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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on de Madame Saw May 17. 2022

복숭아는 나무다.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예쁜 그 다리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유 노래는 복숭아. 아이유가 설리를 생각하면서  곡이다.  모양이나 향기나 달콤함 때문인지 팝송에서 peach라는 단어는 거의 섹슈얼한 표현을 위해 쓰인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이건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도화살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마저 거의 음란한 것으로 묘사되지 않나. 그러나 아이유의 노래에서 복숭아는 그냥 예쁘고 사랑스러운 복숭아일 뿐이다. 복숭아를 성적으로 묘사하지 않는 작가는(그게 작곡가든 작사가든 시인이든 소설가든 영화감독이든) 아마 아이유 그녀 혼자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설리 역시 그저 아름다운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녀는  향기에 몰려든 벌레들에게 매번 갉아먹혔고 이 때문에 그녀는 스스로의 가장 빛나는 부분을 어느 순간 가장 추한 것으로 느꼈을지 모른다. 절친인 아이유는 그것이 안타까웠던  아닐까? 그래서인지 그런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가장 아픈 부분을 어루만진다. “어쩜 그리 예뻐?” “질리지도 않아  ?” “ 너랑 결혼할래.” 가사를 곱씹을 때마다 그녀의 세심함이 느껴지는  가슴이 뻐근해진다. 너는 사랑스럽다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아름답다고 그녀는 말해주고 있었다. 취하고 눈물이 많이 나서 글을 다듬지는 못하겠다. “





며칠 전 페이스북에 내가 포스팅한 글이다. 그리고 사진은 전주 숙현이네 집에서 하룻밤 신세 질 때 친구 숙현이에게 선물 받은 복숭아 나뭇가지에 직접 뜬 색색의 예쁜 나무를 메달아 만든 모빌. 숙현이는 예전에 내 생일날 직접 그린 예쁜 복숭아 그림을 선물해준 적이 있다. 그리고 그 그림은 지금 내 보물 1호다. 단순히 그림이 예뻐서가 아니라 나에게 그 그림은 위에서 말하는 아이유가 설리에게 헌정한 노래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복숭아에 집착 아닌 집착을 하기 시작한 게 바로 그즈음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그 어떠한 면이, 나로 하여금 고통을 받게 하는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니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이라고 믿으려던 필사적인 몸부림이었을지 모른다.


내 사주에는 도화살이라는 것이 있다. 요즈음에는 도화살을 이성을 끄는 매력이라 좋게 포장해서 말하는 경향이 강한데 사실 살은 말 그대로 살이다. 좋지 않은 기운이라는 뜻이다. 물론 나는 사주 자체에 도화살이 있기는 하지만 운명이라는 걸 믿지 않기에 사주를 떠나 흔히 ‘저 사람은 도화살이 꼈다’라고 말하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봤다. 아마 누구든 성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무기로 사용할 줄 아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자신이 가진 장점을 다룰 줄을 모른다. 그러니까 그것을 무기로 사용할 만큼 강하지 못한 사람이 그로 인해 받는 고통을 아마 ‘살’이라고 표현하는 걸 거다. 그러니까 내가 복숭아라는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워 나 자신을 표현하고자 했던 건 스스로가 더 이상 고통받지 않겠다는, 그것을 무기로 사용할 만큼 강해지겠다는 의지를 담은 일종의 선언 같은 거였다.


그리고 그 마음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하필 숙현이가 내 생일날 숙현이 특유의 천진난만함과 위트가 담긴 너무나 귀엽고 예쁜 복숭아 그림을 보내준 거다. 당시에는 농담처럼 표현했지만 사실 난 그날 그 그림을 받고 꽤 많이 울었다. 아마 설리가 아이유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도 같은 심정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그림을 현관에 들어오면 바로 보이는 자리에 놓았다. 복숭아 그림은 복을 불러온다는데 집에 들어올 때마다 날 맞이하고 있는 그 그림이 나에게 위로를 주는 것으로 보아 왜 그런 말이 생겼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 받은 선물은 복숭아 가지 만든 모빌이다. 복숭아 열매가 아닌 나뭇가지. 물론 친구가 이 모든 걸 의도하진 않았을지 몰라도 나는 여기에서 또 한 번 큰 깨달음을 얻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복숭아는 나무라는 것. 단지 봄에만 향기롭게 피었다가 날벌레에게 갉아먹히고 지는 꽃이 아닌, 여름에 열렸다가 새에게 먹히고 떨어지면 그만인 열매가 아닌, 여러 모습으로 모난 세월을 견뎌내고 결국 사철을 굳건히 살아내는 나무라는 점이다. 아마 내가 복숭아 그림을 선물 받았을 때보다 한 차원 성숙해졌기에 이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으리라.


예로부터 복숭아 나뭇가지는 귀신을 쫓고 복을 부른다고 한다. 특히 동쪽으로 뻗은 나뭇가지다. 동녘, 그러니까 봄바람을 향해 손을 뻗은 나무를 뜻하는 걸 거다. 엄동설한에 따뜻한 한줄기 바람을 향해 뻗은 자라나고자 하는 의지. 즉, 힘차게 살아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모든 악재를 극복할 수 있다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말일 거라 나는 확신한다.


사주든 무속신앙이든 다른 종교든 아무리 사후세계를 중요시하더라도 결국 모두 살아있는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귀신’이라는 것은 죽은 자로 인해 살아있는 자가 받는 고통, 끝나지 않는 굴레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다. 즉, 귀신을 쫓는다는 건 그 굴레에서 해방됨을 뜻한다는 말이다. 내가 지금 당장 나아가야 할 길을 비로소 찾은 것 같다.



“가만 서 있기만 해도 예쁜 그 다리로

내게로 걸어와 안아주는 너는 너는 너”

<아이유 - 복숭아 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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