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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쌍미음 Mar 15. 2021

20년 전의 나에게, 또 20년 후의 나에게

진단명 '우울장애'라는 확진을 받고 상담치료와 약물치료를 꾸준히 받아온 후로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일상생활에서의 소소한 긍정적인 변화와 더불어 즐거운 TV 프로그램을 보고 싶다는 마음도 생기게 되었다.

재미거리, 즐거움 거리를 찾게 되었다.
우울의 잔잔한 상태를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가 아주 조금 생겼다.





효리네 민박 2




그렇게 선택한 새로운 자극 거리는 바로 '효리네 민박 2'였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유도부 소녀들.

사소한 것에도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고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소중한 마음과 감정을 있는 힘껏 표현해내는, 함께여서 더 좋은 그녀들만의 우정, 그 소녀들이 참 예쁘고 아름답고 찬란해 보였다.


'나는 왜 나의 10대와 20대를 저렇게 보내지 못했는가'

그녀들이 내뿜는 빛이 찬란할수록 나의 지난 그림자가 겹쳐 보였다.

내 인생에 있어 처음으로 '중고등학생 때로 돌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나의 꿈은 어서 중년이 되는 것 그리고 백발 할머니가 되는 것이었던 만큼, 나는 20대로 돌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 역시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여태껏 쌓아온 대학교 입학 및 졸업, 취준생 시절을 지나 일을 하고 결혼을 하고 임신 및 출산을 겪어서 지금까지 이뤄놓은 육아의 시간까지.

어떻게 쌓아 올려왔는데, 한 계단 한 계단씩 얼마나 어렵게 올라왔는데 이걸 다시 겪어야 한다니.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나의 20대는 확실한 것 하나 없이 막연하고 불안하기만 했던, 걱정과 고민으로 쌓아 올려진 기나긴 터널이었다.



이러한 내 삶에 또다시 '효리네 민박 2'를 통해 새로운 자극제가 생기게 되는데, 바로 이효리의 노래 '예쁘다'이다. 

이효리가 본인의 스무 살 시절을 떠올리며 쓴 곡이라고 해서 그냥 한번 들어만 볼 생각이었다.





이효리 BLACK





코로나가 휩쓴 명절 연휴여서 남편은 혼자 본가에 가있었고, 아이들은 일찍 잠든 밤이었다.

어느새 내 가장 좋은 헤드폰을 꺼내 들고 한 곡 반복 재생을 하고 있었다.


'예쁘다'를 반복해서 듣는 시간은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와 공존하는 순간이었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위로했고, 어렸던 내가 어른이 된 나에게 위로를 받았다.

어린 시절의 자신을 위로하는 일은 많은 눈물을 필요로 하지만 한번쯤은 꼭 다독여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백발할머니가 되는 것만이 유일한 꿈이었던 내 인생 처음으로, 나의 지난 20대로 돌아가 보고 싶어 졌다.

스무 살 시절의 나에게로 가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잘 해낼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앞날의 불투명함에 미리 기겁해서 현재를 모두 놓치고 있는 스무 살의 나를, 곧 마흔을 앞둔 내가 다가가서 어깨를 잡아주고, 슬퍼하지 말라고, 예쁘다고, 꼭 안아주고 싶었다.


미래의 내가 스무 살 시절의 나를 떠올릴 때 너무 슬퍼하지 않도록, 안쓰러워하지 않도록, 나의 20대를 보다 즐겁고 반짝거리게 다시 살아보고 싶어 졌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지금을 살아내는 것뿐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충실히 현재를 살아야 한다.

또다시 20년이 흐른 후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되돌아봤을 때는 -안쓰럽지도, 불안하지도, 위태롭지도 않은 지금 상태 그대로도 예쁜- 마흔 살 전후의 내가 활짝 웃는 얼굴로 미래의 나를 반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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