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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에게 May 27. 2022

[치열] 치열하지만 느긋하게

작사일기 5일 차


코드쿤스트, 이찬혁, 콜드, sogumm - 치열 (Cheers)

Lyrics by 이찬혁, Colde(콜드), sogumm


보릿자루 꿔다 놓은 듯

가만히 앉아있는 것은

토하기 전까지 일하는 것보다도

괴로운 거야

남기자 살아있는 동안의 흔적

우린 깨어있는 동안

말도 안 되는 걸 해야 하니까

잘 자고

잘 먹고

칭찬도 하고 서로

부둥켜도 안고

사랑하면서

Look how we cheer

깊은 바닷속으로

끝없이 들어가는 것처럼

Look how we 치열

하고 또 아름답게

완성되고 있어 우린



나의 첫 데모곡은 신인 여자 아이돌의 마라맛 댄스곡이었다. 곡이 실험적이기도 했거니와 굉장히 셌기 때문에 요령도 없이 있는 대로 기합을 넣어 썼던 기억이 있다. (꽤나 악몽 같던 시간이라 나는 아직도 그 노래를 편히 못 듣는다.) 비장했던 첫 제출에 이어 데모곡은 연이어 들어왔고, 온 시간을 쏟지 않으면 하늘이 간절함을 알아주지 않을 것만 같아 시간을 엄청 투자했다. 한 3시간이면 써질 것 같은 곡으로 3일을 끌면서. 그렇게 몇 달이 지나니 일상이 사라지고 몸이 무척 나빠졌다. 코로나로 인해 마침 회사에서 휴직 신청을 받았고, 정신 못 차린 나는 그것을 기회라 여겼다. 전업 작사가처럼 시간을 엄청 엄청 쏟으면 금방 되지 않을까? 그러나 치열해질수록 스트레스만 쌓였고, 입가에 미소가 사라졌다. 목이 빠져라 픽스 연락을 기다렸지만 당연히 오지 않았다. 이게 아닌가? 집착은 괴로움을 낳고 끝내. 작사가 재미없어졌다. 번아웃은 깜빡이도 켜지 않고 들이닥친다.


작사가들은 투잡을 많이 한다. 가사 채택은 경쟁률도 높고, 디스코그래피가 쌓인다고 안주할 수 있는 분야도 아니며 변수 또한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 생업을 위한 벌이 후 이 경쟁 속에 뛰어든다는 소린데.. 경험한 바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육신과 영혼이 지친 상태에서 랩으로 점철된 댄스곡을 들으며 웅장한 세계관 펼치기, 새벽이 다가오는데도 Verse1에 멈춰 있기 후 다시 출근하기.. 작사는 치열하지 않으면 이어나가기 힘든 외사랑이다.


그렇다면 얼마만큼 치열하게, 얼마의 시간을 쏟고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답은 아무도 모른다. 가사 제출에는 데드 라인이 있지만 작사가 지망생의 데드 라인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가사를 낸다고 누가 채점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수능 공부처럼 엉덩이 싸움으로 해결될 일도 아니다. 예술이라 하기엔 거창하나 창작의 고통이란 때로 하염없는 기다림을 수반하고, 하는 만큼 돌아오지도 않는다. 결국 작사를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은 '순간에 치열하되, 전체적으로는 느긋하게' 뿐이란 것을. 숱한 고뇌 끝에 깨달았다.


다가오는 6월, 다시 한번 아득한 작사의 세계로 풍덩 뛰어들어 본다. 파도를 타는 서퍼처럼 치열하고 팔자 좋은 베짱이처럼 느긋하길 바라며. Ch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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