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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완 Jan 27. 2021

일본에서의 졸업식

2019. 03. 04

오늘은 졸업식이었습니다. 간밤에 잠자리가 괴로워서 제대로 누울 수 없었어요. 애플네 맨션은 큰 길 앞에 있는 데다 방음도 잘 되지 않아 새벽 내내 차 다니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세키조마치에 있는, 내 방이 그리워졌습니다. 옷을 깔고 가방을 베어 겨우 자다가, 너무 추워 몰려든 천식 때문에 이따금 깨었어요. 올해 처음으로 벤토린을 썼습니다. 그럼 처음부터 하나씩 써볼게요. 어젯밤 애플과 리키 그리고 나 셋이서 식사를 하다가, 셋 다 수상자라 리허설 때문에 일찍 가야 하는데 식장까지 같이 택시를 타고 가지 않겠느냐고 했어요. 그러면 돈을 아낄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모두 유학생이라 돈 아끼는 일이 몸에 뱄습니다. 그렇게 간만에 찾아온 잠자리 요통으로(아마 오래 침대에서만 생활했기 때문이겠죠.) 선잠을 자다가, 조금 무서운 꿈도 꾸고, 그러면서 깼어요. 애플은 초커를 포함한 도발적인 세미 정장 패션으로, 나는 정장 재킷에 입학식 때 입었던 하얀 니트(그다지 수미상관을 위한 일은 아닙니다. 유종의 미라면 그렇죠.), 그리고 슬랙스에 이 년 전에 산 로퍼를 신고 출발했습니다. 빗길을 걷고 걸어 요시즈카 역에 도착했을 때 리키에게 연락했는데, 글쎄 전화도 메시지도 안 받는 게 아니겠어요. 알고 보니 늦잠을 잤다더군요. 하는 수 없이 둘이서 택시를 탔습니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빗줄기가 가늘어진 뒤였어요. 우리는 접수처 앞을 헤매다가 식장으로 들어가 리허설을 시작했습니다. 온통 앉았다 일어나기뿐이었지만요.



님자들은 대개 정장을 입었지만 여자들은 거의 하카마였어요. 하카마는 뭔갈 더 다른 재봉법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했더니, 그냥 기모노 위에 주름치마를 한 겹 더 입은 모양새였습니다. 웃겼어요. 문화의 얄팍함이, 그 근본없는 허례허식이요. 사실 허례허식 같은 건 근본이 없는 문화권에서야 비로소 완성이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엘리트 상류층이 과시용 소비를 등한시하고 에코백을 매고 다니는 것처럼요. 내 대각선 자리에는 머리장식으로 생화 다발을 엮은 여자아이가 앉았습니다. 졸업식이 시작되고서는 솔직히 완전히 졸았는데, 가끔씩 정신을 붙들 때마다 조는 그 애의 까딱이는 목과 그 위로 시간에 따라 차츰 시들어가는 생화장식이 눈에 들었습니다. 생화 냄새는 가장 좋아하는 향기들 중 하나지만, 그런 장식은 조화가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졸업식 초반에는 국가 제창을 했습니다. 이 나라의 국가는 기미가요잖아요. 나는 일장기를 바라보지 않고 섰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물론 정신이 온전히 박힌 사람이 본다면 우스운 일이겠죠. 나도 내가 우스웠습니다. 이 년 전에 그런 선택을 한 내 자신이요.



그러고는 잤습니다. 내리 잤어요. 정말 피곤했거든요. 앉아서 휘청이는 내 몸이 왼쪽에 앉은 리키의 수트에 잠깐 닿았다가, 오른쪽에 앉은 히메카의 하카마에 붙었다 떨어지는 느낌을 한두 시간 정도 겪고, 겨우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고, 같이 졸다가 잘못된 차례에 일어나려는 히메카를 만류하기도 하면서 공식 행사를 마쳤습니다. 나와서는 졸업장을 받았어요. 모두 와 있더군요. 다시는 못 만날 줄 알았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지나치게 감성적이지 않느냐고 스스로에게 묻고 싶네요. 난 원래 그렇습니다.



올해 유학생 반을 맡은 일어 강사분을 만나 연락처를 교환했습니다. 사실 성실하게 수업을 들은 기억은 없는데 왜 그렇게까지 연을 이어가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좋은 학생이라서일까요? 아니면 그냥 학생이라서일까요? 후자겠죠? 다음으로는 바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입구에서 아는 얼굴 없이 서 있는 걸 인사하려고 다가갔는데, 다른 사람을 붙잡고 말을 걸길래 조금 기다렸다가요. 인사를 하고 악수도 했습니다. 오늘 악수를 참 많이 했어요. 누구 하나는 왼손으로 했는데 누구였는지. 볼란티어 지도교수였던 것 같습니다.

졸업장과 상장 두 장을 받는데 와카스기가 졸업장을 건네주면서 よく頑張りました 라고 했어요. 난 내가 뭘 열심히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기억도 없고요. 다만 존재하는 일 자체가 힘겨웠던 것 같긴 합니다. 매일 아침이 점심이 저녁이 전투였죠. 유학생활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말이 반복돼서 웃기지만, 난 원래 그렇습니다.



짐을 정리해 넣고(비행기 수하물이 또 늘어버렸다고 괴로워하며) 謝恩会를 위해 바로 옆 연회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뷔페가 있었어요.맛은 글쎄 그렇게 특별하게 좋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식사를 하고 있으니 예전 일어 강사분이 와서 말을 거셨습니다. 내가 건강해보인다고 했어요. 그야 그렇겠죠... 교양수업 음악 강사분도 왔습니다. 평소엔 티셔츠에 청바지 백팩 차림으로 다니더니 오늘은 끝장나게 멋을 내고 왔어요. 색깔 있는 선글라스도 쓰고요. 수업 때마다 일루미나티 음모론 전파에 트럼프 카드놀이만 잔뜩 했는데 그것도 뭐 그런대로 즐거웠습니다. 마지막 쫑파티 때 늦었던 이야기로 농담 따먹기를 하다가 그분은 또 어딘가로 가셨고, 나도 보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악수를 했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언제 귀국하느냐고 물었고, 헷갈린 내가 내일과 내일 모레를 섞어 대답하기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복학 후에 다시 곧장 한국 대학을 다닌다고 말하면 다들 힘들겠다고 그러더군요. 힘들 것 같아요. 하지만 해야지 별 수 없죠. 그렇게 여러 사람 만나다가 다리가 아파 구석 소파에 앉았습니다. 조명이 사그러지고 그간 찍은 사진 상영회가 있었습니다. 사진과는 연이 없어서 그냥, 그대로 구석에 있었어요. 나는 내 모습이 기록되는 게 너무 싫습니다. 사진을 보면 그 순간 하던 생각이 뭐였는지 금방 떠오르거든요. 그리고 그것들은 대부분 좋지 않은 생각들뿐이죠...



디저트인 파운드 케이크가 무척 맛있었습니다. 항공과 친구들이 한국말로 말을 걸더라고요. 그래서 조명이 어두운데도 별로 외롭지 않았어요. 이윽고 차례차례 단상에 올라 이야기를 하고, 울먹이고, 울고, 다독이고, 꽃다발을 주고 받고 개그를 쳤습니다. 분위기를 맞추려고 소리 내어 웃었는데 점점 진짜로 웃게 되는 게 아니겠어요. 모모치 해변이 한 눈에 보이는 곳에서, 사은회가 있던 34층의 한층 위에서 사진촬영을 마치고, 담당 교수와도 악수를 하고 그렇게 귀갓길에 올랐습니다. 참, 미사토와 미쿠하고도 인사를 나눴습니다. 제가 떠나는 게 좀 아쉬운가봐요. 미사토는 오키나와로 가고 미쿠는 후쿠오카에 남는다고 합니다. 몇 번이고 껴안고(이건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일인데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마구 껴안게 됐습니다.) 손을 잡고 눈을 맞추고 그렇게, 잘 지내라는 인사를 끝으로 헤어졌습니다. 사실 실감이 나지 않아서인지도 몰라요. 당장 내일도 언젠가 반드시 올 귀국날을 그리며 청소된 토퍼 위에 몸을 눕히고 베개 감촉을 느끼며 익숙한 천장과 함께 잠에 들 것 같았어요. 하지만 내게 여기에서의 내일은 더이상 없고 이제는 그걸 알아요.



아직 퇴실 점검을 받지 않아서 조금 급하게 택시를 잡았어요. 한편 택시에 타자마자 뭔가 손이 허전하다는 걸 느꼈고... 졸업장과 수여받은 상장, 학위증명서에 환급받은 사천 엔을 어디다 두고 와버렸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웃긴 건 누가 졸업장을 두고 떠나려는 모습을 내가 목격했거든요. 그걸 보고 비웃었단 말이에요. 얼마나 바쁘면. 내가 비웃긴 누굴 비웃어 하면서 애플에게 연락했습니다. 다행히 히라오가 발견해서 애플에게 건네주었다고 하더군요. 그대로 기숙사에 와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관리인분은 친절했어요. 상냥했고. 왜 퇴실 때는 분위기가 바뀔 지도 모른다고 불안에 떨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세 번째인데, 난 원래 그래요. 졸업 선물로 보조배터리도 받았습니다. 기숙사 이름이 인쇄된 가볍고 검은 네 칸짜리 배터리. 버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방을 한 바퀴 둘러봤습니다. 사실 몇 바퀴는 둘러봤어요. 정이 막 든 것 같지도 않고, 기숙사에 오면 늘 랩탑 화면만 들여다 봤기 때문에 구석구석에 내 시선을 남겨두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떠나기가 싫었습니다. 어쩐지. 잊고 있는 기억이 너무 많은 탓이에요. 서향이라 오전에는 푸른 그림자가 들고 저녁 무렵에는 눈이 부실 정도로 쨍하게 내리쬐는 석양이 선착장 방향 건너편에서, 고가도로 틈새로 비쳐 벽에 주홍색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그런 풍경들이요. 손가락 사이에 가두면 빛의 반지를 낀 것 같은 그런 풍경들이요.

씻은 와인병으로 교양수업 때 만든 다발들을 꽂아 화병을 만들어 장식한 책상, 꽃을 때 고민하던 문제들(녹색 병에 흰색 꽃을 꽂고 투명한 병에 보라색 꽃을 꽃느냐, 녹색 병에 보라색 꽃을 꽂고 투명한 병에 흰색 꽃을 꽂느냐 등), 자리가 부족해 빛이 드는 마루에 떨어뜨려 놓은 양말들, 세탁기에서 올라오는 세제 냄새, 닫으면 방이 완벽해지는 고동색 붙박이장, 토퍼를 팔꿈치로 깊게 누르면 느껴지던 침대 원목틀, 유학 처음부터 룸메이트에게 빌려 쓴 전혀 취향이 아니던 분홍 꽃무늬 커튼, 팩을 잘못 두어서 얼룩이 진 책상 서랍(이건 붙박이장 안에 넣고 옷장2로 쓰고 있었는데, 검사받을 때 이야기하니 별 문제가 아니라는 희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뭐가 있었지. 마지막 날에만 몸을 담갔던 조막만한 욕조, 부엌이라기보다 실험대에 가깝던 인덕션, 물기 마른 설거지통, 아무튼 그런 풍경들. 그런 풍경들 말이에요. 나는 그 방을 너무 사랑했습니다. 지금도 그리워서 견딜 수 없어요. 사실 견딜 만은 해요. 관리인은 내가 청소를 완벽하게 잘했다고 칭찬했습니다. 하지만 전날까지 불안해 했고 난 원래 그래요. 이건 좀 오해가 있는데 내 천성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오래된 병증이 마치 내 것인양 친해졌단 말입니다.



서쪽으로 난 창이 가장 그립습니다. 매달 하늘이 달랐거든요. 가장 일몰이 진한 시기는 6월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사 들어온 초기에는 베란다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지는 해를 보면서 글을 쓰기도 했죠. 나중 가서는 전혀 커튼을 열지 않았지만요. 누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거든요. 옛날부터 창문은 무서웠습니다. 낡은 집에 살 때 전기세가 밀려 에어컨을 켜지 못해 하루종일 열고 잤던 때를 빼면요. 그때 들었던 노래도 기억이 나네요. 더데빌 넘버들.



왜 이야기가 여기까지 왔을까요. 추억에 관해 말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졸업 축사 때 와카스기가 그런 말도 했네요. 뒤돌아보는 순간이 분명 있겠지만 앞으로 나아가라고요. 그리고 팜플렛에서는, 자신을 믿고 나아가기를 계속하라고요. 난 이대로 걸어가도 되나요? 목적지를 설정하고 움직이지 않는 것과 목적지 없이 걷는 것중 단연 후자가 낫겠죠? 그래서 나는 지금 걷고 있는가요?

그로부터 카드키와 열쇠를 반납하고, 거기 붙어 있던 스파이더맨 열쇠고리(요즘 키링이라고 그러던데 왜 굳이 그렇게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편견, 선입견과 스테레오타입의 설명을 달리 하지 못하는 사람을 보는 기분이 들어요.)를 돌려받고 우편함에 아무것도 없는 걸 확인한 뒤에 애플네 집으로 삼십 분 정도 걸었습니다. 카페를 가자 했는데 힘들어서 쭉 쉬다 보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네요. 아까는 여덟 시 정도였는데 지금은 또 아홉 시 반이에요. 지금은 애플이 전화를 받고 있어요. 우리가 가지 않은 졸업식 뒷풀이 파티에서 학회장이 잔뜩 취했다고 해요. 좋겠다 너넨. 내일 탈 비행기가 없으니 죽어라 마셔도 되겠지... 지금은 또 리키와 메시지를 나누고 있어요. 취한 학회장을 안전하게 집까지 데려다 주어야겠다고 합니다. 불꽃놀이를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나. 리키, 미사토와 페미니즘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는데 리키가 자길 dying breed 라고 칭한 기억이 나요. 그런 것 같아요. 마지막 식사자리에서도 꽤 괜찮은 이야기를 오래 나눌 수 있어서 놀라기도 해서요.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으면 다시 예전처럼 똑똑해질 수 있을까, 맞는 말을 할 수 있을까 겁이 나고 맙니다. 예전의 난 똑똑했어요. 그걸 어떻게 아냐면 지금은 아주 멍청한데, 이렇게까지 멍청했던 순간이 없었거든요. 아마 입력을 게을리 하고 산출에만 힘을 써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이만 줄여야겠습니다. 이 이상 쓰면 정말 끝도 없이 길어질 것 같고, 조금 전에 내가 일기 쓰는 걸 애플이 엿보더니 Isn't it too long이라고 한 것도 있고요. 더 쓰면 아마 흘려보낸 나날들 속에서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아 조금 혹하는데 누군가 또 그러더군요. 인생에서 의미 찾지 마. 귀찮아져.



신디사이저의 인간미 없는 음색을 좋아해요. 결벽적이라서요.



오늘은 혼잣말을 멈추고 당신에게 말을 걸어보았습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나는 몰라요. 다만 지극히 외로울 뿐이에요. 가족들은 이제 내게 기대하는 게 없거든요. 특히 그분이요. 그분은 이제 날 포기한 건지도 몰라요. 예전이라면 기뻤을 지도 모르겠는데 글쎄요. 난 여전히 애정이 그립고 받고 싶고 내 그간의 결핍을 쓰레기로라도 모아 채우고 싶습니다... 그래선 안 될 걸 알아요... 근데 난 원래 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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