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 씁니다
사랑하는 동생 상현이는 말투가 남다르다. 만화 속에 이따금 등장하는 연기 풀풀 나는 고장 난 자동차 같다고 할까. 덜컹덜컹 달리다 끝내 피식 소리를 내며 멈추고 마는 자동차처럼 상현이의 말투는 느릿느릿 더듬다가 말이 끝날 때는 소리가 비실비실 줄어들며 멈춘다.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그 말투를 사람들은 그저 ‘어눌하다’라고 했다. 내가 그랬듯이.
상현이를 처음 만난 건 어느 방송국에서 일할 때였다. 그를 처음 소개받고서 나는 많이 당혹스러웠다. 말투도 그렇지만 성격도 어딘가 답답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업무능력이 부족한 다른 동료 때문에 잔뜩 예민해져 있던 때라 나는 화가 났었다. 하지만 그를 뽑은 팀장님에게 뭐라 할 수 없으니 상현이에게 괜히 심술을 부렸던 것이다. 솔직히 그만뒀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상현이는 내 변죽에 그저 죄송하다며 그 순한 웃음만 지었다. 사람 무안하게스리.
나는 그에게 먼저 그 말투를 지적했다. 당시 우리는 방송국 내에 FD들에게 작업 요청을 받았는데, 자신들이 맡긴 일을 최우선으로 처리하길 바라던 그들은 간혹 무리한 요구를 해왔다. 그럴수록 우리는 일의 순서를 적절히 분배해야 했고, 때론 그 과정에서 그들을 설득하거나 논쟁을 벌이기도 했었다.
나는 상현이가 그 말투로 설득은커녕 그들에게 마냥 얕보이진 않을까, 그 성격 때문에 그들의 요청을 넙죽 넙죽 다 들어주면 어쩌나 걱정했다. 업무 특성상 그가 처리를 제대로 못한 일은 나를 포함한 다른 동료들에게 고스란히 넘어오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상현이에게 일단 스피치 학원부터 다니라고 충고했다. 상현이는 군말없이 알겠다 했지만 나는 믿지 않았다. 그의 말투가 하루 아침에 고쳐질리도 없고, 박봉에 넉넉치 않던 그의 형편으로는 스피치 학원비를 감당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교육이 끝나고 근무조도 달라졌으니 교대할 때만 잠깐 마주치는 내 말을 굳이 들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대를 하는데, 그가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형. 저 스피치 학원 등록했어요.
나는 깜짝 놀랐다. 그저 잔소리로만 여길 줄 알았는데, 그래서 벌써 한 귀로 흘렸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는 충고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 후로 상현이는 간간이 학원에서 있었던 일을 내게 들려주었다. 결국 그의 말투는 바뀌지 못했지만 적어도 상현이에 대한 내 시각은 차츰 달라져갔다.
그러고 보니 참 이상했다. 상현이에 대한 뒷말이 들리지 않던 것이다. 나는 나이와 입사 순서 때문에 팀의 리더격이었는데, 동료들이나 몇몇 FD들은 다른 팀원들의 실수나 잘못을 내게 곧잘 일러바치곤 했다. 그래서 상현이에 대한 뒷담화도 곧 내 귀에 들어오겠지 했는데 어쩐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상현이와 함께 근무하던 친구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그를 칭찬했다. 밤샘 업무에도 졸거나 딴 짓 하지 않고 묵묵히 일만 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상현이와 함께 근무할 기회가 몇 차례 있었는데 정말이지 그는 그 지루한 시간 동안 밭을 가는 소처럼 우직하게 업무에만 집중했다. 거기다 일을 배울 때만 다소 느릴 뿐, 한 번 배운 것은 쉽게 까먹지 않아 좀처럼 실수하는 일도 없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FD들은 상현이를 꽤 신뢰하고 있었다. 내가 그랬듯이.
그 후 나는 이직을 한 뒤 이사를 가게 되었다. 당시 오피스텔 지하 단칸방에서 살고 있었는데 집이 워낙 좁아서 짐이 얼마 없겠지 하고 1톤 용달 트럭만 불렀다. 하지만 꺼내 놓고 보니 양이 엄청났다. 트럭이 도착하기 전에 이삿짐을 꺼내다 지쳐버린 나는 도저히 혼자서 싣고 내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급한 대로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평일에 당장 이삿짐 나르기가 가능한 사람이 있을리 만무했다. 용달차가 도착할 시간이 가까워 올수록 더 막막해졌다. 그러다 점심 무렵 상현이에게서 콜백이 왔다. 사정을 설명하자 그는 흔쾌히 달려와 주었다. 더욱 놀란 건 그 날 상현이는 밤샘 업무를 마치고 한 숨도 자지 않은 상태로 점심에는 전단지를 나눠주는 아르바이트를 한 뒤 내게로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해질 무렵까지 함께 이삿짐을 날라주었다. 나는 그에게 짜장면과 사천탕수육을 사주었지만 중국집 요리를 모두 대접한들 고마움을 갚을 순 없었다.
생각해보면 상현이는 말투는 느리지만 그래서 말 실수를 한 적이 없었다. 허풍 치는 법도, 남을 속이는 법도 모르는 그는 부탁을 받으면 유불리를 따지지 않았다. 어느 자리, 어느 위치에서도 성실했고 시간을 엄수했으며 마지막까지 자신의 몫을 다했다. 누구나 당연히 그래야 마땅하다는 것들, 하지만 그래서 더 지키기 어려웠던 것들을 상현이는 어기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고작 그의 말투, 인상만 보고 그의 전부를 판단했다. 내가 그랬듯이. 그래서 한동안 상현이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이곳 저곳을 떠돌기도 했었다. 그런 그에게 나는 만날 때마다 힘주어 말했다.
넌 잘 될 거야. 분명 그럴거야.
너 같은 사람이 잘 되지 못한다면 그건 네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가 문제인거야.
그러면 상현이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예의 그 사람 좋은 웃음으로 "고마워요. 형" 하며 답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은 내게도 그의 미래가 밝고 아름답게만 그려지지 않았다. 그 말투는 취업뿐만 아니라 연애를 할 때도, 하다못해 친구를 사귈 때도 핸디캡이 될게 뻔했다. 도리어 착한 그를 이용해 먹기 위해 나쁜 의도로 접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주 오랜 세월을 지금처럼 외로이 보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를 위한 나의 기도는 '오직 덜 상처 받게 해주소서.'로 시작하곤 했다.
그러다 며칠 전 상현이를 오랜만에 만났다. 그동안 파견직으로 일하다 계약이 만료된 후 재취업을 준비하던 그는 얼마 전 그만둔 회사의 상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곧 정규직 채용이 있을 예정이니 꼭 지원해보라는 연락이었다. 물론 필기시험도 면접도 남들과 똑같이 봐야하지만 그런 연락을 받았다는 것에 나는 정말 정말 기뻤다. 두 번 다시 안 봐도 무방한, 계약 끝난 파견직 사원에게 따로 전화해서 그런 말을 해주었다는 것이 상현이의 사람됨을 그가 알아보았다는 뜻 아니겠는가. 아마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 상사가 곁에 있었다면 나는 손을 덥석 잡고서 몇 번이고 말했을 것이다.
사람 참 잘 보셨습니다.
진짜 제대로 된 사람을 찾은 거에요.
앞으로도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상현이의 진면목을 알아주길 바란다. 그래서 결국 행복해지는 것은 그들일 테니.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 글과 사진은 당사자에게 허락을 받은 후 게재한 것임을 알립니다.
2022년 2월 2일 고쳐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