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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생미셸 Jul 11. 2023

3개의 잡오퍼 (Job Offers)

배부른 소리라 하겠지...

복에 겨워 요강에 똥 싸는 소리라 하겠지...

그렇다.

지금 나에겐 3개의 잡 오퍼가 있다. 

물론 그 중 하나는 뜸들이는 사이에 '나가리'가 되었다.

현재 남은 건 2개. 


일단 싱가폴 소재 미국계 다국적 제조기업인 A사의 잡오퍼는 5월에 왔다. 그리고 그 뒤로 줄곧 온보딩 (Onboarding) 프로세스를 진행 중에 있었다. 

사실 회사 차원에서의 신규 직원 등록 과정은 거의 모두 마쳤다. 남은 것은 오로지 싱가폴에서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비자.

나는 감사하게도 싱가포르 영주권자의 법적 배우자라서, 요즘 따기 어렵다는 Employment Pass (EP), 취업비자를 신청하지 않고도 Long-Term Visit Pass (LTVP), 배우자 방문 비자 만으로도 합법적 근로가 가능했다.


근데 내가 돌연 8년반이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시원하게 날리고 4월부터 법적 백수가 되면서 나에게 있던 EP가 실효가 되었다. 그 뒤에 A사 인터뷰 전형을 진행하는 과정에 LTVP를 신청했다. 통상 한달이면 나온다던데 내 경우엔 꽤 뜸을 들였다. 왜일까. 여튼 4월 중순엔가 신청한 LTVP는 신체검사 (에이즈 결핵 등 병력 여부 체크)를 마친 뒤 7월 초에 승인이 떨어졌다. 


당초 A사에 입사하기로 한 날은 7월3일. LTVP 승인은 그 뒤에 왔다. 


근데 그 사이, 나는 내 꿈의 직장인 B사와 인터뷰를 진행 중이었다. 1차에 붙고 2차 인터뷰를 앞둔 시점에 비자 승인 이메일이 날라온 것이다. 


시점 상 정말로 너무너무 애매했다. LTVP 발급을 최대한 빨리 진행시키면 내가 A사에 일단 출근을 해야 하고, 그 와중에 B사에 합격을 하게 되면 다시 A사를 사직하고 싱가포르 노동청에도 다시 다른 회사로 간다고 신고를 해야하고 너무너무 복잡했던 것.


무엇보다도 나는 A사 입사를 그다지 달가워 하진 않았었다. 그저 충동적으로 관둔 직장. 4개월 남짓의 백수 생활, 거듭된 인터뷰와 재취업 준비에 지친 나머지...나쁘지 않은 연봉, 나쁘지 않은 네임밸류에 타협하며 '그래, 한번 가보자' 했던 것 뿐.


4월 사표 날린 뒤로 100여군데에 지원서를 날리고 10번 넘게 인터뷰와 필기시험을 치르며,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사실 지난 15년 간 앞만 보고 달려온 나에게 이번 사표는 일종의 쉼표와 같았다. 번아웃을 극복하고자 나는 6개월에서 1년 정도 그냥 푹 쉬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이번엔 재취업을 하면서도 딱히 안절부절 못 하거나, 아등바등 하거나 나를 달달 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아이러니컬 하게도 이럴 때, 일 하기 싫을 때, 인생 최대의 오퍼를 받았다.


결국 취업은 운빨이 90% 이상이구나를 실감하며...


여튼 다시 베베 꼬인 상황으로 돌아가 보면. A사와 고용계약서 까지 싸인을 하고 7/3에 입사키로 했으나, 비자로 불발. 다시 7/10로 입사일이 조정되었으나, B사와의 전형 중이라 이미 나온 비자를 콜렉션 하지 않고 내쪽에서도 뜸을 들였다. 


보다 못 한 A사는 그뒤로 거의 매일 나를 재촉하고 닥달하고 ㅠ 나는 할 수 없이 내가 가고픈 B사를 닥달하기 시작했다. A사에선 빨리 비자를 콜렉션 하고 이메일 달라 독촉하고, 나는 B사 쪽에 2차 인터뷰 일정을 속개 해달라 닥달하고. 그렇게 겨우겨우 2차 인터뷰를 예상 보다 이른 시점에 마치고, 인터뷰 말미에 아시아 헤드로부터 "오퍼가 갈 것이다" 라는 기쁜 소식 까지 들었다. 


내가 2차 인터뷰를 빨리 해 달라 재촉하는 바람에 그 아시아 헤드는 미국 출장에서 돌아와 여독이 채 풀리기도 전에 돌아오고 바로 다음날, 그것도 싱가포르의 공휴일이었던 그날, 나와 대면도 아닌 화상으로 면접을 진행했다. 


매우 매우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B사는 레퍼런스 체크를 매우 꼼꼼하게 하기로 유명하다. 미래의 보쓰에게서 구두 오퍼를 받은 뒤에도 1주일 간 까탈스러운 레퍼런스 체크가 진행되었다. 그것도 3분의 추천인들과 시간을 조율하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 지, 게다가 A사 입사를 위해 3명의 추천인을 이미 희생시킨 터라, 추가로 3분을 찾는 것 또한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질문도 어찌나 구체적이고 번거로운 것들이었는 지...지인 6분을 위해 난 선물이나 식사라도 대접해야 할 상황이다. 


싱가폴에 있는 친구가 베이징 출장을 가서 바빠 죽겠는 와중에 난 그에게 거듭 부탁을 하는 수밖에 없었고...ㅠ 지인들에게 욕은 욕대로 먹고, 그 와중에 또 B사 쪽 인사 담당자에게 독촉 메일은 어찌나 여러번 보냈는 지...이젠 더이상 궁금해도 보낼 염치가 없다.


그 일주일 동안 A사에서도 빨리 LTVP를 콜렉션 하라는 독촉 이메일과 미래 보쓰의 왓츠앱 문자까지 한밤중에 받았다. ㅠㅠ. 그래서일까. 더더욱 가기가 싫어진다. B사가 최악의 경우로 나가리 되더라고 A사의 독촉 와중에 너무 비호감이 되어 버려 가기가 싫은 건 너무 배부른 소리일 까. 


거의 샌드위치 신세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지 어언 3주차에 접어든다.


오늘은 A사에 입사키로 한 7/10에서 하루가 지난 7/11. 


마음 졸이고 기도하고 초조하게 보내던 나에게 오늘 아침 드디어 B사로부터 연봉이 조정된 2차 구두 오퍼를 받았다. 


근데 구두 오퍼라는 게 법적 구속력이 있는 건 아니기에, 난 인사 담당자에게 내가 다른 쪽 오퍼를 오늘 밤 거절할 것인데, 혹시 오퍼 내용이 들어간 이메일이라도 줄 수 있느냐고 요청을 했음에도. 그가 그리하겠다고 수락을 했음에도.


현재 시각 저녁 6시48분. 여전히 이메일이 없다. 


이 미국계 B사는 아시아 헤드쿼터가 없어서 호주에 있는 인사담당자가 일을 처리하고 있었고, 내 미래 보스는 런던에, 그의 보스는 싱가폴에 있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뭐 하나 결정하는 데에도 (심지어 오퍼 써머리 이메일 보내는 간단한 것 마저) 시차를 고려해야 하므로 시간이 계속 지연이 되는 듯 했다. 


하지만, 도의 상 더이상은 A사에 희망고문을 해선 안될 것 같고, 비록 B사와 고용계약서 사인을 하기 전이긴 하지만, 나는 아마 오늘 밤에 A사에 정중한 거절 이메일을 보내야 할 것 같다. 


정말, 그렇게 간절히 바라고 노오력 할 때는 오퍼 하나도 안 오더니, 인생이란 게 참 우습다.


취업에 관심이 없고 좀 쉬려고 내려놓고 있을 때, 이리 예상외로 오퍼를 3개나 받다니.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확실한 것은 없다. 


하루 속히 B사와의 입사 프로세스가 차질 없이 진행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발 이 오퍼 지옥에서 하루 빨리 벗어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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