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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다이앤 Dec 04. 2023

단축근무, 좋을 줄만 알았는데

다 가질 수는 없나 봅니다


첫 출근의 마음가짐


출근길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해요. 저는 실은 출근길을 꽤 좋아하는 편입니다. 이른 시간대의 출근은 나름의 재미가 있지요. 아무도 없는 버스에 올라타 조조할인 요금을 내는 것, 차츰 채워지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 흐릿한 새벽이 밝아지며 도시가 깨어나는 모습 바라보는 것. 이 모든 것들을 저는 좀 좋아했어요.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는, 또 다른 의미로 출근길이 기대가 되었습니다. 육아 중에는 입을 일 없었던 흰 블라우스를 장만하고, 쿠션이며 립 같은 화장품도 몇 개 사고, 옷장에 보관만 해두었던 가방도 다시 꺼냈습니다. 스스로를 재정비하며 조금 설레었지요.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던 회사의 친한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고요. 기대감과 감사한 마음으로, 출근 준비를 했습니다.


첫 출근은 제법 설레었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었어요. 비록 15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의 근무였지만, 잘 해내고 싶었습니다. 돌아올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만큼 더 힘내서 한 사람으로서의 몫을 하고 싶었어요. 팀장님과 미리 의논해서 맡게 될 업무를 정하고, 몇몇 팀원들과도 미리 연락하며 분위기 파악을 했습니다. 걱정도 조금 되었지만,  첫째를 낳고 복직했을 때도 생각보다 빨리 적응했던 것을 떠올리며 '이번에도 그럴 수 있겠지' 하고 여겼습니다.



1인분은커녕, 0.5인분도 못 되는 사람



첫 한 달은 힘들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근무시간이 짧아서 힘들었어요. 하루 근무시간이 짧다 보니 업무에 집중을 할라치면 금세 점심시간이거나 퇴근시간이 다가왔지요. 거기다 새롭게 맡은 업무는 긴 호흡으로 집중해서 해내야 하는 일이었기에, 하루하루의 진도가 정말 느리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의욕은 충만했는데 성과는 없는 날들이 흘러갔습니다. 답답했지요.


그래도 책상자리 하나 차지하고 있으니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고 싶었는데, 앞길은 요원했습니다. 저는 있으나마나 한 사람이었어요. 오히려 저의 존재가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혼자만 근무시간이 달라, 매번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출근하고 또 일찍 퇴근했으니까요. 어느 순간부터는 사무실에 들고 날 때마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게 되었습니다.


 외에도 사소한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회의시간을 잡기 어렵다는 점, 특정 요일만 출근하다 보니 팀 업무나 행사에서 제외되는 일이 생긴다는 점, 타 팀과의 협조하는 일에 있어서 대처가 늦어진다는 점 등. 사실 아주 소소한 일들이지요. 주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면 '괜찮아, 뭐 어때' 하고 쉽게 넘기고 잊어버릴 수 있는 일이요.


러나 매 순간 다른 사람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던 로서는, 어쩔 수 없이 조금씩 작아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누구도 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저만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간간히 했습니다. '혼자 튀는 일은 다 골라하면서  돌아와서 일도 제대로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신세나 지고. 너 지금 여기 왜 있는 거니?'라고요.



작아진 나에게 적응하는 일



설레출근길이 갈수록 힘들어졌습니다. 좋아했던 새벽 풍경들도 아예 보이질 않았어요. 회사로 향하는 버스 안에 얌전히 앉아서 속으로는 격렬한 전투를 매일 치렀습니다. 스스로에게 날 선 말들을 많이 했어요.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느냐고, 이렇게밖에 못하느냐고. 이럴 거면 뭐 하러 다시 일을 하겠다고 한 거냐고, 스스로를 탓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부끄럽지만 스스로를 좀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기있었던 것 같아요. 퇴사하려다가 회사가 붙잡아서 돌아오게 되었잖아요. 회사가 나를 필요로 하는구나, 내가 좀 괜찮은 사람인가 보다. 이렇게 생각한 거죠. 그런데 일을 시작하고 보니까 그게 아니었습니다. 팀에 일 잘하는 동료며 후배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위기감이 몰려들었습니다. 


하고는 싶고, 시간은 없고. 눈치는 보이는데, 성과는 안 나고. 힘들었어요. 거의 반년 가까운 시간 헤맸습니다. 제법 괜찮았던 것 같았던 풀타임 근무시절의 저와, 지금의 보잘것없는 스스로를 자꾸 비교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느끼는 제 자신은 별로 변함이 없는 것 같은데, 왜 성과는 더딜까. 헷갈렸습니다.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 탓에 내가 정말 근무역량이 떨어진 건지, 아니면 근무시간이 너무 짧은 탓에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


풀타임의 사회에서 단축근무를 한다는 것은 때때로, 갑자기 거인국에 떨어진 소인(작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과 같았습니다. 내가 정말 작아진 건지, 아니면 주변이 너무 커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익숙하던 모든 것들이 낯설고 사용하기 불편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거기다가 거인국 사람들은 나를 소인이라는 특징으로만 판단했습니다. 내가 어떤 것에 관심이 있고 잘하는 지보다, 내가 '작은 인간'이라는 것이 훨씬 더 눈에 띄니까요.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어요. 괴로워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또 출근하고, 또 고민하고. 그렇게 6개월 정도가 지났습니다. 거인국에 떨어진 소인이 더 이상은 신기하지 않을 정도의 시간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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