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이 있어도 본 적이 없으니...
수술실에 들어가는 날, 남편은 아침 일찍 오겠다고 했지만 학교에 등교하는 두 아이들을 챙기느라 간발의 차이로 나를 놓쳤다고 했다. 대기실로 이동해서 휠체어에 앉아있는 짧은 시간, 내 옆에는 나 말고도 두 명의 환자가 더 있었다. 다들 긴장한 탓인지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 또한 그들과 똑같이 그저 침묵한 채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마주잡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있었다. 이 순간 나는 이름도 성별도 나이도 그 어떤 나를 수식하는 단어가 필요없는, 그저 수술을 기다리고 수술이 아무일 없이 잘 되기만을 바라는 몸덩어리에 불과한 존재였다.
수술실에 들어서고 드라마에서만 보던 수술대 위로 내 몸이 뉘워졌다. 이런저런 처치들로 간호사들의 손놀림이 바쁜 가운데에서 수술실 천장을 바라보며 다시 눈을 떠 이 천장을 바라볼 수 있기를 마음 속으로 빌었다. 마취주사액이 들어가면 뻐근하다는 설명을 분명 들었는데, 그 이후론 기억이 나지 않는다. 뻐근한 느낌을 느낄 새도 없이 마취가 된 상태로 두어 시간이 흘렀고, 어느새 수술이 끝나 있었다.
무사히 깨어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참기 힘든 통증이 밀려왔다. "진통제 좀 놔주세요." '아! 다행이다. 내 목에서 소리가 난다.' 목이 부어서인지 소리 내기가 쉽진 않았지만 그래도 작게나마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걸 확인하니 그제서야 안심이 되었다. 마취가 덜 깬 상태였는지 병실로 이동해서도 계속 몽롱한 상태로 자꾸만 잠이 쏟아졌다. 늦게 도착해 미안함이 가득한 남편의 얼굴을 확인하고나니 모든게 다 제자리를 찾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수술은 끝났고 내 목소리도 여전하고, 나의 곁을 지켜줄 남편도 옆에 있어.'
첫 날은 금식을 해야 했다. 수액을 맞는데도 목이 타들어갈 듯한 갈증으로, 입안에 있는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침이 넘어갈 때마다 목이 아픈데도 이렇게 해야만 살 것 같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아침에는 죽을, 점심에는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이렇게 빨리 정상적으로 식사를 하게 될 줄이야...
처음 물을 마실 수 있게 된 그날 새벽에 맛본 꿀 맛 같던 물 맛, 그리고 처음 제대로 된 음식이라 할 수 있는 흰 쌀죽의 달달함이라니... 이 세상 그 어떤 음식이 이보다 더 맛있을까.
수술을 하고난 후 내 몸을 바라보며 생명의 신비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며칠만에 금새 다시 예전의 컨디션을 되찾아가는 나를 보면서 내 안의 무엇이 나를 이렇게 살게 하는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혈압이 높아진 걸로 보아 내 심장은 평소보다 더 열심히 펌프질을 하고 있고, 체온이 1도 이상 상승한 걸로 보아 내 몸안 열을 관장하는 시스템이 부지런히 일하며 나쁜 균의 침입을 막으려 무진 애를 쓰고 있겠구나. 내 안 뿐만 아니라 나를 둘러싼 햇볕, 바람, 물, 공기... 이 모든 게 나를 살리려고 애쓰고 있는건 아닐까. 온 우주가 나를 살리려고 으쌰으쌰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내 몸에는 이제 갑상선이 없지만 내가 언제 갑상선을 본 적이 있었나. 그저 내 목 중간쯤에 갑상선이 있다는 걸, 그것도 갑상선에 이상결절이 생긴 후에야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니 원래부터 갑상선이 없었던 셈 치기 하는 걸로... 물론 갑상선호르몬이 분비되지 않기에 매일 호르몬약을 챙겨먹어야 하지만, 매일 삼시세끼 밥을 챙겨 먹듯, 하루 한 번 약 하나 더 얹는 것 뿐이니 이게 무슨 대수랴.
수술 직후라 아직은 밴드 뒤로 꽁꽁 숨어있는 나의 흉터 또한 얼굴에 생긴 기미처럼 신경 쓰이면 머플러로 가리면 그뿐이다. 그렇게 1개월, 2개월, 시간이 지나다보면 훙터 또한 세월의 흔적으로 서서히 옅어지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쯤에는 내가 언제 갑상선수술을 했었나 싶게 기억조차 희미해져있겠지.
내일이면 퇴원이다. 슬리퍼를 벗고, 다시금 운동화를 신고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기분으로 새 삶을 향해 새 마음으로 걸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