용고시 1차 합격자 발표날.
믿을 수 없는 합격이었다.
4월에 시작해서 10월 중순경 1차 시험을 치렀던 것 같다.
정말 열심히 했지만 물리적인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합격을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1차 합격자 조회란에 내 수험번호를 입력하자, '합격'이라는 글자가 박혀있었다.
아드레날린이 미친 듯이 뿜어져 나왔다.
심장이 쫄깃해지고, 콩팥이 탭댄스를 추었다. 두근두근 명백한 부정맥 증상이 나를 덮쳤다.
자취방 PC에서 합격자 확인 후 대낮에 꾸웨어으아으어우어아우하으아어으어어으어아아아!!!!!!!!! 소리를 지르고 꺄르르 웃으면서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다가 엎드려 펑펑 울었다.
예상치 못한 합격이어서 더 기뻤던 것 같다. 쓰고 보니 좀 무섭지만 ㅋ 울면서 울었다.
짧은 시간 미친ㄴ처럼 울다 웃다 하던 나는, 화면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곧 얼굴에서 웃음기를 삭제했다.
화면에는 이번 시험의 커트라인점수와 내 점수가 공개되었는데,
두 점수는 같았다.
...?!
내가 꼴등이었다.
1차 합격자는 최종합격자의 2 배수를 뽑는다.
당시 17명 선발이었는데, 내가 34등으로 추측되었다.
(인천 TO가 많아서 서울이 아닌 인천으로 시험을 본 것이었다)
아악.
이 날 나의 기분 그래프는 중학교 2학년의 그것처럼 몹시 날뛰었던 것 같다.
극도의 기쁨이었다가 곧, 슬픔의 5단계로 넘어갔다.
면접으로 어떻게 17명을 뒤집겠나. ㅠㅠ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
최종합격이 물 건너갔다는 생각에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1차 합격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다음 날, 노량진 임용고시 학원으로 1차 합격자들이 모였다.
합격자들끼리 '면접 스터디조'를 조성해 준다고 하셨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학원 내에서 서로 친한 사람들끼리 스터디는 이미 짜여있었다.
"스터디를 찾지 못한 분 이쪽으로 모여주세요." (떨거지들 모여주세요!로 들렸다)
그렇게 쭈뼛쭈뼛 앞으로 나온 5명이 그대로 스터디멤버가 되었다.
당연히 그 떨거지 중 한 명은 나였다.
우리는 구석에 모여 통성명을 했다.
이럴 수가.
놀랍게도 5명 전원 올해 처음 시험을 보는 '초시생'이었다.
다들 스터디 없이 혼자 공부한 사람들이었다.
어디서 얻을 정보라곤 없는 사람들이었던 것. ㅋㅋ
자기소개가 끝나자 분위기가 착잡해졌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불신의 표정을 지었다. ㅋㅋㅋ
2차 시험 경력자가 아무도 없었기에 우리끼리 대체 2차 시험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감도 못 잡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책으로 배우는 수밖에. 당시에는 인터넷 정보도 많지 않았다.
우리는 서점에서 구입한 2차 시험 (논술+면접) 대비 참고서를 보고 민들레영토 세미나룸에서 만나 스터디를 했다. 당시에는 스터디카페나 스터디룸을 대여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었다. 200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사람이라면 그나마 민영토가 대학생들에게 얼마나 고마운 공간이었는지 알 것이다.
우리는 나름 진지했다. 문 밖에서 한 명씩 입장해서, 인사하고, 앉아서 심사위원 눈을 바라보며 당시 교육계 이슈들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연습을 했다.
스터디원들이 더 불안할까 봐(아니, 나를 패싱 할까봐 라고 해야 더 맞을 것이다) 내가 1차 꼴등이고, 나는 2차 합격은 어려울 거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다만, 그들이 공개한 1차 합격점수는 나보다 월등히 높았다. 나는 그저 내 점수가 기억나지 않는 척했다.
내가 믿는 것은 단지 내가 시험을 치른 '인천이 전국에서 2차 시험으로 순위가 제일 많이 뒤집히는 지역이다'라는 카더라통신뿐이었다. 그 진위는 아직도 알 수 없다.
드디어 면접날.
시간에 맞춰 대기실에 입장했다.
주말 알바를 뛰러 오신 현직 교사들이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자리에 앉아 현직 교사를 바라보면서, '저분은 세상 부러울 것이 없겠지?'라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교사만 된다면! 이 한 몸 바쳐서 대한민국교육의 미래를 위해, 학생들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일하겠다는 사명감이 솟아올랐다.
논술시험을 먼저 보았다. 예상했던 문제가 나왔기 때문에 주관식 답을 쓰듯 키워드 중심으로 슥슥 써 내려갔다. 논술이야 원래 자신 있었다.
그다음은 면접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 긴장이 하나도 안되어서 하품이 났다.
왜냐면, 1차 꼴등이라서 ㅋㅋㅋㅋㅋ 구경 왔다는 생각으로 면접에 임하기로 했다. (하지만 논술, 면접 책을 달달 외운 것은 사실이다. 호오오오오오오오옥~~~~~시 몰라서였다. ㅋㅋㅋ 인간의 욕망이란 그런 것 아니겠는가ㅋㅋ)
드디어 내 차례.
첫 번째 질문은 당시 교육 이슈에 대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어떤 질문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스터디를 하면서 수없이 외웠던 문제였기에 자신 있게 답했다. 사실은 '정답이 있는 질문'은 변별력이 없다. 누구나 같은 답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질문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정답이 없는 질문이었다.
"보건교사 업무는 환경업무, 학교안전업무 등으로 타 부서와 업무분장 관련 분쟁이 많습니다. 업무분장으로 타 부서와 갈등이 생겼을 때 이를 어떻게 해결할 생각입니까?"
내가 이 질문이 왜 기억에 나느냐면, '업무분장'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봤기 때문이었다. -_- 그게 모냐?
짧은 시간 동안 열심히 질문을 해석해 본 결과 "업무 가지고 네 일이다 내 일 아니다 싸움 나면 너 어떡할 건데?"를 묻는 질문 같았다. 에라 모르겠다.
"아, 일단 제가 합격한다면, 그런 분쟁 자체가 없을 겁니다. 대학생 때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그중 교수님 밑에서 타이핑하는 아르바이트도 했기 때문에 문서작성도 빠릅니다. 저는 눈치가 빠르고 일머리가 있어서 일처리가 빠릅니다. 그냥 제가 다 해버리면 갈등도 없는 거 아닙니까? 지금 저를 합격자 명단에 넣으시고, 제 이름을 메모해 두셨다가, 제가 정식 발령을 받으면 언제든지 전화하십시오! 제가 제 업무를 일찍 마치고 퇴근해서 도와드리러 가겠습니다!!"
와하하하!!!
면접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ㅇ_ㅇ;; 앗?! 내가 말을 잘못했나?
에라 모르겠다. 나도 같이 웃었다. 하하.. 하..하하.....
아무리 긴장을 하지 않았다지만,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낸 후 곧 후회했다.
"하아...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한 거야.." 고개를 숙이며 면접 교실을 나갔다.
복도에서 퇴실 안내를 해주시던 선생님께서 나의 이름을 다시 물어보셨다.
"이름이 뭐예요? 면접자리에서 웃음소리가 난 건 제가 근무경력 중 처음이에요.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웃음소리가 났는지 궁금한데요?"
물론, 17년 차 경력자인 현재 내 입장에서 저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이 '정답'이라고 추천하기는 힘들다.
각 고유의 영역에서 업무분장이 명확히 되어야 함은 맞는 말이다. 내 일을 다 하고 남의 일까지 다 해버리겠다는 말은 '학교 실무 무경력자'이기에 할 수 있었던 답이었고, 그래서 웃음바다가 되었던 것임을 이제는 이해한다. 하지만, 그 태도만은 아주 좋은 점수를 얻었던 것 같다.
왜냐면. 나는 17명을 뒤집고, 최종 커트라인 점수보다 더 높은 점수로 최종합격을 했기 때문이다.
최종합격을 확인했을 때 내가 얼마나 소리를 질렀고, 펑펑 울었는지는 생략하겠다.
그리고 더 대단한 것은, 그 당시 떨거지들로 모았던 2차 스터디멤버 전원이 합격했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학원에서도 이슈가 되었던 것 같다.
우리는 아직도 서로 안부를 묻고, 업무연락도 하고, 개인적으로 만나 차도 마시는 좋은 동료로 남아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보건교사 업무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