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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제이 Aug 09. 2021

'애인사건' 의 전말

한국인이지만 한국어가 어렵습니다

 저번 남산 여정 때는 백신 덕분에 몇 년 만에 남산타워에 올랐다. 예방접종 한 사람은 입장권이 1+1이라길래 주저 없이 질병관리청 앱을 다운받았다. 싸게 싸게 받아 든 표에 적힌 <감동의 로맨틱 남산데이트>가 너무 촌스러워서 웃음이 낫다.


 '데이트'하면 항상 되새기는 에피소드가 있다. 바로 '애인사건'이라 부르는 일화로, 20대 중반 즈음이었다.

 친구들과 선배들, 선생님 두 어 분이 모이는 점심식사 자리였다. 주말이었고, 선생님 한 분은 아내분과 어린이대공원인가 동물원인가 갔다가 오신댔나 어쨌나 해서 조금 늦으실 예정이었다. 딱히 어려운 사람들도 아니라 편하게 식사를 하던 와중에 애아빠 선생님께서 뒤늦게 착석하셨다. 나는 이토록 날씨 좋은 주말에, 그것도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던 중에 시간을 내서 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데이트는 어떻게 잘하고 오셨냐고 물었고, 선생님은 정색하며 뭐? 데이트? 무슨 데이트? 하고 되물었다. 나는 갸우뚱하며 오전에 가족들이랑 동물원 다녀오신다고 하지 않으셨냐고 했더니 그제야 알았다는 표정으로 아 애들이 끼면 그건 데이트가 아니지,라고 통쾌하게 웃었다. 거기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그렇군요! 하면서 한 마디 더 해버리는 바람에 그 선생님과는 영영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앗 그렇겠네요 애인이랑 둘이만 가야 데이트겠네요, 했던 것이다.

 아직도 선생님의 안경 너머 눈빛과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잊히지 않는다. 선생님은 다시 한번 얘가 지금 뭐라는 거니, 하는 표정으로 나는 애인 없는데? 라고 하셨고, 나 역시 지지 않고 엥? 하는 표정으로 방금 애들 빼고 가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로 되받아쳤다.

 이쯤 되면 제삼자의 눈에는 상황이 파악이 되겠지만 물음표에 물음표를 주고받던 당사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서로의 동공 지진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끽해봐야 10초 남짓 될까 말까 한 짧은 시간이 마치 10분처럼 느껴졌다. 그것도 습식 사우나에서의 10분.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눈치챈 뒤에도 나는 끝까지 물음표를 놓지 않았다. 아내는 애인이 아니에요? 그럼 연애할 때는 데이트고, 결혼 한 다음에는 데이트 안 해요? 선생님과 선배님들은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너나 할 것 없이 입을 모아 말했다. 결혼 한 뒤에는 데이트가 아니라 의무지, 의무.

 사실 그 당시 또 다른 어떤 선생님께 '애인'이 있었고, 나처럼 '어린' 몇몇 빼고는 다들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유부남들이  '애인'이라는 말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절대 아니야, 하는 어필이었는데, 그걸 몰라줘도 너무 몰라줬네 내가.

  애인, 즉 '사랑하는 사람'은 따로 있고, 결혼 한 배우자는 '의무의 대상'에 불과하다는 그들만의 농담에 나는 밥맛이 뚝 떨어졌다. 다행히 겨우 농담 갖고 뭘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냐는 핀잔까지는 가지 않았다. 다들 '선생님'들이시다 보니 그 정도로 못 배운 사람들은 아니었다.

 내가 유부 신분이 된 이제야 돌이켜보면, 그들은 그저 자신의 사랑을 인정하기 부끄러웠을 뿐이다. 게다가 사랑의 모습은 각양각색이어서, 분명 의무감과 책임감, 보호본능 같은 요소들도 분명 섞여 있다. 어른답고, 남자답고,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걸맞다고 여겨지는 대목만 드러내려면 역시 '유부남 드립'이 제일 쉽다.

 게다가 불행한 결혼생활을 빌미로 몇 년째 바람피우고 다니시는 분이 한창 구설수에 오르던 와중이었으니, 우리 부부는 행복하다며 자랑스레 떠벌리고 다니기에도 잘난 척 같아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아무튼 그들은 새파랗게 어린애가 갑자기 당연히 배우자 외의 애인이 있다는 전제를 깔고 여러 사람 앞에서 폭탄을 터트렸다는 생각에 당황했고, 뒤늦게 내가 '애인'을 '배우자'와 동의어로 썼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유부남 드립으로 어떻게든 무마를 해 냈으나, 사실 딱히 무마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바람 선생님은 계속 바람을 폈고 사람들은 계속 가십을 수군댔기 때문이다. 그때 그 의도하지 않았던 폭탄 발언 이후 그들은 나만 보면 곧 '유부남의 애인'이 연상되었으므로, 이내 나를 치부를 들추고 다니는 인간 대하듯(내가 뭘 알고 들춘 것도 아닌데) 했다.

 그날 이후, 여자 친구, 남자 친구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진중한 용어라 생각했던 '애인'이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게 되었다.

애인 [명사] 서로 애정을 나누며 마음속 깊이 사랑하는 사람. 또는 몹시 그리며 사랑하는 사람.
연인 [명사] 서로 연애하는 관계에 있는 두 사람. 또는 몹시 그리며 사랑하는 사람.
정인 [명사] 남몰래 정을 통하는 남녀 사이에서 서로를 이르는 말.

 베이징에서 중국어를 배우면서야 나는 다시금 마음의 평화를 되찾을 수 있었다. 중국어에서 아이런(爱人), 즉 애인은 배우자를 의미한다. 다른 의미는 없다. 결혼이라는 법률적인 통과의례 없이 연애만 하는 사이에서는 '아이런'을 쓰지 않는다. 사실혼 관계라면 물론 서로를 '아이런'으로 칭할 수도 있다.

 불륜관계에 있는 사람은 칭런(情人), 정인으로 쓴다. 사랑과 정은 다르다. 책임과 의무가 뒤따르지 않는 관계는 사랑 아닌 그저 감정에 불과하다는 정의를 땅땅땅 내려주는 것 같아 아주 만족스러웠다.

 한편 리엔런(恋人), '연인'이라는 표현은 일상적인 현대 중국어 회화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문어체 표현 정도 된다. 글 좀 읽는 지식인처럼 보이고 싶은데 심지어 상대가 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맨날 볼 수는 없는 상태라면, 약간 센치한 표정과 함께 '리엔런'으로 칭해도 해도 좋다. 시공간적 거리 모두에 적용 가능하다.

반려 [명사] 생각이나 행동을 함께 하는 짝이나 동무.

 더 마음에 들었던 용어는 바로 반뤼(伴侣)다. 짝 반(伴)에 짝 려(侶) 자를 쓴, 진짜 내 반쪽이라는 의미의 반려. 리엔런보다도 훨씬 흔하게 쓰이면서 공식적이고도 우아한 표현이다 보니 연령대가 낮은 사람들은 잘 쓰지 않는 편이다. 어린 중국인들의 언어문화에서는 점점 우리말의 '배우자'처럼 딱딱하고 지나치게 진지한 느낌의 단어가 되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꽤 쓸 만하다.


 절반이고 또 절반이면 온전한 하나인 셈일까.

한자 공책에 획수를 연습하면서 우리 집 반려를 떠올렸다. 반려식물, 반려동물은 흔히 쓰는 표현인데 정작 사람한테는 잘 안 쓰게 된 건 역시 또 자존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반쪽으로 인정하기 낯간지럽다고.


 더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은 자신의 찍을 지칭하는 용어에 성별이 꼭 반영된다. 우리말의 남편이나 아내, 집사람, 바깥양반처럼 전통적인 성별 개념이 반영된 어휘가 더 익숙하게 쓰인다. 하지만 그 보다 살짝 아래로 내려온 베이비부머 이하 세대부터는 '현대화'의 바람을 거쳐 보다 중성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경향을 보인다. 애인이나 반려 같은 어휘가 대표적이다.

 중성적 용어를 선호한다고 해도 LGBTQ는 여전히 금기의 대상이다. 세상에는 여성과 남성이 있고 그 둘을 '사람'으로 인정한다는 편에 가깝다. 외국인들이 내 애인이라던가, 내 파트너라고 소개하면 듣는 중국인은 그 상대가 반드시 결혼을 조건으로 한 이성(異性)이라고 전제하기 때문에 오히려 오해가 발생하고는 한다.

 그럼에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불러도 되고, 반쪽을 반쪽이라 당당하게 지칭할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나는 중국어가 한결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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