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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Nov 08. 2022

목숨을 밟으며 퇴보하는 곳에서

사람이 '그냥,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7살 아이를 데리고 떠난 마흔의 여름 휴가 목적지는 진도였다.

노란 리본들이 대신하고 있는 그곳에서 나는 젖은 손으로 아이의 가방에 작은 리본을 달며 다짐했었다. 나의 아이에서 시작하는 이 마음을 바탕으로 너희와 같은 일들이 다신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어른이 되겠다고.


나의 결심은, 그런 마음을 가진 어른들의 결심은 다 부질없었다. 단지 생각을 했다고 해서, 말로 내뱉기만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없었다.  


압사라는 말도 안되는, 있어서는 안될 재앙이 한 나라의 수도 중심에서 일어났다. 살려달라 부르짖은 이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미루고 외면하는 이곳에서 난 책임을 져야 하는 어른 대신 혹시 그곳에 있었을까 걱정되는 누군가에게 전화하는 또 하나의 누군가였고, 안도와 함께 그 안도감마저 죄스러워하는 평범한 한 인간인 내가 끔찍히도 싫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미 소를 잃은 상태라도 외양간을 고치긴커녕 다른 소까지 잃어버리는 한심한 곳에 더이상 욕할 힘조차 남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왜, 우리는, 축제에서조차 목숨을 앗아가게끔 만드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걸까. 우리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약속을 내어주고 그 자리에 올라선 그들은 진정으로 우리를 섬기고 있는 것인가. 왜이리도 그들과 우리 사이에 건널 수 없는, 넘을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건지. 저런 이들에게 우리의 목숨을 담보한 채 살아가야 하는 건지.


'무정부주의'라는 말이 만연하게 나도는 작금의 현실에 한숨도 아깝다. 다시 바뀌는 그 날까지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며 살아내야만 한다. 어마어마한 인명사고 앞에 진심으로 무릎 꿇고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자가 없다. 슬픔에 공감하고 책임지기는커녕 서로에게 떠넘기기에 급급해 권력만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세상 아래 몸을 낮추고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몰라서 외면하는 것이 아닌, 알고도 외면하는 자로 살아가야하는 세상이 두렵다. 상처를 보듬어도 모자라는 이들이 비난의 과녁이 되는 이때 적어도 난 이렇다할 상처 없는 삶을 사는 중이기에 목소리를 낼 권리조차 없다 생각하는 걸지도.


백사장의 모래 한 알만큼의 힘도 없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책을 꺼내어들어 읽고, 또 읽고, 쓰며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적어도 살아감에 있어 위협을 받지 않고 인권을 보장받는 나의 삶을 위해. 오늘은 홍은전님의 책을 꺼내어 들었다. 세상이 헤아리지 못한, 제대로 책임지지 못한 이야기들이 '그냥, 사람' 이 한 권 안에 넘실거린다.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닦으며 다시 한 번 읽어본다.


"생명 있는 모든 것은 위험 속에 산다." 위험하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어떤 위험은 명백히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 바깥에 있다. 일어날 위험에 대한 대비와 일어난 사고에 대한 대책을 함께 마련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이유 아닌가.


그냥, 사람, p.158, 홍은전, 봄날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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