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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어나목적어 May 21. 2021

[영화 The sheltering sky]

- You lost?


언제 죽을지 알 수 없기에 우리는 인생을
마르지 않는 샘물에 비유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모든 일은 정해진 횟수만큼만
일어나고 그 횟수는 극히 적다.  당신은
어린시절의 추억을 몇 개나 기억하는지?  
도무지 그것을 제외하고는 당신 인생을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추억을 말이다.

아마도 네번 ? 다섯번?  어쩌면 그보다 더
적을 것이다. 남은 생에에  보름달은
몇 번이나 더 보게 될까? 많아야 스무번?
그러나 우리는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무한한 인생을 꿈꾸고 싶어한다.


"an afternoon that is so deeply a part of your being that you can't even
conceive of your life  without it"






이탈리아 출신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작품이다.  <마지막 사랑>이라고 번역됐지만,  내 생각에 영화에서 사랑은 아주 아주 작은 개념일뿐, 결국 인생을 무한한다 착각하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고 느껴졌다.  더 쉽게  말하면 철학사에서 빼놓고 말 할 수 없는, 그 유명한  '실존주의' 를 말하겠다고 삶에 권태를 느낀 10년차 부부가 공허한 뉴욕생활을 정리하고 무작정 아프리카로 떠나는 설정을 한 것이다. 영화 해석에 철학을 들이미는것은  애써 하고싶지 않지만,  일평생 인간의 고독과 허무에 심취해 실존의 의미를 찾았던 작가이에 '실존'을 언급하지 않고 이 영화를 이야기하는것은 허구가 되어버리므로.

그래서 부부는 깨달음을 얻었나? 인생과 같아서, 철학은 끊임없이 물어만 볼 뿐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광활한 사막의 벼랑 끝에 선 키트와 포트는 그 숨막히는 아름다움에 일순간 압도당했지만, 텅빈 사막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고독함에 다시 길을 잃어버렸다


 “한 곳에서 정착할 생각은 아예 안 해봤어요?”


계획이 없는게 계획인 남자에게 여자는 정착해 볼 생각은 없냐 물었지만, 그것은 어쩐지 ‘나' 에게 정착 할 수는 없느냔 볼멘 투정같이 느껴졌음을.... 키트는 남성적 매력이 넘치는 터너에게 이끌려 육체적 사랑을 탐하기도했고, 포트가 죽고난 다음엔 스스로 원시부족 족장의 여자가 돼 그의 성노예가 되기도 한다. 그렇듯 단 한 번도 주체적으로 불안을 극복하려하지 않았다. 키트에게 '의미'나 '목적'은 회피하고 싶은 대상일 뿐. 그래서 포트가 간밤의 불길한 꿈을 이야기할 때도 듣고싶지 않아하고, 포트가 죽었을 때 그를 혼자 둔 채 쫓기듯 뛰쳐나왔다.



내 생각엔 시간이 없어. 같이 있어줘
왜냐하면 가끔... 아주 먼 곳에 혼자 있었어
당신도 혼자였지, 알다시피 그곳엔 아무도 안 갈 거라고 생각했어. 알지, 키트?
생각해봐 키트, 그동안 당신을 위해
살았는데 그걸 몰랐어 이제야 알았어.
그리고 지금은 알게 되었어.




'인간은 한계 상황에서 경험하는 절망과 좌절을 발판 삼아 참된 자기 실존을 이해하고 자신에 대한 참된 경험도 할 수 있다'는 야스퍼스의 말대로. 죽음의 문턱 앞에 선 순간 포트는 사랑의 의미를 찾았다고 고백했다. 그에게 사랑은 오로지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이었음을..... 그 의미를 키트는 알아듣지 못한걸까, 아니면 역시 알고싶지 않았던 걸까. 또다시 다른 남자를 찾아 의미를 찾으려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육체적인 열정을 쏟아주는 새 남자의 보살핌 아래서 포트와는 다르게 사랑에 이끌리도록 스스로를 마음껏 내버려둔다. 새 남자와 함께한 키트는 행복해보였다. 포트와 사랑을 나눌 때보다 만족스러운 얼굴이었고, 말이 통하지 않는 남자가 그녀를 아이처럼 대할 때도 같이 웃어주었다. 하지만 이번 사랑은 족장의 다른 부인들이 그녀를 내쫓으면서 금세 끝나버렸다.

다시 혼자가 된 키트는 이제야 철저히 혼자가 된 고통 속에 '나'를 바라볼 시간을 갖게 된 것같아 보였다. 정신병원 침대에 초점 잃은 눈빛으로 누워있던 그녀에게 '터너'가 찾아왔을 때, 처음으로 키트는 남자로부터 도망가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단 한 번도 확실한 대답을 말하지 않던 키트는 길을 잃었냐는 자조적인 질문에 확신에 찬 얼굴로 yes 라 말한다.


- 길을 잃었나요?

- 네


실존철학에서 '불안'은 인간의 존재가 시간의 유한성 앞에서 감지되는 기분으로 논의되었다. 키에르케고르에 의하면 인간은 영원하지 않다는 시간적인 한계를 깨닫고 절망과 불안함에 빠진다. 그리고 이러한 한계상황은 인간의 어떤 힘으로 변경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과 불안, 죽음, 두려움 속에 압도 당해 난파되곤한다. 포트와 키트 역시 시간의 유한함을 망각한 채 주어진 것들을 그냥 흘려보냈다.
하지만 실존주의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선택을 통해 스스로를 만들어갈 일종의 자유를 지닌 존재이다. 이 메시지는 '모든 일은 정해진 횟수만큼만 일어나고 그 횟수는 극히 적다'는 마지막 내래이션을 통해 더 확고하게 전달된다.

"우린 깊은 사랑에 빠질까봐
두려워하고 있는지 몰라"



“관광객은 도착하자마자 집에 가고픈 종속들이지, 여행자는 안 돌아갈 수도있죠”
하지만 결국은... 시간 앞에선 언젠가 떠날 수밖에 없는 관광객이 될 뿐이다.
고통 속에 잠식 돼 사라질 것이냐, 고통을 딛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냐. 시간은 길지 않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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