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이 쓴 글을 옮기기만 하다가, 직접 글을 쓰려니… 내일 당장 수능 시험인데, <<수학의 정석>>과 <<우선순위 영단어>>를 달랑 한 장 공부하고 고이 모셔 놓은 고3 심정처럼 막막하다. 에세이 작성 부탁을 받고 2주 꼬박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코로나 19로 바뀐 생활 패턴 또는 코로나19로 인한 국제 관계 변화 및 글로벌화 트렌드를 주제로 하든가, 내가 논하고 싶은 주제로 써 달라고 했다. 육아와 일에 발을 반반 담고 있는 나로서는 코로나19로 생활 패턴이 확 바뀌지도 않았다. 육아도 집에서, 일도 집에서 하는 ‘집순이’ 프리랜서라서, 애들 하원하고 놀이터에 마스크를 이목구비의 일부인 양 달고 다니는 것 밖에는 달라진 점이 없다. 그래서 첫 번째 주제 탈락. 상당히 미시적인 인간인 나로서는 너무나 거시적인 국제 관계를 논할 깜냥이 없다. 오케이. 두 번째 주제도 탈락. 자연스럽게 세 번째 주제 당첨! 그냥 내가 쓰고 싶은 걸 쓰겠다.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여름 방학 두 달 동안 모 기업의 프로젝트에 통번역사로 투입됐다. 중국 법인 노사 관계 담당 팀장들이 한국 본사에 2주 동안 교육을 받으러 오는 프로젝트였다. 교육 자료를 싹 다 번역하고 수업을 통역하는 업무였다. 한국 쪽이 본사였으므로 당연히 한중 방향 위주였다. 자기 전 그날 번역한 내용을 머릿속으로 되새김질하다가, 뇌에게 나도 쉬어야 하지 않겠냐고 원망을 한 바가지 들었을 것이다. 일단 다 번역해 놓고, 원어민의 감수를 받아야 한다고 침을 튀겨가며 열변을 토했다. 시원하게 거절당했다. 김미경 씨가 “대충~”하면 알아서들 보고 이해할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대충”이라니, 혐오스럽기 그지없는 벌레다.
인생 첫 순차 통역을 앞두고 일주일 정도 압박감이 심했다. 발음이 꼬이면 어쩌나, 모르는 단어가 튀어나오면 어쩌나, 중국인이 못 알아들으면 어쩌나 등 별별 걱정들과 씨름했다. 내가 번역한 ppt를 화면에 떡하니 띄웠는데, 중국 팀장님들이 킥킥 웃는 장면이 꿈에서 반복됐다. 원어민 감수는 못 받더라도 최대한 문맥에 맞는 단어를 찾으려고 하나씩 다 검색해 가며 번역했다. 하지만 감수를 받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어색한 부분이 많았으리라. 다행히 교육은 순조롭게 진행됐고, ppt 번역본이 비웃음 당하는 악몽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 방학이 끝나고 스터디 파트너에게 한중이 늘었다는 얘기를 듣고 뇌에게 욕 폭격을 당해도 여유롭게 웃어넘길 만큼 뿌듯했다.
중국 서안에서 인하우스로 일하던 시절, 담당 부서엔 학창 시절 아침 조회 비슷한 문화가 있었다. 선생님만 열심히 말하고 학생들은 귀담아듣지 않는 아침 조회. 부서원들이 모여 업무 진척 상황과 주요 일정을 공유했다. 여기까진 괜찮은데, 통역사인 나로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순서가 있었다. 이름하여 ‘3분 talk’! 한국 직원, 중국 직원이 각각 한 명씩 나와 3분 동안 자유 주제로 발표하는 것이었다. 직원들도 이런 걸 왜 해야 하냐고 치를 떨었다. 여러분들은 한참만에 순서가 돌아오지만, 난 매일 그걸 통역해야 한단 말입니다!’
아무리 ‘자유 주제’지만, 그렇게 자유로워도 되나 싶었다. 한국 직원들은 3분 talk로 부장님 눈에 들어 출세하겠다는 야망이 딱히 없어 보였다. 철학이 담기거나, 깨달음을 줄 만한 내용은 발표하지 않았다. 첫사랑 얘기, 신입 사원 때 에피소드 등 소소한 신변잡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다고 통역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존경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연설문에 익숙한 내게 일상생활 이야기를 통역하는 쪽이 훨씬 어려웠다. 지금 생각해도 통역하기 난감한 말장난 식 ‘아재 개그’를 날리는 분도 있었다. 예를 들자면 “인천 앞바다의 반대말”은 “인천 엄마다.” 이런 유머를 선보이고 통역을 들은 중국인의 리액션을 기대하는 그 표정.
중국 직원은 3분 talk에 메시지를 담으려 노력했다. 두보 시를 인용하거나, 난센스 퀴즈를 내거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노래 부르고 짝짝짝 손뼉 치고 끝나면 참 좋았으련만. 중국어에 골프만큼 흥미를 가진 김 부장님은 가사 내용을 몹시 알고 싶어 했다. 그래서 노래 가사를 이해한 대로 테이킹 하고 대략의 내용만 통역했다. 남들 리듬 타며 노래 감상할 때, 바짝 긴장해서 코끼리 귀를 하고 있는 통역사 1인. 짝짓기 놀이에서 홀로 끼지 못하는 애만큼 외로웠다.
매일 아침, 오디션 무대에 올랐다. 쇼미 더 머니나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처럼 일정 기간 열심히 준비한 걸 보여주고 평가받는 거면 조금 덜 억울했을지도 모르겠다. 2주일쯤 혹독한 시련을 겪고 나서, 제 명에 못 살지 싶어 ‘3분 talk’ 사전 자료 확보에 나섰다. 조회 전에 당일 발표자를 찾아가서 주제라도 공유해 달라, 꼭 강조하고 싶은 내용은 미리 말해달라, 시나 명언 쓸 거면 지금 알려 달라, 멋지게 통역해 주겠다…… 노력이 가상했는지, 얼마 뒤부터 찾아가기 전에 미리 와서 발표 내용을 공유하는 직원들이 생겨났다. 그렇다고 ‘3분 talk’의 압박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재밌는 내용이 많았다. 그때는 전혀 즐기지 못했지만 서도. 듣기 실력 향상과 정신력 강화에 도움이 된 건 분명하다.
통번역사. 참 고달프고 외로운 직업이다. 다른 직업도 고충이 있겠지만, 직접 해보지 않았으므로 두루뭉술하게 대충 뭐 어떤 점이 힘들겠구나, 짐작만 할 뿐이다. 어쨌든 이 일은 현장에서 하고 있으니, 참말로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졸업하고 10년을 바라보는 데도 이리저리 부딪혀 여기저기 긁히고 상처 나고 아물기를 반복하고 있다. 힘들었던 에피소드를 풀자면 3박 4일로 수다 떨 펜션을 예약해야 한다. 그렇게 징징거릴 거면 때려치우라고 말할 수도 있다. 힘들다고 툴툴하면 서도 버티는 건, 뿌듯하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물 흐르듯 소통이 이루어지는 시원한 느낌, 찹쌀떡처럼 착 붙는 표현을 찾았을 때의 희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지 않은가.
통역이 끝난 뒤에 드는 감정을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끝났다는 홀가분함. 둘째, 왜 그렇게 통역했지 하는 자괴감. 셋째,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 통역할 때마다 다시 들어보려고 꼭 녹음을 한다. 어떨 땐, 녹음 듣기가 무서워서 삭제 버튼 위에 엄지손가락을 대고 싶은 마음이 아우성친다. 예전에 했던 번역은 그냥 고이 추억으로 남기고 싶다. 그런데 꾸역꾸역 다시 보는 이유는 옛날 번역문을 어색하게 느끼는 게, 그때보다 성장한 거라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코앞에 노사 관계 교육 번역본과 3분 talk 통역 녹음을 들이대며 자가 크리틱을 하라고 한다면 살인 충동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노사 관계 교육 번역본은 회사 기밀이라 유출할 수 없었고, 3분 talk 통역은 미처 녹음하지 못했다. 천만다행이다. 그래도 앞으로 시간 날 때마다 통역 녹음 파일을 듣고 예전 번역문을 찾아보려고 한다. 더 잘하고 싶으니까. 정신 건강을 위해서 기분이 아주 좋을 때만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