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17년차 보건교사의 마인드
1997년, 뉴스를 보는 부모님의 시선이 불안해 보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대기업들이 부도 처리되었다. 친구의 부모님께서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는 일이 흔했고, 뉴스에서는 경제적 이유로 자살하는 사람들의 소식이 심심찮게 들렸다. 1997년 11월 21일 정부는 국제통화기금 IMF의 구제 금융을 신청하며, 사실상 국가 부도를 인정했다.
그 추운 겨울,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우리는 '꿈이 무엇인지?'를 묻는 어른을 만나지 못했다. 그저 '취업 잘 되는 곳'이 최고인 것으로 듣고 자랐다. 안정적이진 않지만 꿈을 실현하는 일을 하겠다고 하면 어른들은 큰일 날 소리라고 대응했다. 게다가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모두 공무원이었다. 어쩐지 나는 미래에 공무원이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는 건물을 올리는 '건축업자'가 되고 싶었다. 내 손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고, 음악·미술·체육 같은 일반 예술과 달리 실용적이기까지 하니 내 기준에서 건물은 최고의 예술작품이었다. 하지만 IMF 때 건설업은 가장 힘든 분야였다. 건설회사들이 줄도산하던 때였다. 거칠고 험한 길이라도 걷겠다는 용기가 부족했을지도 모르고, 건축학과에 대한 내 열망이 그렇게 뜨겁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는 현실과 타협했고, 건축학과 대신 당시 취업률 1위 학과였던 간호학과로 진학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공무원이 되었다.
뚜렷한 꿈 없이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아직도 두리번거리는 삶을 살고 있다. 내게는 무엇인가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없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소망도 없었다. 그저 현실에 잘 적응했고, 목표나 방향도 없이 '닥치는 대로' 열심히 살았다. 막 살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때그때 눈앞에 닥친 일을 나름 성실하게 열심히 하면서 살았다. 학과 내 상위 10% 성적으로 교직이수를 했고, 서울아산병원에 취업해서 일하다가, 임용고사를 보고 보건교사가 되었다. 보건수업도 하고, 동아리활동도 하면서 꽤나 즐겁게 보건교사로 일했다. 얼마 전, 17년 전 함께 동아리활동을 하던 제자가 낳은 아기의 돌잔치에도 다녀왔다. 보람 있는 인생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내 삶이 훌륭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적당히 만족스럽긴 하지만, 나 자신이 설계한 인생, 내가 원한 삶의 방식은 이런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설레는 일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다. 나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걸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이 나이에, 아직도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누군가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쭉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그 인생은 그대로 훌륭한 인생이다. 그대로 살면 된다. 말 그대로 본인이 만족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지금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느끼거나, 다른 삶을 꿈꾼다면, 그 사람의 삶은 아직 충분히 훌륭하다고 할 수 없다. 다른 삶을 꿈꾼다면 지금이라도 무언가를 바꾸어야 한다. 지금 나는 내 삶의 변곡점을 찾고 있다. 그렇다면 원대한 꿈이 있느냐? 그것도 아니다. 그저, 내일을 생각하면 설레어서 심장이 쫄깃해지는 일을 찾고 싶다.
얼마 전부터 하고 싶은 것을 닥치는 대로 해보기 시작했다. 요가와 필라테스를 배우고, 그림을 배우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맡은 업무를 민첩하고 정확하게 해내고, 다음 일거리를 걱정하기보다 나 자신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한다.
사실 누가 그걸 하지 못하게 막은 것도 아니다. 그렇게 할 수 없도록 내가 나 스스로를 가두어버린 것뿐이다. 취미생활을 즐기고, 또 다른 일을 찾아다니는 것이 직업에 열중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육아에 충실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했다. 주어진 일, 그러니까 나의 생업과 육아에만 집중하려 했다. 다른 것에 관심이 가면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그런 하루를 보낸 끝은 보람은 있었으나 기쁨은 적었다.
나는 여전히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보건교사의 역할에 즐겁게 몰입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퇴근하면 집안일에 매몰되지 않고 더 즐거운 삶을 찾아가고 있다. 퇴근 후 아이들이 잠들면 요가를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서투른 솜씨로 도서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을 쓴다. 혼자서 글을 쓰다가 함께 쓰고 싶어 에세이 연수를 신청했다. 서재 안에 갇혀있던 내 자아가 세상 밖으로 나가기 위해 꿈틀거리는 중이다. 글을 쓰면서 나의 일상도 많이 바뀌었다. 길을 걸을 때 귀에 이어폰을 꽂고 경제뉴스를 들으며 앞만 보며 걸었던 내가, 이어폰을 빼고 새소리, 사람들 발자국소리, 아이들 웃음소리를 듣고, 두리번거리며 나뭇잎의 색 변화와 나뭇가지의 옹이를 관찰한다. 봄날 아침의 상쾌함과 여름 오후의 싱그러움이 완전히 새롭게 느껴진다. 매일 걷던 출근길이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시간에 쫓겨 허둥대지 않게 되면서 사람과 세상에 더 많은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나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게 된 것 같다.
우리는 우주의 창백한 푸른 점 껍데기에 사는 우주 먼지다. 우리는 딱 한 번 산다. 어차피 죽으면 한 줌 흙이다. 이제부터 나는 더는 두리번거리거나 우물쭈물하지 않을 것이다. 살아 있는 동안, 지금 바로 여기에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살기로 했다. 누구의 눈치를 볼 것도 없이 그저 내 마음을 살피면서. 물론, 내 마음대로 산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세상을 더 훌륭하게 만드는데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또, 그 과정에서 나 자신도 더 훌륭해지기를 바란다.
나는 오늘도 이렇게 짧은 글을 쓰면서, 내가 원하는 삶에 한걸음 더 나아간다.
당신의 삶도 응원한다. 아모르파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