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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쌍미음 Mar 04. 2021

중년이 되는 것만이 유일한 꿈이었던 10대 시절

그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마냥 부러워만 해서 죄송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는 언제나 빨리 중년이 되고 싶었다.

다가오는 고3이 두려웠고 이후로 벌어지게 될 수능의 결과, 취업, 연애, 결혼이 모두 두려웠다.


반면 이러한 내 사정과는 달리 -내가 늘 지켜보던 중년 여성인- 엄마의 삶은 매우 안정된 것처럼 보였다.

(엄마의 현실과 속사정은 달랐겠지만 어디까지나 고등학생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는 그랬다.)


취업과 연애 및 결혼은 물론이거니와 출산과 육아까지 모두 진작에 해치워서 이제는 곁에 남편과 장성한 아들 딸이 있고 자차는 물론 자가도 소유하고 있는, 안정되고 모든 것을 이룬 완벽하게 평온 그 자체인 삶!




앞으로의 모든 것이 불안하기만 하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위태로운 외줄 타기를 하고 있는 나에 비해 엄마는 이미 모든 것을 다 이루고 누리고 계셨다.

(물론 어디까지나 엄마의 현실은 모른 채 바라본 고등학생의 시선에서.)


얼른 중년의 나이가 되고 싶었다. 

20대와 30대는 모두 건너뛰고만 싶었다. 

빨리 마흔이 되고만 싶었다.

건너뛰기가 안 된다면 '빠르게 감기'라도 어떻게 안 될까? 

매일매일 보노보노 주제곡처럼 외치고만 싶었다.

"지름길로 가고파!!!"




그렇게도 원하던 마흔이 그리 머지않은 나이가 된 이후로는 서둘러 백발 할머니가 되고만 싶었다.

이제 40대는 중년의 나이라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나의 엄마가 엄마 역할을 하며 살던 시대와 내가 엄마 역할을 하며 살고 있는 지금은 중년이라는 개념 자체도 달라졌다.

중년이고 뭐고, 어서 빨리 백발 할머니가 되어 흔들의자에 앉아서 뜨개질을 하며, 따뜻한 차를 마시며, 좋아하는 노래를 실컷 들으며 그저 유유자적 편안하고 평온하게 지내고만 싶었다.




그러던 중 받게 된 우울장애 확진, 이 즈음에는 감정의 '무' 상태에 좋고 싫음, 감동이나 환희가 더해지는 것조차 싫어서 

그렇게 좋아하는 노래를 듣기도, 어쩌다 보던 드라마나 영화마저도, 하루에 한 번씩 챙겨보던 뉴스까지 모두 다 끊고 지냈다.


우울함이라는 잔잔한 호수에 자극이라는 돌멩이를 던져서 감정의 요동이라는 파형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귀찮았다. 

두려웠다.


예전에는 어떻게 그 많은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며 수많은 자극들에 반응하며 버티고 살아왔는지가 신기했다.

무감정 및 무감각인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리고 마이너스 상태 그대로의 직선을 쭉 유지하고 싶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건데,

'재밌거나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안 좋은 기분을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마저도 없는, 극심히 우울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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