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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에게 Oct 29. 2024

화려한 순간은 짧고

우리는 거의 보통의 삶을 살아간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프리랜서'라는 직업을 들으면 마냥 자유로우면서도 반짝거리고, 고리타분한 사회 관념에서 한 발쯤 빗겨가 있고 능력도 있는 베짱이로 느껴졌다. 지나고 보니 자유를 동경하는 범생이였던 나는 그 반짝거림 뒤에서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우연 혹은 필연으로 그 프리랜서가 되어있다. 긴 결심할 새도 없이 모퉁이를 돌았더니 그렇게 되어버렸다. 처음엔 호기롭게 휴학 신청을 때린 대학생처럼 목표와 꿈에 부풀었다. 이렇게 된 김에 그간 망설였던 모든 도전들을 해보아야지. 낙하산 없이도 뛰어내릴 포부로 붕 뜬 마음. 집에 가만히 있는 것이 어색해 온 집을 들쑤시며 청소를 했고 평일에 뛰쳐나가 별 영양가 없는 약속도 만들었다. 글도 써야지. 가만.. 영어 공부도 해야지! 하지만 조금만 있다가... 그렇게 눈을 깜빡거렸더니 1년이 쏜쌀같이 흘러갔다. 1년간 내 모습을 타임랩스로 돌리면 아마 침대에 웅크려 핸드폰을 보는 모습이 가장 많이 나올 것이다. 역시 프리랜서가 된다고 어제의 내가 갑자기 능동태가 될 리 없다. 시키는 일만 겨우 하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대단한 모험가가 될 리가. 연금 복권에 당첨되지 않는 한 생계가 저절로 해결될 리도 없다. 오히려 홀로여서 내야할 것들이 잔뜩 늘어났다. 그걸 벌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쉬지 않고 해야만 한다! 굶어 죽지 않으려면 들어오는 일들을 억지로라도 '잘' 해야하고, 부담감은 정신력의 소모로 이어진다. 누가 억지로 불러내지 않는 한 바깥에 나가지 않게 됐다. 프리랜서로서의 일은 보통 직장에서 하는 일보다 겉으로 보기에 노동 시간이 짧아 보이지만 놀라운 밀도를 가지고 있다. 내 이름을 붙인 일이고, 못하면 Die이기 때문이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돈을 번다는 것은 월급 노동자의 혜택 중 하나란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잔인하게도 프리랜서에게 가만히 있는 모든 시간은 유급 휴가나 다름없으므로.. 겉만 자유인인 나는 생각보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에 젬병이었다. 연비가 극도로 좋지 않은.. 굴렁쇠랄까.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에게 '하루 종일 아무 때나 이 일을 다 해놓으세요'라고 하면 결국 책상 앞에 앉는 시간은 한밤중이 될 거다. 아무리 좋던 것들도 일이 되면 하기 싫어지기 때문이지. 이 간단하고 뻔한 논리가 나를 빗겨갈 줄 알았지만.. 짬을 내 어떤 도전을 하고, 자기 계발에 매진하는 것이 겨울에 헬스장에 가는 것만큼이나 내키지 않을 줄이야.. 그렇게 일 or 침대 외에 다른 것을 제쳐두어도 금전이 쏟아지거나 놀랄 만한 경사가 자주 생기지도 않았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성사 자체가 요원하고 또 경쟁이 치열한 분야라 거절이 일상이다. 결론적으로 화려함의 순간은 정말이지 짧고, 나머지 순간들은 게으름, 도파민과 싸우는 시간들이다! 릴스를 기계적으로 넘기느라 하루를 꼴딱 보내도 누구 하나 잔소리할 사람 없다. 그냥 나만 주옥이 되는 것이다 :)


지난 1년간 자신에게 가장 많이 한 질문이 있다면, 과연 내가 프리랜서에 적합한 인간인가? 나는 회사 안의 인간이길 원하는가, 밖의 인간이길 원하는가? 따위다. 안타깝게도 아직도 답은 세모다. 프리랜서의 삶이 녹록치 않다는 것은 알지만 분명한 장점도 알게 됐다. 늦은 아침에 창문을 열어두고 하는 아침 요가, 아점과 함께하는 커피의 맛, 사람 별로 없는 공원에서의 산책, 가끔씩 꽂히는 목돈(이라 해봐야 얼마 안 되지만)의 짜릿함. 가장 어려우면서도 마음에 드는 점은 '내가 한 만큼 버는 것'이겠지. 그 부분에 억울함이 있던 입장으로서는 아주 끌리는 포인트이다. 그런데도 나를 프리랜서로 소개하는 것은 역시 낯설다. 삶의 대부분을 제도권 안에서만 살아왔고 남들과 비슷한 고민을 했고, 비슷한 길로 갔다. 다수의 의견을 따를 때의 안정감과 조금 나태해도 휘청이지 않는 삶의 단단함을 알고 있다. 내일의 내가 무엇을 할지 훤히 보이는 따분함의 장단점에 대해서도. 어떻게 된 것이 나이가 들수록 선택은 더욱 복잡해지기만 하는 걸까? 선택의 연속인 삶에서 보기에 정해진 삶은 또 나쁘지 않아보이고. 그렇다고 원 안에 들어가면 뻔히 숨이 막힐 것이다. 어쩌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함을 기다리는 동안 나를 안심시켜줄 믿음인 것 같다. 금전으로든, 열정으로든 나를 설득시킬 무언가. 빛이 들어올 때까지 침대에 있는 삶을 원하지는 않아. SNS에서 유행하는 꽃노래처럼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면 나는 불행해지는 인간이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에는 항상 빛과 어둠이 있고 병과 약이 있네. 그래서 다음 나의 처방전은 무엇일까? 어떤 선택도 잘못될 리는 없다. 오로지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만 있겠지. 그러니 부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나를 만날 수 있길 바라는.. 자유인 희망자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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