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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제이 Dec 08. 2020

중국은 모르는 중국

하얼빈에서 깨달은 중국 언론통제의 심각성

 슬슬 겨울 냄새가 나는 요즘, 12월인데도 그다지 춥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다들 패딩에 두꺼운 점퍼에 종종 롱패딩 입은 사람까지 보이는데, 허리까지 오는 짧은 재킷으로도 그럭저럭 버티고 있는 나라니.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베이징살이 겨우 몇 년 만에 무적이 되어 돌아온 느낌이다.


 바닥난방이 되지 않는 공간에서 처음 살아 본 것도 아닌데, 베이징의 겨울은 뭐 그리 혹독했던가. 하얼빈보다도 베이징이 매섭다 느낀 건 아마 평지에 휘몰아치는 칼바람 탓인 듯하다. 영하 30, 40도에 육박하는 하얼빈이었지만, 바람이 불지 않으니 걱정했던 만큼 춥지는 않았다.

하얼빈? 좋겠네! 추우니까 옷 잘 챙겨가~ 내복을 세 겹은 입어야 해! 두툼한 솜바지도 있어야 할걸?

 하얼빈에 다녀온 사람도, 아직 안 가 본 사람도, 모두 옷 걱정을 엄청 해줬다. 한국 사람들은 겨울에도 멋 내느라 옷을 얇게 입는다며 하얼빈에서는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어찌나 신신당부를 하던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에 한해서는 적어도 그런 걱정은 불필요했다. 베이징에서 맞이한 모든 겨울마다 스키장에서나 볼 법 한 아이템들로 무장하고 다녔으니 말이다.

중국서 사는 내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눈곱만큼도 고민하지 않았다. 추위에서 살아남는 게 더 급했다.

 하얼빈에 도착하고 보니, 이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건 여벌의 내복이 아닌 최대한의 밀폐가 가능한 고품질 마스크였다. 분명히, 그 어떤 중국인도, 하얼빈 공기가 나쁘다는 경고는 하지 않았더랬다. 내가 천식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조차도 우마이(雾霾. 초미세먼지를 뜻하는 중국어. 스모그를 통칭하기도 함) 조심하라는 얘기가 없었다. 


 그들도 몰랐기 때문이다.


하얼빈 공기가 너무 나빠서 엄청 고생했어.
-그래? 베이징만큼 나빠?
베이징보다 몇 배는 나쁜걸.
-흠, 하얼빈이 성도 기는 하지만 베이징만큼 대도시는 아닌데, 정말 그렇게 나빠?
응, 정말 나빠서 눈이 아팠어. 인터넷으로 지도를 보니까 주변에 공장이 많았어. 
-거기 공장이 많다고?


 하얼빈 여행 소식을 묻던 중국인 지인들은 백이면 백, 하얼빈 공기가 얼마나 나쁜지 모르고 있었다. 중소도시인 데다가 추운 곳이니 오히려 공기가 좋으리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베이징에서는 추운 날은 곧 공기가 좋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시베리아에서 몰아치는 칼바람이 도시를 할퀴고 지나가면서 온갖 오염물질을 (바다 건너 한반도 방향으로) 날려버리기 때문인데, 하얼빈은 분지라 바람이 불지 않는다.

 하얼빈에는 공장만 많은 것도 아니다. 난방도 문제다. 영하 30도가 기본인 지역에서 아직도 석탄과 석유로 난방을 땐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하얼빈뿐만이 아니다. 베이징처럼 큰 도시를 제외한 지방 구석구석에서는 아직도 저급 연료로 겨울을 버틴다. 

하얼빈이 안 춥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눈만 간신히 내놓고 다니다가 사진 찍을 때만 얼굴을 내밀었다. 

 지방 도시의 공기가 더 나쁘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는 이유는,

그 어느 언론에서도 얘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베이징이나 상하이처럼 외국인들의 시선이 많이 닿을 수밖에 없는 대도시의 환경오염 문제는 모르는 척할 수가 없다. 하지만 있는 줄도 모르는 소도시나, 정치경제적인 쟁점거리가 없는 도시라면 상황이 다르다. 아예 언급하지 않고 모르는 척하다 보면, 눈 깜짝할 새에 정말 모르는 일이 되어 버린다.

 자연스레 외국인이 국내 사정을 더 잘 아는 상황이 발생한다. 특히 환경오염이나 인권문제처럼 중국 언론에서 다루기 껄끄러운 문제일수록 더더욱.

 모든 중국인이 '모르는' 건 아니다. 정보를 독점하는 주체에 가까운 사람들은, 완벽하게 밀폐된 집에 최첨단 공기정화시설을 구석구석마다 갖추고 살다가 기회가 되면 위험지역을 떠난다. 평범한 사람들만 아무것도 모르고 병들어 간다.


 언론통제란 결국 대다수의 사람들을 정보로부터 소외시키는 행위인 셈이다. 

하얼빈 빙설대세계, 즉 얼음축제에서. 

 하얼빈에서는 고개를 푹 파묻고 다니기 바쁘므로, 하늘이 얼마나 뿌연지 볼 기회가 많지 않다. 게다가 해도 워낙 짧아 하루의 대부분이 저녁이고 밤이다. 바다가 가까운 분지라 당연히 눈도 많이 오고 안개 역시 자주 끼는 지형이니, 하얼빈 출신일수록 뿌연 날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베이징 공기 안 좋다던데 고생한다고 타향살이 중인 한국인 둘을 걱정하는 형국이다.

 그래서인지 베이징에서는 흔히 살 수 있었던 초미세먼지용 마스크를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일반 황사마스크라도 쓰고 다녔는데, 방한용이 아닌 마스크를 쓴 사람은 나뿐이 없는 것 같았다. 지나다니는 오토바이의 장갑이며 비닐이며 담요가(추위를 막기 위해 오토바이 앞에 무릎담요를 커튼처럼 단다) 새카만데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베이징에 돌아온 다음, 한 이틀간은 그대로 앓아누웠다. 베이징에서 사는 동안 공기가 너무 나빠 팔자에도 없는 천식이 생겼다고(성인이 된 뒤에도 환경에 따라 '천식성 증후군'이 생길 수 있다.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욕했는데, 하얼빈에 살았다면 아예 살아남지를 못했을 듯하다.


 이래서 사람은 대도시에 살아야 하나보다.

 미어터지는 사람들만큼이나 갖은 정보가 흘러넘치는 대도시에서는 아무리 소외당했다 하더라도 주워 담을 쪼가리 역시 넘친다. 하지만 지방에서는 왜 아픈지 원인을 찾을 생각도 없다. 그저 나이 들면 찬바람에 기침이 나기 마련이고 예순이면 오늘내일하는 게 당연할 뿐이다. 옆집도, 앞집도, 다들 그렇게 산다. 


 중국은 기관지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 수를 별도로 집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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