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대처하는 자세
언제부터 사람을 가려 사귀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유년시절부터 함께 했던 친구는 너 원래 그랬다고 했다. 워낙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편이었다고, 적당히 친해지되 내 버블을 조금이라도 헤칠 것 같으면 스윽 거리를 벌리는 애였다고.
좋아했다가 멀어진 친구들을 떠올려봤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친구들의 얼굴을 짚어가면서, 계기가 뭐였을까 고민해봤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다. 나에게 너무 많은 속내를 털어놓는 게 부담스러웠다. 그 친구에게 말실수했던 게 부끄러워서 내가 먼저 거리를 뒀다. 연락할 타이밍을 놓쳤다. 방어적인 태도에 지쳤다. 옷 취향이 달랐다. 내가 좋아하는 걸 싫어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나이만 먹었지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싫어하는 건 계속 늘어나는데 좋아하는 걸 맘껏 좋아하기엔 자꾸 체력이 딸린다.
요즘에는 '다름'도 자꾸 '틀림'으로 여겨진다. 다름과 틀림을 구분할 줄 모르는 건 '틀렸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몸뚱이는 무겁기만 하다.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노력마저도 피곤해서 자꾸 한 켠으로 또 스윽 미뤄두려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한다.
어디가 특별히 엄청나게 아픈 날이 아니어도 그저 이 육신이 버겁다.
집에 들어오면 누워있고 싶은데 한 번 누웠다가는 꼼짝도 하기 싫고, 관성으로 빨래를 치우고 청소기를 돌리고 물건을 되는 대로 쑤셔 넣는 중에도 지긋지긋함이 밀려온다. 귀찮음을 이겨내고 해냈다는 마음이 들만도 하건만 오히려 '이것마저도 타성'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타성에 젖어 관성대로 살아가다 보면 침침한 풍경 속에 '소확행'만이 반짝거린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는 행복한 돼지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삶의 자세인 걸 지도 모른다. 세상 싫은 게 많은 나는 다행히도 나는 영웅주의도 싫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호랑이는 가죽 때문에 죽고 사람은 이름 때문에 죽는다고 했다. 나는 오래오래 살고 싶다. 수많은 후회와 돌이키지 못할 실수들을 쌓아가면서 그렇게 오래도록 살고 싶다.
후회하지 않는 삶이란 존재할 수 없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인데, 심지어 선택지가 흑과 백, 딱 두 가지만 있는 것도 아니다. 선택하지 않는 선택지까지 존재하는 한, 그리고 '가지 않은 길'을 기억하는 한, 후회를 하지 않는다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
어. 난 후회 안 하는데?
그 말을 듣고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고 나면 슬슬 나는 너와 자연히 멀어지겠구나, 생각했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하는 얼굴은 웃고 있었다. 자신은 후회 같은 거 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은 실상 자신을 향한 거짓말이라고 느꼈다.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까지도 속이는 법이니까.
기억을 돌이켜 뉘우치지 않는 사람이 반성할 수 있을 리 없다. 반성하지 않는 삶은 발전할 수 있느니 없느니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반성하지 않는 자가 진심 어린 사과를 할 수 있을 리 없으므로, 나는 아무 말 없이 나의 안위를 위해 그를 내 버블 밖으로 밀어냈다.
방어기제였다고 생각한다. 나도, 친구도. 누구나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약점을 드러내는 것 같고, 비웃음을 살 것 같고, 혹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기 마련이다. 물속에서 발목으로 감겨 오는 끈적한 물풀 같은 기억이 길게 늘어질수록 뒤를 돌아보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젊은이의 후회는 노인의 것보다 훨씬 가볍다.
눈 앞에 남은 나날보다 지나온 나날들이 태산처럼 높게 쌓였는데 몸과 마음은 하릴없이 늙어버렸다면 등에 짊어진 기억의 무게를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심지어 열심히 끼워 온 인생의 단추가 무가치하다 못해 불명예스럽기까지 하다면, 젊은 날을 부조리에 소모하고 손 안에는 한 줌 모래밖에 남지 않았다면, 노인에게 남은 선택지란 무엇일까.
아직 늙어보지 않아서 상상만 해 볼 뿐이다. 바라는 바가 있다면 나 스스로 내가 거리를 두는 부류의 사람이 되지 않도록 기억한다, 후회한다 말할 수 있기를 꿈꿀 뿐이다.
낼모레 칠순을 앞둔 가즈오 이시구로는 올해도 새 책을 냈다. 2017년에 노벨문학상을 탔으면 좀 쉴 법도 하고 수필집이나 낼 법도 하건만, 여전히 작품을 만든다.
가장 초기에 쓴 소설은 [창백한 언덕 풍경]과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그리고 [남아있는 나날]이다. 작가 스스로 '똑같은 책을 세 번 썼다'라고 할 정도로 모두 기억을 대하는 방식을 다루고 있다. 그것도 매우 불편한 기억을, 전혀 영웅적이지 못한 태도로.
"힘들어. 두려워서 저번에는 사실 한참 밑바닥을 치고 왔다. 이게 정말 맞는 길일까 싶은데,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그래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으니 너무 불안하고 힘들어."
힘든 걸 힘들다고, 암울했다고 털어놓는 친구를 보고 멋있다고 생각했다. 싸웠다, 울었다, 내가 잘못했던 거라고 허울 없이 얘기하는 친구는 왠지 더 빛나 보였다.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말에서는 이미 바다 같은 후회를 쌓아왔음을 느꼈다. 쌓아 올린 후회의 무게는 곧 책임의 무게라, 어른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는 지난날을 후회하노라고 얘기할 수 있는 노인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삶과 타협했노라고 변명 없이 인정할 수 있는 어른이기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