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_헤르만 헤세 문학동네
기대는 좋은 것일까?
6월 내 머릿속을 떠다니며 머무는 단어는 '기대'다.
아이를 어렵게 가지며 항상 아이에 대해 생각하고 결정할 때 스스로에게 하는 말 '기대하지 말자.' .
어쩌면 '기대'라는 단어는 긍정의 의미가 강할 수 있는데 어느샌가 나에겐 '부정'의 의미로 쓰이고 있었다. 또한, 무슨 일을 행하거나 원할 때, '기대한다'보다 '소망한다'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기대하다 : 어떤 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기다리다.
소망하다 : 어떤 일을 바라다
'기다린다는 것'. 우리가 가장 하기 어려운 일 중 하나가 바로 기다리는 것. 결국 기다림이 수반되어야 하는 '기대'이기에 그 기다림을 감내하지 못할 경우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좌절하고 후회하는 것 아닐까.
다양한 감정들을 품은 채 나의 첫 북클럽이자 책 가족인 ' 채소북클럽'의 6월 책인 '싯다르타'를 만났다.
10대 때부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라고 이야기한 '헤르만 헤세'. 얕은 지식을 뽐내던 시기인 10대 때의 싯다르타와 마흔이 되어 만난 싯다르타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었다. 그래서 고전은 나이가 들어 읽어야 한다는 거구나, 를 제대로 느끼게 해준 책. 현재의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들을 이 책을 만나며 조금씩 풀어내보고 있다.
뭔가를 갈구하지 않고, 참으로 소박하고 참으로 천진난만하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니, 이 세상은 아름다웠다.
싯다르타 p.62, 헤르만 헤세, 문학동네
기대한다는 것은 결국 갈구한다는 것.
갈구하다 : 간절히 바라며 구하다.
바라는 것과 구하는 것은 무엇의 차이일까. 결국 구한다라는 것은 '소유'하고 싶다라는 것. 소유하기 위해 간절히 바라는 것.
갈구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갖고자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해 스트레스와 번뇌, 고뇌가 생기는 것 아닐까. 간절히 바라며 구하는 것. 간절히 가지길 바라며 구하고자 기다리는 것. 결국, 기대였다.
단어 자체의 긍정과 부정 또한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의 굴레가 아닌가 싶다. '희망'이라는 단어가 누군가에게는 긍정의 단어로, 누군가에게는 붙잡을 수 없을 만큼 먼 곳의 단어로 다가갈 수 있는 것처럼
책은 나에게 동시성과 내가 필요로 하던 답을 선물한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은 결국 나에게 이렇게 돌아오고야 말았다. 오늘도 난 기대라는 것은 버리고 정리하고 내려놓았다. 갈대같은 마음의 속성 상 언제, 어느순간 또 무언가를 기대하고 바뀔지 모르겠지만 흔들릴 때마다 나는 주문처럼 외울 것이다. 기대하지 말라. 이런 생각을 하게끔 나를 인도하는 것 역시 나의 모순을 없애기 위핸 기대를 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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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야기를 너무나도 많이 나누는 우리 채소 가족들. 리더들에 의해 이끌어진 시즌 1이 종료했고, 식구들이 돌아가며 오픈하는 시즌 2가 의외로 너무나도 풍성해 책의 채소밭에서 행복에 겨워 방긋방긋 웃으며 책 속을 헤맨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경험' 과 '체험'의 차이.
얼마 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 걷고 온 분의 이야기가 많이 궁금했다. 다녀온 뒤 바뀐 삶이 있는지, 생각이 있는지..
눈에 띄게 드러난 변화는 없지만 스스로의 자신의 변화는 굉장히 많다는 그녀. 산티아고에 관련된 책과 자료, 사진을 아무리 많이 본들 직접 겪고 보고 느낀 것은 다르다며, 결국 나 스스로가 각성되는 경험이 체험이라 생각되었다고. 싯다르타가 무수한 책들과 이론, 선배들의 길을 옆에서 보고 겪었으나 결국 스스로 걷고 묵상하고 단식하고 사랑하고 방황하며 겪은 것들이 그가 찾고자 했던 길을 찾는 바탕이 된 것처럼 무슨 일이든 무조건 부딪쳐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그녀의 이야기는 나뿐만 아니라 지금 살아가는 시대의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조언이 아닌가 싶다.
'메타버스'라는 말이 더이상 이질적이거나 생소하지 않은 현 시점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가짜다를 판별할 수는 없다. 다만, 진실과 사실이 무엇인지에 대해 인지하고 살아가야하진 않을까. 그런 면에서도 싯다르타는 꼭 읽어야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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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태어나는 순간 나 역시 새롭게 태어나고 새롭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 나의 변화 또한 어쩌면 아이 때문인 듯 하다. 돌이켜 생각하면 20대의 난 생각보다 못났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이었지 않나 싶다. 그렇기에 나와 성별이 다른 아이가 배우자를 만날 때 '엄마 같은 사람' 을 만났으면 좋겠다라는 말에 걸맞는 사람이 되고자 매일 나를 가다듬고, 바라보며 노력한다.
하지만 때때로 부딪치는 현실의 문제들 앞에서, 아이를 위해 모순 속을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면 진정으로 나의 마지막이자 가장 큰 번뇌는 아이인 것인가 싶다. 싯다르타 역시 눈 앞에 나타난 아들 앞에서 마지막 번뇌를 겪으며, 잘못인 걸 알면서도 자신의 핏줄인 아이이기에 끝까지 놓지 못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체험을 통해 가장 어려운 번뇌의 시기를 거치며 그 번뇌를 뛰어넘고자 애쓰며 나도 함께 성장하고 싶다. 가장 어렵다는 자식 농사. 결국 사람의 성장은 자신과 같은 사람을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마지막 성장의 쓴 맛을 맛보며 이뤄내는 것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