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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제이 Feb 01. 2021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중국인에게 음식이란

 세계 3대 미식 중 하나라는 중식.

 베이징에서 골골거리던 나날, 유일한 위안거리 중 하나는 역시 먹거리였다. 난생처음 먹어 본 베이징 카오야(베이징 덕, 또는 북경오리)에서부터 지역별 특산요리까지. 몸보신해야 한다는 핑계로 그렇게 잘 먹고 다녔다.

 주문 실수로(!) 개구리도 먹어봤다. 먹력치(먹는 능력치) 상승이다.


 다른 건 몰라도 중국음식을 향한 중국인의 자부심만큼은 근거가 확실하다. 유구한 역사? 비판적인 지식인에게는 자성의 대상이다. 경제력? 국력? 역시 논란의 소지가 있다. 전통? 문제가 심각하다 못해 치명적인 수준이다.

 하지만 중식만큼은 아니다. 세계 어디를 가던 중식집 없는 곳이 없다. 중국에서는 맥도널드, KFC, 심지어 스타벅스도 중국 오리지널 메뉴를 꼭 판다. 불고기버거 수준이 아니다. 아침에는 중국식 죽을 비롯한 조식메뉴만 팔고 매 중추절이면 월병 세트를 내놓는다. 자신만만할 만하다.

 그래서인가 중국사람들은 먹거리에 참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때로는 좀 멀리 갔다 싶을 정도로 많은 의미를.

그 걸 보고 상사가 말했다. 보아하니 저 사람은 크게 성공할 사람이다, 기다려 봐라. 상사의 말이 맞았다. 정말 나중에 중책이 되었다. 이게 '이일지만'이다.

 선생님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사자성어 '이이즈완(以一知萬, 간체자로는 以一知万)'을 회, 그러니까 스시로 설명했다. 명사, 동사, 접속사, 개사 등등으로 다 쓰이는 바람에 중국어 문법공부의 여러 함정 중 하나인 '以'를 배울 때였는데, 문법은 다 잊고 선생님의 비유만 남았다.

몇 년 전 부모님과 일본에서. 인생 두 번째 가이세키였다.

 선생님은 베이징에서 나고 자라 베이징대학의 교편에서 평생을 보내신 분이었다. 땅 파먹고 살던 동네의 천지개벽을 직접 보고 겪었고, 그중에는 베이징 최초의 일식집도 있었다.

 마침 베이징대 근처였다. 말로만 일본의 스시집이 생겼다는 소식에 상사가 한 턱 쏜다고 전 직원들을 다 데려갔다고 한다. 우리 반 중국어 실력이 그다지 뛰어나지는 않았으므로, 아주 기초적인 문법과 기본적인 단어들로 선생님은 자신의 상사가 어떻게 어느 직원의 성공가도를 예측했는지를 설명했다.

가기는 갔는데, 어떡할 것인가? 생각해보면, 우리는 일식집이 처음이었다. 그때 한 젊은 직원이 있었다. 그가 스윽, 주문을 다 했다. 당연히 아무도 주문할 줄 모르는데, 그는 알았다. 테이블에 음식이 나왔다. 자, 이제 어떡할 것인가? 그 사람이 착, 착, 착, 보여줬다. 아무도 스시를(사실은 사시미지만, 그때 우리는 스시라는 단어만 알았다) 어떻게 먹는 줄도 모르는 때에, 그가 이걸 이렇게, 저걸 저렇게, 자연스럽게 보여줬다. 매우 자연스러울 뿐, 오만하지도 않았다. 상사가 낮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저렇게 젊은 나이에 회를 먹을 줄 안다는 건 외국 경험이 있다는 뜻일 텐데, 당시는 지금처럼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다. 한 때 한국이 그러했듯 국가의 허락이 있어야만 외국에 나갈 수 있었다. 어색함 없이, 그것도 잘난 척하는 기색도 없이 고급 일식을 대하는 모습에서 상사는 젊은이의 집안 환경이 예사롭지 않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단순히 '빽'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유복한 환경은 폭넓은 교육과 경험을 수반한다. 자연히 외국어도 잘할 것이고, 무엇보다 개혁개방의 시대에 외국 경험 있는 인재는 쓰임이 많을 수밖에 없으므로 저 사람은 나이는 어려도 우리보다 크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집 근처에 오마카세집을 찾았다. 오마카세는 결혼하고 처음 먹어봤다.

 회를 먹을 줄 안다는 사실 하나에서 그의 성장환경, 교육 수준, 미래가치를 내다볼 줄 아는 것. 이런 사고방식은 거꾸로도 작용한다. 이걸 먹을 줄 모른다고? 경험이 부족하군, 가정환경이 넉넉하지는 않을 테니, 교육 수준도 평범할 테고, 장래 역시 특별하지 않으리.

 '안에서 새는 그릇 밖에서도 샌다'도 같은 맥락이다. 말하자면 선입견, 편견, 고정관념이다. 문제는 많은 중국인들이 사자성어를 너무 사랑한다는 점이다.

 (베이징) 카오야 먹을 때 각 잘 잡아서 예쁘게 싸 먹어야 한대. 그냥 막 대충 싸서 먹으면 그거 되게 못 배운 티 내는 거래. 중국 사람들은 먹는 걸로 사람을 잰대. 그래서 일부러 되게 비싼 레스토랑 데려가는 거라더라고. 그 사람 그릇이 얼마나 되나 떠보려고.

 베이징 덕뿐이 아니었다. 훠궈 먹을 때 소스를 어떻게 만드는지(소스를 후다닥 만들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맛보면서 집중에서 만들어야 한다. 맛에 집착하는 사람은 미식을 많이 먹어 본 사람이기 때문이다), 음식 주문할 때 육해공을 다 고려하는지, 시킨 음식과 잘 어울리는 술을 고를 줄 아는지, 술에 취한 모습은 어떤지, 심지어 젓가락질도 본다고 했다.

 예를 들어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하는 사람은 가정환경이 매우 자유로왔을 확률이 크다는 식이었다.

누가 그래?

 신랑은 시선을 폰에서 떼지 않고 요즘 그런 사람이 어딨냐는 투로 대꾸했다.

선생님이.

 말하기 수업 선생님만이 아니었다. 읽기쌤, 한자쌤, 비즈니스쌤 모두 한 두 번쯤은 꼭 중국에서 식사문화가 갖는 의미가 뭔지 가르치셨다. 스촨성 출신 선생님은 음식을 맵게 먹는지, 짜게 먹는지, 달게 먹는지 가지고도 성격을 분석했다.

우린 외국인이니까 괜찮아.

 그 말도 일견 사실이었다. 제가 잘 모르니 알려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하면 다들 기분 좋게 지식을 쏟아냈다. 음식에 얽힌 고사(옛날이야기), 지역성, 역사문화는 물론 중의학과 조리법까지 줄줄줄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아저씨들도 칼질을 어떻게 하느니 불 조절은 또 어쩌느니 말이 많았다.

 중국 음식은 입으로 맛보기 전에 눈으로 빛깔을 감상하고 코로 향을 맡는다고 들었는데, 귀 까지 채워야 할 줄이야.

처음 오마카세를 먹으러 가서는 송구스러워서 몸 둘 바를 몰랐다.

 근데 나이를 먹을수록 선입견이 편하기는 하다.

 집에서도 책상 정리 안 하는 사람이 회사라고 깔끔하게 해 놓고 살지는 않을 것 같고, 책상 정리도 안 하는 사람이 자료 정리라고 제대로 할까 싶으며, 허구한 날 지갑 찾아 허둥지둥 대는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USB 잃어버리는 사고를 칠 것 같아 어느새 잔소리를 하고 있다.

 나쁘게 말하면 선입견이지만, 또 좋게 포장해보자면 카테고라이징 아닐까? 쌓아 온 경험을 기반으로 한 애널라이징, 수집한 표본이 커질수록 정확도가 올라가는 통계학처럼.


변명이다.

 때로는 1+1도 2가 아닌데, 입맛 하나로 한 길 사람 속을 알 턱이 없다. 그저 모른다는 사실이 불안할 뿐이다. 혈액형을 따지고 별자리를 외우고 MBTI를 보는 것처럼, 식사에 의미를 부여하면 뭔가 좀 아는 것 같아 자신감이 생긴다. 백과사전 같은 메뉴판을 통달하고 제대로 적혀있지도 않은 재료를 꿰뚫어 보는 눈으로(예를 들어 '논닭'은 닭이 아니라 개구리를 뜻한다. 닭고기인 줄 알고 주문했다가 먹력치가 올라갔다) 사람도 꿰뚫어 볼 수 있다고 믿는다.

 전병을 각 잡아 싸 먹을 줄 아는 나, 요리 간 조화를 생각해서 자연스럽게 주문할 줄 알게 된 나는 이전의 나보다 더 나은 나일까? 글쎄.

신랑은 생선 부위별 일본식 명칭도 외우고 다니는 사람이다.
오마카세 첫기억은 ‘행주라도 빨아드려야 하는데 안절부절’이었다.
이제는 살짝 손을 들고 주문한다. 밥 적게, 단새우 빼고.

 한 해가 다르게 소화력은 떨어지니 '그릇'은 더 작아진 것만 같다. 더 많은 경험은 생각의 폭을 넓히는 게 아니라 기존에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쪽으로 작동해서, '아 내가 해봐서 아는데~'를 입에 달고 사는 작디작은 종지 그릇이 되어가는 듯하다.

입을 다물면 좀 티가 덜 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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