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깔봐야만 했던 이유
며칠 전 sns에서 한 중년 남성이 생판 모르는 여성을 ‘언니’라고 칭하는 글을 올린 것을 본 적이 있다. 말인즉슨 출근하는 버스 정류장에서 자주 마주치는 ‘언니’인데 볼 때마다 옷을 ‘헐벗고’ 있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남성인 그는 왜 그녀에게 그러한 칭호를 붙여줬을까?
우리는 사회생활 중 누군가를 부를 때 교수님, 작가님, 선배님 등 사회적 지위나 직업 또는 직위를 가리켜 이른다. 도무지 적당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 경우엔 ‘선생님’이라 높여 부르는 게 가장 적당할 것이다.
반면 언니란 같은 여성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을 ‘친근하게’ 부르는 단어다. 그러니까 혈연관계나 동네 친구 등 상당한 친분이 있는 게 아니라면 쓰이지 않는 호칭이란 말이다. 비슷하지만 비슷하지 않은 단어인 ‘형님’이나 ‘누님’과는 달리 단어의 쓰임은 지위나 직업이 아니라 지칭하는 사람과 대상과의 ‘관계의 친소’에 따라 결정된다.
이러하듯 그 단어가 특정 직업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언니’로 통칭되는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 사회에는 존재한다. 서로를 ‘언니’라고 밖에 달리 부를 단어가 없는, 종사자들 대부분이 여성이고 경력자를 선배님이라 부를 정도로 전문성을 인정받는 분야가 아니며 선생님이라 높여부를 만큼 존중받는 것이 아닌 직종. 바로 성매매를 포함한 유흥업계 종사자들일 것이다. 이는 생물학적 여성뿐만 아니라 화류계 트랜스젠더 여성이나 게이 남성에게도 해당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녀들은 서로를 ‘언니’라고 부른다. 그러나 트랜스젠더도 아닌 아이까지 있는 기혼자 전문직 시스젠더 헤테로 섹슈얼 남성이 타인에게 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대체 무슨 까닭일까?
아마 유흥업계 종사자들을 깔봄과 동시에 해당 여성을 그러한 포지션으로 끌어내리고 싶기 때문이었을 게다. 그러한 욕구를 갖는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말이다. 선생이란 존칭은 물론이고 하다 못해 ‘그 여자’나 ‘그녀’라는 단어로 부르는 것으로나마 존중할 최소한의 가치가 없는 것, 상대가 존칭이라기 보단 기본값에 가깝게 쓰이는 ‘여성분’이란 단어로나마 내가 인심 써서 ‘써주기엔’ 어딘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하는 ‘얕잡아 보아야 마땅한 사람’이었기 때문일 거다.
그녀의 의상을 두고 ‘헐벗다’라는 표현을 쓴 걸로 보아 그 여성이 단순히 의상을 자신이 원해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마치 그걸 보는 자신의 눈요기를 위해 원래 응당 입고 태어났어야 마땅한 옷을 벗기라도 했다고 믿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분명 눈길을 뺏긴 건 자신인데 그는 왜 그녀를 자신보다 하위 포지션으로 끌어내려야만 했던 걸까?
우리는 그 원인을 한 고전 동화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어느 날 배고픈 여우 한 마리가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포도밭을 발견해 그곳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포도가 따 먹기에는 너무 높은 곳에 달려 있었고, 점프도 해 보고 나무를 타고 올라가기도 하는 등 아무리 애를 써봐도 도저히 포도까지 닿을 수가 없었다. 결국 여우는, "저 포도는 어차피 신 포도일 거야!"라고 투덜거리며 포기하고 가 버렸다.” -이솝우화 ‘여우와 신 포도’-
출처 - 나무위키 https://namu.wiki/w/여우와%20포도#fn-1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는 매번 눈길을 빼앗기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자신의 처지를 ‘존중할 가치가 없는 여성’에 대한 자발적 금욕이라 믿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가정이 있는 전문직 남성, 그러니까 사회에서 다 가진 것으로 여겨지는 남성, 그러나 저 하찮은 ‘언니’ 하나 마음대로 해보지 못하는 남성. 그는 그 통해 그 어떤 수컷적 열등감을 해소하고 허구적으로나마 그 어떤 우월감이라는 걸 느끼고 싶었을지 모른다.
“심리학에서, 인지부조화란 두 가지 이상의 반대되는 믿음, 생각, 가치를 동시에 지닐 때 또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과 반대되는 새로운 정보를 접했을 때 개인이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나 불편한 경험 등을 말한다.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의 인지 부조화 이론은 사람들의 내적일관성에 초점을 맞췄다. 불일치를 겪고 있는 개인은 심리적으로 불편해질 것이며, 이런 불일치를 줄이고자 하거나, 불일치를 증가시키는 행동을 피할 것이다. 개인이 이러한 인지부조화를 겪을 때 공격적, 합리화, 퇴행, 고착, 체념과 같은 증상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다.”
출처 -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인지부조화
그가 ‘헐벗은’ 여성을 보고 같은 인격체로 존중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 판단 내렸듯 남에게 뭐라고 불려지는지 뿐만이 아니라 남을 뭐라고 부르는지에 따라서도 그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며 어떻게 살았을지 가늠할 수 있는 법이다. 스스로를 생물학적 남성이라 여기는 자들이 남성이 쓰지 않고 남성에게 쓰이지 않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미뤄보아 그들에게 ‘응당 달고 태어났어야 마땅한 것’이 달려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유추할 수 있듯이 말이다.
행복의 90%는 건강에 좌우된다.
-쇼펜하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