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경산사 템플스테이
템플스테이인 듯 아닌 듯했던 것까지 치면, 이번이 세 번째. 처음은 김천의 청암사였다. 템플스테이라고 하기엔 그저 먹고 씻고 자고 왔더랬다. 하지만 산문에 들어서면서 분명히 어떤 경계를 넘어서는 느낌, 이마 위를 뭉근히 누르면서 온몸을 감아주던 기운이 있던 곳. 그 땅을 다시 만나러 가고 싶다는 미련을 남긴 강렬한 첫 경험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망경산사. 어쩌다 보니 은사님과 동문과 함께 가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템플스테이’라는 명목으로 등록하고 찾아갔다. 매달 둘째 주마다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인 운탄고도 걷기, 산중의 공기를 잔잔히 가르던 새벽예불의 소리, 게다가 되게도 맛있는 밥의 잔여가 새겨졌다. 하얀 호랑이를 타고 다니신다는 산신님이 계신 곳. 언젠가 꼭 다시 오겠지 싶었다.
생각보다 그때는 빨리 찾아왔다. 또다시 은사님과 또 다른 동문과 동행. 점심때 만나서 출발하기로 하고서는 아침에 짐을 챙기는 주제에 ‘감성’을 덧붙이겠다고 십수 년은 된 작은 똑딱이 디지털카메라도 보조가방에 넣었다. 예기치 못하게 기차를 놓치는 바람에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데도 사람들은 어디를 그렇게 가는 걸까. 길은 막히고 예상보다 늦은 시각에서야 영월에 도착했다. 그렇게 첫날은 밥 먹고 씻고 자는 걸로 마무리. 여전히 밥은 맛있었다.
비가 멈추지 않는 통에 새벽예불 다녀오면 다시 자고 밥 먹고 돌아가지 않을까 싶었건만.
새벽예불은 역시나 좋았다. 딱히 불자는 아니지만. 새벽예불은 아침이 오는 길을 싸리빗자루로 쓸어내는 것만 같다. 그리고 새벽의 그림자에 숨을 수 있는 특권을 얻는 기분, 새벽녘의 사부작 산책.
아마도 집에 있을 때는 결코 하지 않을 새벽산책은 발걸음이 듬성듬성해도 좋기만 하다.
주지스님과 주지스님의 지인이신 은사님 찬스로 만경사 입구까지는 차로 이동. ‘입구’라고는 해도 오솔길을 더 올라야 한다. 운해가 압권이라는 만경사이건만 날씨가 날씨인지라 운해는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아쉽지는 않다. 만경사 부처님들과 만경대산 산신님이 한자리 내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비가 오는 바람에, 혹은 덕분에 오전 중에 예정되어 있던 울력은 취소다. 그렇지만 템플스테이 참가자분들의 바람으로 안개비 속 운탄고도를 짧게 다녀오기로 했다. 비 오는 날이라 안심하고 있었을 산속 정령들이 귀를 쫑긋하셨을 만큼만 아주 약간은 웅성웅성이고 유쾌한 산책길. 어쩌면 부처님도 산신님도 정령들도 수십 년 전 광산작업의 소란스러움을 그리워하실까.
몰골은 꽤 엉망이 되었다. 습기 찬 날씨에 머리는 푸스스하고 얼굴은 끈적거리고 옷은 축축하니 늘어졌다. 아무래도 집 떠나 잠을 충분히 잔 것도 아니니 낯빛도 좋을 리 없다. 그래도 아마도 반짝이려니 하는 자신이 있었다. 산 속이니까.
떠나오기 직전, 만경산사의 정토선원 원장스님께 염불선을 짧게 배웠다. “나아무아미타아부울 나아무아미이타아부울.”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듯 소리를 내는 것은 이번이 아니라면 안 할 듯하지만 작게 웅얼거렸으면 후회할 뻔했다. 아니지, 그 감각을 몰랐으니 후회할 것도 없었겠다. 하지만 자기를 놓아줄 용기도 그래서 새로운 자기를 만날 기회도 모르고 살았을 거다. 이번 템플스테이, 오길 잘했다.
난 평생 ‘나’ ‘나’ ‘나‘ 거리고 살 인간이다. 그래서 가끔씩 그걸 억지로라도 숨겨줄 인연이 소중하다. 깊은 산속 망경산사, 그 안락한 은신처, 감사히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