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별이 내린 것 같지 않니
우리 가족에게는 마법의 문장이 하나 있다.
서울숲 갈까?
엄마 아빠가 먼저 제안할 땐 내가 묻는다.
"요즘은 무슨 꽃 폈어? 튤립은 끝났나 이제?"
내가 먼저 물을 땐 부모님이 대답한다.
"응 그럴까? 백합이 아주 되바라졌어."
요즘 서울숲에는 수국과 백합이 한창이다.
이 전에는 수선화가 잔뜩이었고, 또 그 전에는 튤립이, 그리고 개나리와 벚꽃이, 벚꽃 전에는 매화와 복사꽃이 가득이었다. 틈틈이 쪽동백이며 찔레며 아, 철쭉과 진달래는 말할 것도 없이,
엄마는 평소에도 서울숲을 자주 걷는다. 운동 가기 전에 미리 나와서 한 바퀴 돌고 가거나 저녁에라도 혼자 나와 걷는다. 발가락에 난 혹이 걱정되어 많이 걷지 말라고 말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했는데도, 하루에 만 보는 채워야 한다며 꼭꼭 걷고 들어오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 산 폰.
워낙 오래된 폰이라 바꾸고 싶기도 하고 별로 안 바꿔도 될 것 같기도 하고 고민고민 하고 있었는데, 아빠가 덜컥 당신 폰과 함께 바꿔 버렸다. 맘에 안 드는 부분도 많았지만 어쨌든 새 폰이라 카메라가 엄청 좋아서, 두 분이서 얼마나 신나게 서울숲을 쏘다녔는지 모른다.
날아가는 새 동영상도 찍고, 슬로모션으로 나비도 찍고, 이 꽃, 저 꽃 찍어서 확대도 해 보고, 아주 현미경이 필요 없다며 그렇게 좋아라 하셨다.
"이것 봐. 꼭 빵 같지 않니?"
"그러네 꼭 카스텔라 같다. 이거 해바라기인가?"
"어. 이것 봐. 사진을 이렇게 찍어야지. 너네 엄마는 꼭 사진을 저렇게 이상하게 찍는다."
아빠의 자랑법은 좀 어긋나 있다. 주변과 비교하고 상대를 깎아내리는 식이다. 우리 아빠만 그런가 했더니 시아버지도 똑같다.
이걸 한국식이라고 해야 하나, 아재식이라고 해야 하나.
집에서 밥 먹다가 그랬으면 아빠한테 말투 좀 제발 고치라고 한 소리 했을 텐데, 꽃 앞에서는 마음을 다잡는다. 어디 봐봐. 아 엄마도 잘 찍었네, 예쁘다.
이번 서울숲 산책 때, 엄마는 꽃 사진을 미리 보여주지 않았다. 이건 꼭 가서 봐야 한다며, 눈으로 보고 너도 소감을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이렇게 하얀 백합만 봐왔거든? 근데 백합이 막 빨갛고 분홍색이고 한 거야. 그리고 이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짠! 하고 이렇게 있는 거야. 그니까 이게 뭐라 그럴까, 되바라진? 도전적인? 나쁘다는 건 아니고, 신기하지 않니. 백합은 하얗고 그런 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고정관념인 거지.
엄마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아마 이런 말이었을 것이다.
가련하고 청순한 이미지로만 알고 지냈던 백합에도 이렇게 다양한 면모가 있다니.
수국 꽃밭에 가서도 엄마는 비슷한 얘기를 했다.
어머, 수국이 이렇게 생겼어? 어머, 신기하다 얘. 어머, 이건 엄청 작네. 오~ 이런 수국도 있구나. 와 너무 좋다. 이렇게 다양한 수국도 있구나. 나는 수국은 딱 이런 모양이다, 라고만 생각했는데. 이것도 고정관념이다, 그치?
엄마는 최근 읽은 책 얘기를 했다.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는, 익숙하고 뻔한 얘기였다.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자기가 옳다는 생각,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는 생각에 빠진다더니, 나도 백합은 이래야 한다, 수국은 이래야 한다고 미리 마음속으로 딱 정해놓고 있었던거야, 라고 하셨다.
이런 엄마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엄마는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서 상대를 힐난하는 부류와는 제일 거리가 먼 사람 중 하나다. 팔랑귀도, 줏대 없는 사람도 아니다. 이런 종류의 반성을 해야 하는 사람은 따로 있을 텐데, 왜 엄마가 반성을 하고 있담.
사람은 누구나 자기 경험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법이다. 자신이 쌓아 온 경험을 토대로 자신만의 '관념'을 구축해 나가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사유 과정도 없다.
고정관념이 문제가 되는 건 사실 태도 때문이다.
누구나 자기 의견에 확신을 가질 수야 있지만, 마음속에 있던 생각을 밖으로 드러내는 방식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네 까짓 게 뭘 아느냐던가, 왜 그렇게 밖에 못하냐던가, 너는 그 정도밖에 안 되냐고 하면 피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이걸 은근하게 돌려서 너는 좀 다를 줄 알았다던가, 다들 이 정도는 할 수 있다던가, 너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왜 안 듣냐고 하면 피해야만 하는 사람이 된다.
첫째는 꼰대 짓이고 둘째는 가스라이팅인데, 둘 다 폭력적이다. 하지만 폭력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수단 중 가장 손쉬운 측에 속해서, 나는 때때로 알면서도 모른 척, 폭력이 제시하는 쉬운 길이라는 유혹에 넘어가고는 한다.
그에 반해 엄마의 언어는 굉장히 담백한 편이다.
좋게 말해 담백하고 나쁘게 말하면 뻔하다. 뻔한 수식어구와 뻔한 비유, 그리고 으레 그 뻔한 익숙함으로, 뻔한 얘기를 한다. 흰 꽃만 보면 눈송이 같다 그러고, 빨갛고 작은 꽃은 새색시 같다 그러고.
저거 봐, 수국이 쫑쫑쫑쫑~ 한 게, 꼭 별이 내린 것 같지 않니?
당연한 얘기를 이렇게 식상한 방식으로 밖에 표현하지 못한다니. 어릴 적에는 그 뻔함이 지루했다. 이제야 엄마의 마음을 알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은 있는데, 더 나은 방식으로 전달하고 싶은데 세련된 언어가 부족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