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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벼리 Jul 06. 2023

센 척, 쿨한 척

갑상선암 수술을 앞두고...


 10년전 이 무렵 나는 일과 두 아이의 육아를 병행하며 한참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남편의 직장 관계로 부모님과 떨어져 지방으로 이사를 오게 됐고, 연고가 없는 지역이라 바쁜 남편을 대신 해 독박육아를 하게 될 때가 많았다. 그 시절 나는 더는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에너지가 완전히 방전되어 저절로 쓰러져 잠자리에 들곤 했다. 그럼에도 누구나 이 정도는 다 힘들다고 생각했다. 힘든 중에도 아이들이 크는 모습에 위안을 삼았고, 묵묵히 일상을 견디며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 그 해, 나는 건강검진에서 '암'을 진단받게 되었다.


 '암'이라는 그 무서운 단어 앞에서 나는 그냥 눈물이 났다. 근무 중이었는데 전화로 결과를 통보받고나서 눈물을 주체하기 힘들어 화장실로 달려가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막연히 무섭고 두렵고 억울하고 분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나의 암은 성장 속도가 느린 탓에 거북이 암이라 불리는 갑상선암이었다. 크기도 0.6센치에 불과했지만, 병원에서는 당장 수술을 권했다. 처음에는 암이 무섭기만 해 무조건 수술부터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날짜를 잡았다. 그러다 차츰 마음이 안정을 찾으면서 관련 자료를 찾고 또 찾아봤다. 조기검진과 수술로 갑상선 암환자가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이라는 통계자료와 미국에서는 크기가 1센치 미만이면 조직검사조차 권하지 않는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게다가 갑상선 전체를 절제하는 경우 평생 호르몬약을 먹어야 하고, 성대와 가까운 위치여서 목소리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데다, 수술로 인해 목에 흉터가 생길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수술을 망설이게 되었다. '그래, 아직은 크기가 작으니 일단은 수술하지 말고 지켜보자.' 그렇게 나는 갑상선 암세포를 내 몸에 끌어안은 채 10년을 함께 지내게 되었다. 


 '암에 대한 생각은 최대한 하지 말고, 내가 암환자라는 사실도 잊은 채 즐겁게 생활하려고 노력하다보면 어느 순간 암세포가 사라지는 기적이 찾아올지도 몰라.' 처음엔 쉽지 않았지만, 1년, 2년, 3년..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정말 나는 '어쩌면 이대로 수술 없이 이렇게 평생을 지내다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10년째가 되는 올해, 나의 암은 1센치에 근접하는 크기까지 자랐고, 한쪽에만 있던 암세포는 다른 한쪽에도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며 퍼져있었다. 더는 수술을 늦출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나는 수술대에 오를 결심을 했고, 수술날짜를 코앞에 둔 상태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수술 소식을 전했을 때 누군가는 "갑상선암은 간단한 수술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꺼에요.", "워낙 흔한 수술이라 어느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도 큰 문제 없을 테니 염려 마세요."라고 말하며 위로를 건넸다. 나 역시 나의 수술소식을 전하며 최대한 괜찮은 척, 쿨한 척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옆 부서 부장님께 수술을 앞두고 마지막 인사를 전하러 들렀을 때, 그 부서의 직원분이 다가와 인사를 전하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세상에 간단한 수술이 어딨어요? 게다가 내 몸인데... 내 몸은 소중한데 어떤 수술이든 그게 어떻게 간단해요?"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 간단한 수술이 뭐라고 두려움에 10년을 아무렇지 않은 척, 쿨한 척 그렇게 보내왔으면서 막상 수술을 앞두고는 그저 간단한 수술이라고 나에게 주문을 외우고 있었구나.' '그렇지만 내 마음 속 진실은 그렇지 않았구나.'


 나 또한 그렇다. 타인의 병은 그게 설령 암보다 무서운 병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는 반면, 나의 병은 오롯이 내 자신이 견뎌내야 하기에 간단한 병이라도 그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게 인지상정이겠지. 사실 마흔이 넘어가며 잘못된 자세가 누적된 탓인지 목, 어깨, 허리통증은 당연한 게 되어버렸고, 직장일로 컴퓨터 화면을 오래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눈이 뻑뻑해지며 안구통증이 찾아온다. 또 아침에 일어날 때면 잠자느라 움직이지 않은 탓에 굳어버린 손가락 관절을 이리저리 풀어주며 아침을 맞곤 한다. '아, 내 몸 어쩌지?'  이렇게 나를 찾아온 통증들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며 지내다보니, 어느새 나는 암수술조차 간단한 수술로 치부하며 센척, 쿨한 척 한 게 아닐까. 아니 어쩌면 암에 지고싶지 않은 나의 알량한 자존심일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불현듯 수술대에 오른 나를 생각하면 두려운 마음에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수술 끝나고 마취가 풀리면 너무 아프지는 않을까. 혹여 수술자국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눈에 띄고 흉터가 오래 가는 건 아닐까.  내 목소리가 지금과 달라져서 약간 쉰소리가 나면 어쩌나. 호르몬 분비가 되지 않으니 약을 먹긴 해야할텐데, 지금보다 더 쉬이 피곤해지진 않을까. 그럼 무엇이든 해보려는 의욕이 꺾이지는 않으려나.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수술이니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또 수술 후 하루 아침에 아무일 없었던 듯 평소와 같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한동안은 몸이 많이 힘들고 심적으로 좌절하는 날이 찾아올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안다. 지금껏 어려운 순간들을 잘 견뎌왔듯이, 나는 또 해낼 것이라는 것을. 나도 모르는 내공이 켜켜이 쌓여 힘든 순간을 거뜬히 이겨내는 힘이 내 안에 있을 것임을 믿는다. 그러니 어쩌면 나는 센 척, 쿨한 척 한 게 아니라, 정말 세고 쿨한 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것이다.


 수술을 통해 몸과 마음이 새롭게 리셋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이제 더이상 힘듬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힘들다면 잠시 쉬어가자. 작은 통증도 소홀히 하지 말고 내 몸을 아이처럼 돌보자.'암'은 아마도 건강의 소중함을 자각하게 되는 진정한 '앎'을 위한 소중한 손님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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