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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쌍미음 Mar 26. 2021

누가 나를 살게 하였는가.

우울의 우물을 파려는 나의 삽을 잠시 쉬게 한 친구.

우울감으로 인해 자존감마저도 낮았기에 교우관계도 좋지 못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함께 있을 때 더 즐겁고 서로가 서로 덕분에 더욱 빛을 발하게 되는 친구는 따로 있었는데 그때는 왜인지 나를 갉아먹는 친구와 긴밀하게 지내는데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았다. 

몇 년 동안 단짝으로 지내며 등하교를 함께 하고 꽤 오래도록 함께 지냈는데,  안 그래도 바닥난 내 자존감을 그마저도 구멍이 나도록 둘이 함께 갉아내는 행위였다.




어른이 된 후로 서서히 연락이 뜸해지고 멀어지게 되었다. 

멀어지고 나서 돌아보니 가까이 붙어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그 관계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일방적이고 배려를 받기만을 원했던, 끝없이 이기적이었던 그 친구. 

딱 한 번만이라도 그 친구에게 왜 그때 나를 그렇게 함부로 대하였느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다 질문의 방향이 나에게로 바뀌었다. 

왜 그때 그 친구에게 화를 제대로 한번 내보지 못하였느냐고.




그렇게 얻어진 답은 '나는 자존감이 낮았다. 그리고 그 친구는 나에게 열등감이 있었다.'이다. 

나를 괴롭혀서 본인이 우위에 서있어야 마음이 편해지는 친구였다. 

자존감이 낮은 나는 '원하는 만큼 나를 갉아먹으렴- 괴로운 건 내 몫이니' 하고 그 옆에 찰싹 붙어있었다. 

이렇게나 멀리 와서 되돌아보니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 친구를 찾아 따져 물을 필요도, 나 자신을 자책할 필요도 없어졌다. 

어린 시절의 그 친구를 이해하고 용서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옆에서 힘겨워했던 나의 지난 학창 시절에 사과했다.




반면, 나를 우울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손길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더 이상 뇌호한 우울의 우물을 파지 않도록 하는 손길도 있었다. 

조금 더 일찍 알아차렸다면 그 시절에도 내가 진작 알아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친구들이 몇몇 있다. 

지금도 가끔 꿈에 나타나서 나를 "내가 너를 얼마나 찾아다녔는데! 이제야 드디어 만났구나!" 하며 반가움에 팔짝팔짝 뛰게 만든다. 

깨고 나면 매우 아쉽고 허탈하지만 꿈에서나마 만날 수 있어 정말 반가운 친구들. 

그때 내가 그 손을 더 꽉 잡지 못 해서 아쉽고 허망하다.




그 와중에 지금도 꽉 잡고 있는 손이 있다. 

전화를 할 때면 언제든 밝은 목소리로 반겨주고 그저 "왜~ 무슨 일이야~ 에구, 에고, 언제든 전화해~"라는 말로 내가 그 시기를 버티고 살게 만든 친구. 

세월이 흘러 아이를 낳아 키우며 내 존재감이 희미해져 갈 때마저도 먼저 안부를 물어주고 내 존재를 챙겨주는 고마운 친구.  

아! 내가 진작에 너랑 더 적극적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어야 했는데!




하루는 상담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모든 이야기를 털어놨다.


"나 사실 지금 우울증 치료받고 있어. 별건 아니고, 옛날부터 있었던 그 거 있잖아~ 요즘 좀 심해진 것 같아서 병원에서 상담도 받고 약도 먹고 있어.

근데 내가 제일 우울했을 때 옛날에 그거 어떻게 다 받아줬어? 

유일하게 받아주고 알아주고 도와준 친구라서 정말 고마워. 

너 덕분에 내가 지금까지 마음 든든하게 살아. 

옛날에, 중1 때, 그때 너랑 더 많은 시간을 내가 더 적극적으로 보냈어야 했는데. 

우리가 오래 알고 지내긴 했어도 난 네가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도 모르겠고..."




나를 살게 한 친구.

그 친구와 통화를 하는 순간만큼은 우울의 우물을 파는 삽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고마움을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잘 살아야겠다.  

적어도 자존감을 갉아먹거나 우울의 구렁텅이로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를 갉아먹음으로써 본인의 만족을 채우려는 사람은 지금 당장 멀리해야 한다. 

함께일 때 서로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는 사람과  보내기에도 아까운 나의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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