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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다이앤 Nov 15. 2023

육아기 단축근무를 선택하다

퇴사 대신, 단축근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만 8세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의 양육을 위해 근로시간을 주 15시간~주 35시간까지 단축하여 사용할 수 있는 제도.

2024년부터는 만 12세  또는 초등학교 6학년 이하 자녀를 둔 경우 최대 36개월 사용 가능하며, 주 10시간 단축(주 30시간 근무)까지는 급여를 100% 지원할 예정이라고 함.



제가 어쩌다가 육아기 단축근무를 쓰게 되었는지 말씀드렸던가요...? 사실 제게는, 육아기 단축근무 제도를 알려주신 은인이 계십니다. 퇴직할지 복직할지 머리 아프게 고민하던 때에 저의 팀장님이신데요. 아무래도 아이들이 마음에 걸려서요, 하고 퇴사 의사를 밝힌 저를 지금의 이 자리로 이끌어 주셨어요. 만두지 말고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먼저 말씀해 주셨거든요. 그리고 육아기 단축근무를 써서 일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 주셨지요.



회사를 나가는 문 앞에서, 돌아오다


당시의 제가 퇴사 밖에 답이 없겠다, 생각한 큰 이유는 회사생활을 하면서 육아에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다행히 배우자도 저의 선택을 지지해 주었고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둔 후, 시간을 보다 유연하게 쓸 수 있는 다른 일을 시작해보려 했었습니다.


런데, 육아기 단축근무를 알게 된 후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퇴사로 인한 경력단절은 이후에 극복하기 매우 어려우니까요. 특히 저처럼 육아를 목적으로 퇴직한 경우라면, 특별한 자격증이나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는 한 재취업이 많이 어렵다고 듣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를 하겠다 결심한 건데, 선택을 돌이킬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니, 이게 쉽사리 뿌리쳐지지가 않더라고요. 퇴사로 인해 당장의 소득이 줄어드는 불안함도, 십 년 넘게 쌓아온 커리어의 단절에 대한 아쉬움도 컸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의 시간을 충분히 누리면서도 급여와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면, 굳이 퇴사를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죠. 어느 순간, 저는 돌아가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게 됩니다.




단축근무자로 복직하다



육아기 단축근무를 하기로 하고, 어떤 경우들이 있나 후기를 검색해 보았는데요. 생각보다 일반 직장에서는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으시더라고요. 단축근무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보통 하루 1시간이나 2시간 단축을 많이 선택하고요. 주된 이유는 소득이었습니다. 근무시간을 많이 단축하면 소득이 많이 줄어들거든요.  업무량 조절이 어려운 경우도 있었습니다. 근무시간도 줄고 그에 비례해서 소득도 줄었는데, 업무양이 같다면 그것만큼 곤란한 일도 없으니까요.


육아기 단축근무제도를 쓰시는 분들을 보면, 보통 공무원이나 선생님들이 많으시더라고요. 공무원은 반일근무/풀타임근무를 선택해서 근무시간에 맞는 직무로 배치를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선생님들이나 학교에서 일하는 분들은 '육아시간'이라고 해서 하루 2시간의 단축근무를 많이들 사용하신다고 해요.


저는 육아휴직 후 복직하면서 육아기 단축근무를 사용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월급의 많고 적음이나 업무량 조절이 이슈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육아에 필요한 시간 확보가 정말 중요했기 때문에, 제가 무리하지 않고 확보할 수 있는 시간만을 회사 일에 쓰고 싶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과감하게  15시간 만을 근무하기로 결정합니다. 육아기 근무시간 단축을 통해 쓸 수 있는 최소한의 근무시간이었지요. 


그렇게 복직한 , 주변에서 많은 반향이 있었습니다. 말씀드렸듯,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은 많이 쓰이는 제도가 아니었거든요. 관심을 많이 받았지요. 윗분들은 대부분 그게 뭔지를 물으셨습니다. 또래 직원 분들은 급여가 얼마나 줄어드는지물었고요. 드러내놓고 부정적인 반응은 보이는 분들은 거의 없었지만, 긍정의 응원도 많지는 않았습니다. 호기심의 반응이 제일 많았던 것 같아요.


회사 내에서 첫 케이스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궁금증에 최대한 당당하게, 그리고 성의껏 대답하려고 애썼습니다. 육아를 위해 근무시간을 줄이는 건 특혜가 아니고, 필요하다면 누구나 선택할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저에게는 정말로 필요한 제도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모두 앉아서 일하고 있는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게 되니,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조금씩 눈치가 보이고 움츠러들게 되더라고요. 남들과 다른 근무형태와 근무시간으로 일하고 있다는 말이 마치 변명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제가 뭔가를 잘못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여기 있어도 괜찮을까요?

- 나도 있는데요 뭐.



복직하고 일을 시작한 후 몇 달간은 전투적으로 점심약속을 채워 넣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어요. 내가 퇴사까지 생각했다는 걸 아는 사람들, 내 고민과 결정에 공감해 주는 사람들, 용기 있다고, 잘했다고 진심으로 말해주는 사람들이요.  사람들과 맛있는 걸 먹고, 향긋한 차를 마시고, 바람을 쐬며 걸었습니다. 그 짧은 점심시간이 정말 많은 위안이 되었어요.


아마 제 편을 만들고 싶어서 그렇게 사람들을 만났던 것 같아요. 주 15시간만 일하는 사람이라도 여기에 있어도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었어요. 처음 복직해서 생각이 참 많았거든요. 법에 명시된 제도를 사용한 거니 잘못한 건 없다는 생각과, 괜히 어중간하게 다니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폐 끼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들로요. 그때의 저에게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도, 그 확신을 밀고 나갈 용기도 좀 부족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회사를 다녀야만 했으니까요. 용기든 확신이든 밖에서라도 얻어서 채우자는 마음으로,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만난 회사 사람들 대부분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아빠들이었어요. 그중 어느 한 분과의 만남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사실 그리 친한 분은 아니었는데, 복직했으니 밥 한번 먹자고 먼저 말을 꺼내주셨거든요. 


같이 밥을 먹다가 제가, "저 돌아온 게 아직도 좀 어색하고, 여기 있어도 되나 괜한 눈치가 보여요." 이렇게 약한 소리를 좀 했어요. 그런데 그분이 툭, "저도 있는데요, 뭐." 하시는 거예요. 별거 아니긴 한데,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그 말씀을 하시니까 왠지 웃음이 나더라고요. 저는 제 고민이 엄청 대단하고 심각하고, 그래서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거든요. 근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구나, 동지가 있구나 싶었던 거죠. 긴장으로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실이 탁, 끊어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날의 식사자리 이후로도 한참 동안, 저는 육아기 단축근무를 부담감으로 안고 회사를 다녔습니다. 근무시간은 줄어들었지만 업무부담은 여전했어요. 육아를 잘해보려고 근무시간을 줄였으면서 아이들을 특별히 잘 챙기지도 못한 것 같았고요. 다 잘해내고 싶다는 욕심과 긴장으로 어깨 끝이 쭈욱 올라가있는 느낌이 들 때면, 그 날을 떠올리려고 했습니다. 괜찮아, 이거 별거 아니야. 다 지나갈거야. 버티다보면 시간이 흐르고, 결국은 다 괜찮아질거야, 하고요. 그러면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툭 내려앉아, 조금쯤 펴지는 것도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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