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가 말하는 중국
중국 베이징에서 피부로 느꼈던 바와 조금이라도 다른 부분이 있으면 실컷 콧방귀를 뀌어 주려고 했는데, 다 읽고 나니 무릎을 탁 지고 싶어지는 글이었다. 지금 읽고 있는 내용을 중국 가기 전에 알았으면 좀 달랐을까. 하지만 2020년 전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야 이 정도의 통찰이 나올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2010년대에는 아직 모를 수밖에.
스포트라이트 페이지의 첫 장에 대문짝만 하게 적힌 타이틀이다. 핵심만 요약하자면 첫째는 경제와 민주주의와의 관계를 오해하고 있는 점, 둘째는 권위주의에 대한 오해, 마지막 셋째는 중국인들이 서구적 삶을 원한다는 착각이다. 세부적으로는 약간의 오차가 있을지 몰라도 핵심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대부분의 오해는 '남들도 나와 같을 것'이라는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비롯한다. 아주 작은 단위의 개인과 개인 사이의 갈등마저도 '당연한 거 아냐?'에서 시작된다. '상식'은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다. 부부가 제일 많이 부딪히는 부분도 나의 상식과 상대의 상식이 사맞디 아니할 때다.
뭐? 미역국에 양파를 넣는다고?
여기에 매몰찬 비아냥까지 더해진다면 아주 금상첨화다.
미쳤어?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우리 집은 평생 이렇게 먹었어. 그러는 너는, 미역국에 계란 푸는 건 제정신이냐?
너 지금 우리 부모님 욕하는 거야?
운전하다가 라디오에서 들었던 [미역국 때문에 이혼한 썰]이었는데, 다시 생각해도 극단적이기는 하다.
나는 상식, 상대는 비상식 또는 몰상식으로 정의한다는 건 쉽게 말해 나는 우월하고 그는 저열하다는 위계를 내포한다. 상식 들이미는 사람의 심리가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그저 자기가 경험한 내에서 판단하고 행동했을 뿐이다.
서구도 마찬가지였다. 개혁개방으로 동독도 망하고 소련도 망했으니, 중국도 안 될 줄 알았다. 독재국가들은 부정부패로 제대로 된 경제적 성장을 이루지 못했으니, 중국도 그럴 줄 알았다. 수많은 중국 요우커들이 유럽에 놀러 와 '0'이 몇 개인지 세기도 어려울 만큼의 돈을 쓰고 가는 걸 보면서 그들은 우리처럼 되고 싶어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세계 도시 곳곳의 차이나타운을 보면서 '생각'은 '확신'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살고 싶어서, 우리처럼 살고 싶어 하는구나, 하고.
중국은 자유가 경제발전의 필수조건이 아님을 온몸으로 증명해냈다. 오히려 공산당이었기에 가능했다고 믿는다. 경제성장을 이뤄낸 결과 독재가 정당화되는 것이다. 중국을 떠난 사람들이야 해당사항 없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중국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중국적인 삶의 방식을 버릴 생각이 없다. 중국이라는 국가가 추구하는 가치를 믿고 내재화하며 살아간다.
민주주의의 끝판왕이자 기막힌 경제성장을 이뤄내고 상당히 서구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살아가는 한국인 역시 많은 부분에서 중국을 오해하고 있다. 그리고는 오해를 바탕으로 우월을 가늠하고 심리적 만족감을 채우고는 한다. 하지만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은연중에 알고 있었다.
그 거대한 땅덩어리를 다스리려면 어쩔 수 없지.
죄 다 독립하게 풀어주면 국력이 약해질 거 아냐.
그때 그 시절이 나쁘다 나쁘다 하지만 어쨌든 덕분에 잘 살게 되었잖아.
그렇게 안 했으면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겠어?
독재가 나쁜 것 같아 보여도 그렇게 해야 또 이뤄낼 수 있는 것도 있다고.
우리 손으로 대통령 탄핵까지 이뤄냈다고 자신만만 하기엔 우리의 무의식은 이미 중국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다. 비슷한 역사문화적 배경을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티클의 모든 내용에 동의하는 건 아니다. 글에서는 뛰어난 지도자를 향한 중국인들의 지지를 '레닌주의'에 중점을 두고 설명했지만, 공산주의를 극도로 경계하는 한국에서도 비슷한 영웅주의적 관점이 드러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유교문화와 가부장제가 더 적절한 설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오죽하면 시진핑과 그의 배우자를 '국부'와 '국모'로 칭할까.
실제로 현대 중국의 정치체제는 왕정 시절과 유사한 점이 많다. 중국인들은 자기 자신을 '시민'이나 '국민'으로 칭하지 않고 '라오바이싱(老百姓)', 즉 '백성'이라 부른다. '백성'은 현대 중국어로 '일반인'을 뜻한다. 라오바이싱은 정치력이 없고 대신 공산당원들만 간접투표를 할 수 있다.
정치는 윗선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만 그들도 나름 '선정'을 펼치기 위해 언제나 백성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다. 그 결과 백성들을 위해 공공의료와 의무교육을 확대하고 도시 인프라를 구축하여 경제강국을 이뤄냈다. 꿈에 그리던 태평성대로 한 걸음, 한 걸음 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써 놓으면 꽤 그럴싸해 보이지만, 왕정이 끝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중국 정부도 그걸 알기에 부정부패 단속을 강화하고 일벌백계에 앞장선다. 언론을 통제하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10여 년 간 꾸준히 정당성을 가르쳐 왔다. 오늘날 20대 젊은 중국인들을 보면 정책이 아주 효율적이었던 것 같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도 중국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발전 외에도 최근에는 코로나19에 효율적으로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정부 지지도가 더욱 강화되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우한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희생은 이미 잊혀 가는 추세다. 영국이나 인도를 비롯한 다른 나라의 사태가 더 심각해진 덕분이다. 한쪽은 무자비한 락다운으로 인한 희생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통제력 부족으로 발생 한 희생이라 원인이 완전히 다르나, 숫자만 남겨놓고 보면 중국에게 훨씬 유리하다.
효율성이나 경제성에 시선을 뺏기는 대신 과정과 인간에게 초점을 맞춘다면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의 중국은 지금과 같은 형태로 공고히 지속될 것 같다.